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은 길에도 꽃은 핀다

나를 단단하게 하는 시간

by 심월


나는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가 더 아름답다

곧은 나무의 그림자보다

굽은 나무의 그림자가 더 사랑스럽다

― 정호승의 시 〈나무에 대하여〉 중에서


정호승 시인은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의 손을 들어줍니다. 사람들은 대개 곧게 뻗은 줄기와 가지를 더 훌륭하다고 말하지만, 시인은 굽은 나무의 그늘과 그림자를 바라봅니다. 그 굽음 속에 깃든 시간과 바람을 견디며 살아온 무게를 읽어냅니다.


굽은 나무는 자신의 그림자가 구부러진다고 해서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구부러짐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덜 반듯하고 덜 빛나 보일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오래된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곧은 나무를 선망합니다. 곧은 성취를 꿈꾸고, 곧은 성공을 부러워합니다. 엘리트 코스, 막힘없이 이어지는 길, 빠르게 도착하는 길을 좋은 삶의 상징처럼 여깁니다. 반대로 굽은 길은 잘 풀리지 않는 삶, 빙 돌아가야 하고 더디며, 남들이 외면하는 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길을 피하라고 조언합니다.


하지만 시인의 눈길은 다릅니다. 굽은 가지 위에 더 많은 새들이 내려앉고, 굽은 나무 그늘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쉬어 간다고 말합니다. 곡선에는 곡선만의 여유가 있고, 직선이 보여주지 못하는 풍경이 있습니다.


삶의 길도 그렇지 않을까요. 모든 사람이 걷는 길이 반드시 옳은 길은 아닐 겁니다. 삶의 길은 수십 갈래, 수백 갈래로 열려 있습니다. 어떤 길은 멀리 돌아가지만 더 깊은 풍경을 보여주고, 어떤 길은 좁지만 그 길 위에서만 피어나는 꽃을 만날 수 있습니다.


구도 나오코가 쓰고 호테하마 다카시가 그림을 그린 《작은 배추》는 이런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밭에서 조금 옆으로 굴러간 씨앗 하나가 뿌리를 내려 자랍니다. 다른 배추들보다 작고 왜소한 작은 배추입니다.


김장철이 다가오자 주인은 밭의 배추들을 트럭에 싣기 시작합니다. 큰 배추들이 먼저 실려 가고, 작은 배추는 작다는 이유로 남겨집니다. 작은 배추는 늘 곁에서 지켜보던 감나무에게 하소연합니다. 왜 자신은 데려가지 않느냐고요. 감나무는 아직 몸집이 작아서 그렇다며 작은 배추를 위로합니다.


그날 이후 작은 배추는 트럭에 올라타기 위해 운동을 합니다. 다리 힘을 기르며 다음 기회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두 번째 기회가 왔을 때도 주인은 작은 배추를 데려가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넌 여기서 봄을 기다렸다가 꽃을 피워 나비랑 놀려무나.”


아저씨와 트럭이 떠나고, 작은 배추는 서러워 눈물을 흘립니다. 자신이 버려진 것 같아 마음이 아팠던 거지요.


“봄이 되면 해님이 네 곁에 바짝 다가와. 그러면 포개 있던 속잎이 활짝 펼쳐지며 쑥쑥 크지.”


감나무는 노란 꽃도 피고 나비가 모여든다고 얘기해 줍니다. 그 말에 힘을 얻은 작은 배추는 봄을 기다렸다가 꽃을 피우기로 합니다. 작은 배추는 추운 겨울을 견뎌내며 긴 시간을 기다립니다.


마침내 봄이 옵니다. 작은 배추의 줄기 끝에서 샛노란 꽃이 왕관처럼 피어납니다. 나비가 날아와 그 곁에서 춤을 춥니다. 작은 배추는 그때서야 압니다. 자신 안에 꽃이 있었다는 사실을.


만약 작은 배추가 다른 배추들과 함께 트럭에 실려 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김장거리나 국거리가 되었을 겁니다. 그것 또한 필요한 역할이겠지만, 작은 배추는 아마 자기 안에 꽃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겁니다.


정호승 시인이 말한 굽은 나무는, 어쩌면 이 작은 배추와 닮아 있습니다. 작은 배추는 선택받지 못한 존재처럼 보였지만, 결국 누구도 피우지 못한 꽃을 피워냅니다.


굽은 나무처럼, 작은 배추처럼, 곧은 나무와 곧은 길을 따라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이 아니어도, 우리 안에 이미 꽃이 자라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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