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사이로 흘러가기 전에

나를 단단하게 하는 시간

by 심월


그것이 무슨 인생인가, 근심으로 가득 차

잠시 멈춰 서 바라볼 시간조차 없다면.


영국 시인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의 시 〈여유〉는 짧지만 삶의 근원을 정확히 찌릅니다. 사람들은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고, 더 멀리 가야 한다는 마음에 쫓겨 늘 서두르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멈출 수 없다면, 기쁨을 알아차릴 틈이 없다면, 그것을 과연 삶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시인은 말합니다. 기쁨은 멀리 있지 않다고요. 숲길을 건너는 다람쥐, 시냇물에 비친 별빛, 길가에 핀 작은 꽃처럼 그것은 언제나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고 말이지요. 다만 우리가 눈길을 주지 않으면, 그 순간들은 손가락 사이로 흘러가 버린다고요.


그림책 《다니엘이 시를 만난 날》은 시가 전하는 이 진실을 아이의 눈으로 보여줍니다. 다니엘은 시를 거창하고 어려운 것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만나는 동물들에게 시가 무엇인지 묻습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같이 단순합니다. 풀 한 포기, 하늘의 구름, 아주 작은 순간이 바로 시라는 것이지요.


다니엘은 그제야 깨닫습니다. 시는 특별한 책 속이나 무대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곁에 있다는 것을요. 시는 우리를 멈추게 하고, 바라보게 하며, 평범한 순간에 깃든 빛을 새롭게 보여주는 힘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삶의 기쁨도 이와 닮아 있지 않을까요. 거창한 성취나 멀리 있는 목표가 아니라, 눈앞에 있는 작은 것들을 제대로 바라볼 때 비로소 깨어납니다. 사진을 찍으며 저는 이 사실을 자주 체험합니다. 좋은 사진을 얻으려면 반드시 눈앞의 대상 앞에 머물러야 하고, 빛과 그림자의 흐름을 느끼며 그 순간에 온전히 존재해야 합니다.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짧은 시간 동안 마음은 고요해지고,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문득 살아납니다. 꽃잎 하나, 잎사귀를 스치는 바람, 호수 위로 번지는 반짝임이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사진 찍기는 제게 작은 명상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삶은 반드시 크고 대단해야만 의미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풀잎처럼 작아도 꿋꿋한 존재가 있고, 낡아 보이는 자리에서조차 새로운 꽃은 피어납니다.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지금 여기에는 이미 충분한 이유들이 우리 곁에 놓여 있습니다.


시인의 물음은 그래서 여전히 유효합니다. 잠시 멈춰 바라볼 수 없다면, 그것이 무슨 인생일까요. 기쁨은 지금 여기에 깃들어 있고, 감사는 그것을 바라보는 눈길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이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면, 행복은 저만치서 조용히 웃으며 걸어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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