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8-1, Paris, France
#네가 울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작은 위로의 말이라도 해주고 싶지만
세상이 원래 그런 거라는
말은 할 수가 없고
아니라고 하면 왜 거짓말 같지
브로콜리 너마저 - 울지마 中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커튼을 걷어 맑은 하늘을 확인했다. 끝까지 도와주는 날씨가 연신 고맙다. 몇 초처럼 느껴진 잠에서 깨어 어느 때보다 분주하게 움직인다. 줄인 잠의 부작용에 연신 하품을 내뱉는다.
파리의 상징이자 파리가 시작된 시테섬으로 향한다. 도시의 강과 그 안의 섬. 쉽게 떠올릴 수 없는 이미지는 더욱이 호기심을 짙게 했다. 시테의 뜻은 중심지, 발생지의 뜻이라 한다. 우린 마지막에서야 시작으로 이동한다.
턱없이 모자란 시간임에도 우린 쭉 걷기로 했다. 스치듯 접하기엔 다 놓칠 것 같았다. 무언가를 진정으로 기억하고자 했다면, 그것의 이름이나 생김새 정도는 촘촘히 새겨놔야 할 것 같았다. 시테섬이라는 이름 하나로 뭉뚱그려 면면을 기억하기에는 차라리 다른 곳에 집중하고 아예 보지 않는 것이 더욱 낫다 싶었다.
첫 번째는 노트르담 성당이다. ‘노트르담의 꼽추’라는 작품으로 이미 유명한 곳이다. 지금껏 봐온 유럽의 성당과는 또 느낌이 다르다. 전망대에 오르고자 했지만 아쉽게도 그러지는 못했다. 이미 성당을 빙 두르고 있는 사람들은 오랜 대기 시간을 의미하고 있었다.
그들이 그리 일찍 줄을 설 수 있었던 것은 여유였을까 부지런함이었을까. 아마 그 사람들 중 우리가 가장 바빠야 했을 텐데 말이다. 이렇게 한쪽의 부지런함은 다른 부지런함을 만났을 때 나태가 되어 버리기도 한다.
성당 외부를 먼저 돌기로 했다.
성당 외부의 아름다움에 경탄하며 상념에 젖어있는데 히스패닉 계로 보이는 한 여인이 어떤 종이에 싸인을 요구한다.
' 아.. 이거.'
여행 계획을 세우며 이미 숱하게 들어온 사기 수법이라 바로 거절을 했다. 보통, 종이의 내용은 금전을 요구하는 내용이고 사인을 하는 순간 몇 유로를 요구한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유독 이런 형태의 사기가 심하다는 말에 온 신경을 세우고 다녔었는데, 그것을 마지막 날에서야 만났다.
외면하고 지나쳤건만 계속해서 따라오며 싸인을 갈구하는 여인. 그런데 그것은 강요라기보다는 처절한 부탁에 가까웠다. 어쩌다 마주한 그 여인의 눈에는 어떤 절박함 같은 것 있었다. 눈이 깊다는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으나, 인종적으로 큰 눈은 수심을 더욱이 깊어 보이게 했다. 간절하다는 표정은 이런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옆을 따라오는, 자식으로 보이는 아이들은 더욱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연민을 위한 그 여인의 절묘한 설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이런 생각은 어떻게든 나의 거절을 정당화하려는 버둥질이었다.
이런 상황은 늘 마음을 착잡하게 한다. 가끔 술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그런 사람들과 같았다. 껌을 파는 할머니, 봉사 단체라고 소개하며 장미 등을 파는 고등학생들. 악의가 없어 보이는 그런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할 때마다 마음이 저릿해지곤 하는데 지금 감정이 그 느낌과 비슷했다. 그렇다고 해서 물건 하나 팔아준 적 없는 나지만 그들이 나간 후에는 잠시 동안 마음이 수분기 하나 없는 뻑뻑함의 상태가 된다.
그런 생각이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차라리 화를 내고 가거나, 욕지거리를 늘어놓고 간다면 오히려 마음이 편할 것 같다고. 이렇게 잔잔하게 끝이 나면 나는 힘든 이에게 손 한번 내주지 않는 이기적인 인간이 되어버린 것 같다. 몇 백의 돈을 써가며 여행을 다니는데 고작 몇 유로에 아까워하며 그녀에게 있어 최후의 생존 수단을 외면할 수 있는지. 물론 무조건적인 베풂이라 해서 늘 옳은 것은 아니지만.
계속해서 주저하는 모습에 제풀에 지쳤는지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로 향했다. 아이들도 다시 졸졸 따라간다. 감히 그쪽을 쳐다보지 못했다. 행여 눈이라도 다시 마주친다면 나는 아마 사인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나는 그 여인을 등진 채, 그 마음을 안은 채 노트르담 성당 내부로 들어갔다. 무언가 얹힌 것 같은 기분이었다. 10년간 체해본 경험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더부룩했다. 이것은 과한 섭취로서의 불편함이 아니었고, 하도 채운 것이 없어 느껴지는 속 쓰림과 비슷했다.
내부를 보는 둥 마는 둥 지나치다 한 곳에서 걸음을 정지했다. 특이하게도 스테인드글라스에 창이 하나 나 있다. 다른 유럽의 성당에도 있는 것인지는 얕은 지식으론 모르겠으나 분명 처음 보는 창이었다. 그곳에선 신선한 공기가 느껴졌다. 입구를 제외한다면 이곳은 내부와 외부를 이어 줄 수 있는 유일한 공간 같았다. 특히나 어두운 실내에 밝혀진 하얀빛은 집중력을 뺏어오는 힘이 있었다.
창은 단절이자 소통이었다.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기도 하고, 잇기도 했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내부의 몫이었다. 닫아둘 것인가, 열어둘 것인가.
그것을 보고 있자니 아까의 여인이 떠올랐다. 그 눈동자가 떠올랐다. 손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틈새. 한 손 정도는 내밀어 줄 수 있는 창. 그 정도만큼이라도 마음에 창이 하나 열려 있다면 좋겠다 싶었다. 들어오고 나가고, 그 구멍 크기의 범위 안에서는 어떤 것이라도 자유롭게 들락날락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창의 크기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아직 너무 작은 창을 키우기 위해,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사실, 충분히 통과할 수 있는 창이지만 내 것을 너무 크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Season.1 - 안녕. 그리고 안녕
[Spain, France] by.mindm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