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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월 Mar 21. 2023

너와 내가 포옹할 때 일어나는 일

수행이 필요해


우리 사회는 다양한 문화, 종교, 지역 등의 경계가 존재합니다. 그 경계는 피부의 안과 밖으로 나눠 나와 남을 가르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내 피부 밖에 있는 존재는 언제나 타자로서 긴장을 불러오고, 긴장과 불안은 분쟁과 갈등의 근본 원인이 됩니다. 만약에 나와 너를 구분하지 않고, 내 종교와 네 종교를 가르지 않고, 내 지역과 네 지역을 나누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미국의 통합사상가 켄 윌버는 자신의 책 <무경계>에서, 대극은 존재하지만 궁극적 차원에서 보면 대극은 서로 통하며 하나라고 말합니다. 무경계야말로 인간 사회가 직면한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제안합니다. 경계가 없으면 갈등도 대립도 없어질 테니 당연한 주방이라 할 겁니다.  


모든 경계는 나와 너의 구분에서 출발합니다. 내가 있으므로 네가 있고, 네가 있으므로 내가 존재합니다. 나와 너를 가르는 구분선을 지우면 우리는 긴장 대신 평화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그 구분선을 쉽게 지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아마도 포옹일 겁니다. 우리는 누구하거나 포옹합니다. 너와 내가 서로를 안으면 두 사람 사이를 나누던 선은 사라지고 하나가 됩니다. 나와 너라는 두려움과 경계의식이 해제되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만큼은 옳고 그름도 증발됩니다. 그 덕분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편안해질 수 있지요.

   

그림책 <초코가루를 사러 가는 길에>는 포옹이 주는 따뜻함과 치유의 힘을 담았습니다. 포옹을 통해 추운 겨울 언 마음을 따뜻하게 녹이고, 구분과 경계가 사라진 세상의 행복한 단면을 훈훈하게 보여줍니다.  

 

주인공 곰은 아주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곰은 안아주기를 즐기고 사랑합니다. 대상도 가리지 않아 집에 있는 의자, 소파까지 안아줍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했는지 알 순 없지만 안아주기가 평화와 기적을 만든다는 것을 태생적으로 안 것처럼 보입니다.   


어느 날 곰은 즐겨 먹던 초코가루가 떨어지자 이를 사려고 집을 나섭니다. 가는 도중에 픔에 빠진 동물을 만납니다. 곰은 다가가서 다짜고짜 그를 안아줍니다. 처음엔 어리둥절하다가 곧 익숙해져서 울음을 그칩니다.


곰은 투덜거리는 동물, 난폭한 동물들을 차례로 만나지만 이들도 부드럽게 안아줍니다. 그러자 투덜이는 미소를 짓고, 난폭한 동물은 순하게 바뀝니다. 단지 안아주었을 뿐인데 감정이 차분해지면서 변화가 일어난 겁니다.  

 

본래 포옹을 뜻하는 허그(Hug)의 어원은 고대 노르웨이의 Hugga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편안하게 하다’, ‘위안을 주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옛사람들은 포옹하면 편안해진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포옹이 주는 치유적 효과는 먼저 긴장을 완화하고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줍니다. 또 심장병 예방과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을 치료하는 데에도 효과적입니다. 누군가가 따뜻하게 안아주면 생명이 하루 더 연장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포옹의 신비한 힘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하지만 우리네 현실은 포옹보다는 경계를 짓는 일이 많습니다. 그 때문에 지역과 종교, 진영 간에 다툼으로 대립과 반목이 심합니다. 학교에서부터 구분 짓기, 나누기를 잘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경계는 높은 울타리가 되어 이해는커녕 나와 남을, 안과 밖을 나누고 차단합니다. 바깥은 언제나 타자가 되어 무시하고 차별합니다.  


내가 모르는 타자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두려움은 불안을 낳고, 불안은 갈등을 증폭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결과적으로 갈등은 긴장감 흐르는 전선이 되어 우리를 싸움터로 내몹니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 인간과 자연의 다툼과 갈등 문제는 다 여기에서 기인한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일 년 전 코로나19가 만든 언택트 사회는 거리는 두되, 마음만은 가깝게 살라고 온 국민을 강제했습니다. 거리두기를 강조하는 시대적 요청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그 바람에 포옹의 기회는 실종되고 삶은 더 우울해졌습니다.     


우리는 지난 코로나19로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서로를 안아주는 일입니다. 주변을 돌아보고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친절하게 포옹해야 합니다. 진정한 교감은 경계를 짓는 곳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습니다. 마음과 마음, 몸과 몸이 진정으로 만나 될 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명상은 포옹과 닮았습니다. 판단하고 평가하고 구분 짓고 경계 짓는 모든 분별심을 허뭅니다. 또 경계 자체가 없다는 자각을 통해 우리가 하나임을 일깨워 줍니다.  이 진실을 터득할 때 우리는 성숙한 의식을 가진 명상인류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무경계가 곧 명상인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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