나를 단단하게 하는 시간
한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빈 배가 그의 배와 부딪치면
그가 아무리 성질이 나쁜 사람일지라도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배는 빈 배이니까.
그러나 배 안에 사람이 있으면
그는 그 사람에게 피하라고 소리칠 것이다.
그래도 듣지 못하면 다시 소리치고
마침내는 욕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은 그 배 안에
누군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러나 그 배가 비어 있다면
그는 소리치지 않을 것이고 화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강을 건너는
그대 자신의 배를 빈 배로 만들 수 있다면
아무도 그대와 맞서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그대를 상처 입히려 하지 않을 것이다.
— 장자, 〈빈 배〉(토마스 머튼 번역)
장자의 이 비유는 단순하지만 묵직합니다. 같은 배가 부딪혀도 안에 사람이 있으면 다툼이 되고, 빈 배라면 분노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문제는 언제나 외부의 사건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장자는 우리에게 자신을 빈 배로 만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불필요한 소란이 사라지고, 맞설 일도 줄어든다고요. 마음이 텅 비어 있으면 누가 시비를 걸어도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바깥에서는 늘 파도가 일지만, 그 파도에 휩쓸릴지 잠시 바라보다 흘려보낼지는 오롯이 우리의 선택입니다.
그림책 《내 마음은》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달라지는 마음의 얼굴을 보여줍니다. 물웅덩이처럼 고요하다가도 어느새 담장이 되어 나와 세상을 가로막고, 넓은 하늘 같던 마음에 한순간 먹구름이 몰려오듯 마음은 쉼 없이 변합니다. 꽃병을 깨뜨렸을 때 아이의 마음은 놀라서 울고 싶고, 도망치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엄마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금세 평온을 되찾지요. 이처럼 마음은 쉽게 다치고, 또 쉽게 치유됩니다. 그림책은 마음을 열고 닫는 열쇠가 결국 우리 손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마음을 다루는 일은 씨앗을 가꾸는 일과 닮았습니다. 밭에는 좋은 씨앗만 자라지 않듯, 마음에도 원치 않는 손님이 찾아옵니다. 그것을 억지로 몰아내려 할수록 오히려 더 크게 자리 잡곤 합니다. 그럴 때는 장자의 처방대로, 그저 빈 배로 두는 것이 지혜일지도 모릅니다. 올라온 감정을 반겨주고 알아차리고, 잠시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감정은 어느새 제 발로 떠나가니까요.
태국의 아잔차 스님은 마음에 찾아오는 다양한 감정을 ‘방문객’에 비유하며, 방문객을 받아들이되 하나밖에 없는 의자는 내주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붙잡지도 말고, 동일시하지도 말라는 뜻입니다. 퇴근길에 버스가 늦게 오면 화가 치밀어 오르다가도 ‘이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반대로 ‘왜 하필 지금이냐’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작은 지연도 큰 짜증으로 번집니다. 문제는, 버스가 아니라 내 안의 집착과 갈망입니다.
그림책 《내 마음은》은 아이보다 어른에게 더 깊은 울림을 줍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차례 파도치는 마음을 안고 살아갑니다. 평안하길 바라지만 뜻대로 되지 않지요. 이는 오래 명상을 수행한 사람에게도 예외가 아닙니다.
다만 알아차림은 가능합니다. 마음이 언제 춤추고 언제 흔들리는지를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이미 절반쯤 자유로워집니다. 문득 올라오는 걸러지지 않은 자동사고를 사실로 믿지 않고, 사실과 해석을 구분할 수 있다면 파도에 익사당하는 일은 줄어들 것입니다.
오늘 하루, 마음이 무겁게 흔들리는 순간이 찾아오면 스스로를 빈 배라 여겨보세요. 누군가의 말 한마디, 작은 사건에 붙잡히지 않고 흘려보낼 수 있다면 그 순간 당신은 이미 자유인입니다. 파도를 막지 않아도, 파도 위에 떠 있는 작은 배처럼 유유히 삶을 건너가고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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