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다는 사실만으로

나를 단단하게 하는 시간

by 심월


사랑에 실패란 말이 무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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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하라


이생진 시인의 시 〈사랑했다는 사실〉은 사랑에 대한 낯선 정의를 들려줍니다. 흔히 우리는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실패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인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합니다. “끝내 이루지 못하고 / 혼자서만 타는 나무에 매달려 / 가는 세월에 발버둥쳤다 해도 성공”이라고 노래합니다. 사랑은 소유나 결말이 아니라, 사랑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이미 삶의 빛이었다는 것이지요.


꿈에서는 수천 번 나타났다 / 생시에는 실망의 얼굴로 사라졌다 해도 성공이니 / 기뻐하라 / 사랑했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하라


사랑은 결실에 따라 나뉘는 게 아니라, 한때 누군가를 향해 가슴이 뛰고, 기다리고, 그리워하고, 함께 웃었던 그 순간만으로 이미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시인의 표현대로라면 이루지 못한 사랑이라 해도,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또 다른 얼굴의 성공이라는 것이지요.


이 진실을 아이의 눈으로 보여주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모리야마 미야코의 글, 쓰치다 요시하루의 그림으로 완성된 《노란 양동이》입니다. 주인공 아기여우는 어느 날 숲 속에서 반짝이는 노란 양동이를 발견합니다. 누구의 것도 아닌 듯 보이는 그 양동이는 아기여우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습니다.

“일주일 동안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내가 가지기로 할게.”

아기여우는 친구들과 그렇게 약속합니다.


그날부터 아기여우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양동이와 시간을 보냅니다. 풀밭에 앉아 양동이만 바라보다 잠이 들고, 외나무다리를 건너며 양동이를 꼭 안고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양동이로 꽃밭에 물을 주고, 냇물에서 반짝이는 햇살을 담아내며, 양동이와 친구처럼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양동이는 그저 하나의 물건에 불과했지만, 아기여우에게는 그 이상의 존재가 됩니다. 함께 웃고, 함께 노래하며, 함께 시간을 쌓아가는 동안 양동이는 사랑의 이름을 얻습니다.


일주일이 지나고 약속한 바로 그날, 양동이는 감쪽같이 사라져 버립니다. 아기여우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습니다. 친구들이 위로의 말을 건네며 달래 보지만, 아기여우는 담담히 말합니다.

“괜찮아, 이제.”


비록 양동이를 소유하지는 못했지만, 함께한 시간과 기억은 아기여우 안에 온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사랑은 빼앗기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했던 사실, 함께했던 시간이 이미 충분한 선물이었던 것이지요.


시인의 고백과 아기여우의 이야기는 닮아 있습니다. 사랑이 소유의 문제라면 아기여우는 분명 사랑의 실패자였을 겁니다. 그러나 사랑이란 결국 함께한 시간 속에서 빛나는 것이기에, 아기여우는 이미 충분히 사랑을 누렸던 것입니다. 사랑은 얻는 것이 아니라, 사랑했던 자신으로 남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는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을 한결같이 사랑할 수는 없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지극히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사랑은 나를 채우기 위한 욕망이 아니라, 누군가의 존재를 온전히 기꺼이 품는 마음일 테니까요.


사랑엔 실패가 없습니다. 결말이 어떠하든, 사랑했다는 사실만으로 헛되지 않습니다. 사랑은 우리를 성숙하게 하고, 지나간 관계마저 삶의 일부로 남게 해 줍니다. 사랑은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우리를 바꿉니다. 그리고 그 변화 자체가, 사랑이 낳은 가장 확실한 기적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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