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단단하게 하는 시간
하나님이여,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에 관해서는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바꿀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주옵소서.
그리고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문은 짧지만 오래도록 마음에 남습니다. ‘평온을 비는 기도’라 불리는 이 글이 여러 공동체에서 널리 읽히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별하는 일이 얼마나 단순해 보이면서도 어려운지요.
니버 역시 삶의 한복판에서 이 기도문을 썼을 겁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붙들고 애쓰다 지친 날도 있었을 테고, 정작 바꿀 수 있는 일 앞에서는 머뭇거리거나 피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겠지요.
이 고민은 그에게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2천 년 전 로마에서 노예 철학자로 살던 에픽테토스도 같은 주제를 붙잡고 씨름했습니다. 그는 인간을 자유인과 노예로 나눴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유인은 바꿀 수 없는 것을 내려놓고 바꿀 수 있는 것, 곧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며 살아가는 이들이고, 노예는 이를 분별하지 못해 세상 일에 끌려 다니며 스스로를 구속하는 사람들입니다.
에픽테토스는 그의 책에서 단호하게 말합니다. 가족도, 권력도, 명예도, 우리의 통제 바깥에 있으니 욕심을 내려놓으라고.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자기 자신 뿐이라고.
이 철학적 통찰은 그림책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조원희 작가의 그림책《중요한 문제》는 탈모라는 신체적 현상을 다루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탈모는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이지, 억지로 막아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이지요.
그림책 속 주인공은 탈모를 지키려는 일념으로 의사의 처방을 철저히 따릅니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던 습관을 끊고, 좋아하던 등산도 중단합니다. 사랑하는 강아지와 떨어져 자고, 뜨거운 목욕도 기꺼이 포기합니다. 탈모에 좋다는 음식을 찾아 먹고, 검은콩과 검은깨로 식탁을 채웁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머리카락이 자꾸 빠집니다. 나아지는 기미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웃음이 줄고, 기쁨이 옅어지고, 일상이 메말라갑니다. 그는 결국 묻습니다. 나에게 정말 중요한 문제는 무엇일까. 그리고 깨닫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붙잡느라 삶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요. 그는 과감하게 머리를 밀어버림으로써 그 굴레를 끊어냅니다. 자유인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이 장면은 에픽테토스의 가르침과 니버의 기도문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합니다. 바꿀 수 없는 걸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역설적으로 자유로워집니다. 억눌린 마음은 풀리고, 잃어버렸던 평온이 되돌아옵니다.
비가 몹시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교통 체증 속에서 약속 시간은 다가오고, 차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초조함이 차오르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이 상황은 내 통제 밖에 있구나. 그 순간 어깨가 조금 내려앉았습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들렸고, 차창을 타고 흐르는 빗방울의 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제 마음은 달라졌습니다. 받아들이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을 뿐인데, 고요가 찾아왔습니다.
니버의 기도는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바꿀 수 있는 것에는 용기를, 바꿀 수 없는 것에는 수용을, 그리고 그 둘을 구별하는 지혜를.
오늘 하루, 어쩔 수 없는 일 앞에서는 잠시 숨을 고르고 머물러 보아도 좋겠습니다. 대신 당신이 바꿀 수 있는 작은 일 하나에 마음을 내어보는 건 어떨까요. 말투 하나, 표정 하나, 혹은 스스로를 대하는 다정한 마음 하나라도 좋겠습니다.
이제, 그만 붙잡아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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