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은 처음부터 없었다

나를 단단하게 하는 시간

by 심월


어느 날 당신은 알게 되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그리고 마침내 그 일을 시작했다.

― 메리 올리버, 〈단 하나의 삶〉


메리 올리버의 시 〈단 하나의 삶〉은 우리에게 조용히 묻습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길은 무엇이냐고, 그리고 그 길을 정말 살아낼 용기가 있느냐고 말입니다.


시는 결심의 순간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 길 위에서 마주하게 될 풍경도 함께 보여줍니다. 가족의 걱정, 주변의 비난, 과거의 실패와 상처, 길 위에 널린 나뭇가지와 돌들, 그리고 때로는 외롭고 황량한 밤까지.


그러나 시인은 말합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아본 사람은 결국 멈추지 않는다고. 조금씩이라도 걸음을 옮기다 보면 어두운 하늘 사이로 별빛이 드러나고, 마침내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고 말이지요.


“당신이 살아야 할 단 하나의 삶이 무엇인지를.”


시를 읽다 보면 우리 삶에도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제까지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할까,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에 자신을 맞추며 사는 일이 어느 순간 지겹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깨닫게 됩니다. 아, 나는 이것을 해야 하는구나.


그런 자각이 찾아왔다고 해서 길이 곧장 열리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은 차가운 겨울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런 깨우침을 반겨주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그 길은 위험해.”

“네가 그걸 감당할 수 있겠어?”


이런 말들이 끊임없이 들려옵니다. 우리의 결심을 응원하기보다 시작도 하기 전에 기운부터 꺾어놓는 목소리들입니다.


브리타 테켄트럽의 그림책 《빨간 벽》에도 그런 장면이 나옵니다. 주인공 꼬마 생쥐는 늘 그 자리에 있는 붉은 벽을 바라보며 궁금해합니다.


“벽은 왜 있는 걸까?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다른 동물들은 생쥐의 호기심을 가볍게 눌러버립니다. 겁 많은 고양이는 위험하다고 말하고, 늙은 곰은 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단언합니다. 여우는 지금 가진 것으로 충분하다며 그런 상상은 그만두라고 타이르고, 자신의 으르렁거림조차 잃어버린 사자는 벽은 원래부터 있던 것이니 그냥 받아들이라고 말합니다. 누구도 벽 너머를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꼬마 생쥐만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 파랑새 한 마리가 벽 너머에서 날아옵니다. 꼬마 생쥐는 용기를 내어 부탁을 합니다.


“나를 벽 너머로 데려가 줄래?”


파랑새의 도움으로 벽을 넘어선 순간, 생쥐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그곳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아름다운 세계가 펼쳐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알록달록한 빛깔과 환하게 열린 풍경, 한 번도 본 적 없는 자유로운 공간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생쥐는 그 아름다움을 친구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다시 돌아가려 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 끝없이 이어지던 빨간 벽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의아해하는 생쥐에게 파랑새가 말합니다.


“벽은 처음부터 없었어.”


그리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네가 마음과 생각을 활짝 열어놓는다면, 벽은 하나씩 사라질 거야.”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벽을 만납니다. 어떤 벽은 두려움으로 만들어집니다. 어떤 벽은 상처에서 생겨납니다. 어떤 벽은 너무 오래되어 왜 거기 있는지도 잊은 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나를 보호한다고 믿었던 벽이 사실은 나를 가두는 벽이 되기도 하고,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켜준다고 여겼던 습관이 어느새 나를 세상과 단절시키기도 합니다. 남이 세워놓은 벽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가 만든 벽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일상에서도 이런 벽은 쉽게 발견됩니다. 한 번의 실패한 발표가 오래 남아 자신감을 꺾어놓기도 하고, 마음속에 수많은 생각과 상상력이 있으면서도 “틀리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 때문에 끝내 말을 삼키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누군가 다정하게 손을 내밀며 “괜찮아, 틀려도 돼”라고 말해주는 순간, 그렇게 견고해 보이던 벽이 허무할 만큼 쉽게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제야 알게 됩니다. 벽은 실제보다 훨씬 크게 느껴졌을 뿐, 우리의 두려움과 습관이 만들어낸 그림자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만약 꼬마 생쥐가 다른 동물들의 말에 눌려 끝내 포기했다면, 벽 너머의 세계는 끝내 미지의 땅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메리 올리버의 시가 말하듯, 주위의 반대와 과거의 상처에 붙들린 채 단 하나의 삶을 포기해 버린다면, 우리 안에서 우리를 부르는 별빛 같은 목소리를 만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시와 그림책은 한 곳으로 이끕니다. 벽을 넘어 자신만의 삶을 향해 걸어가라고, 남이 대신 살아줄 수 없는 단 하나의 삶을 살아보라고 손짓합니다. 물론 그 길은 두렵고 외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길이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자기 삶의 주인이 됩니다.


그리고 알게 됩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던 벽은, 사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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