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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moon Mar 30. 2017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

Day 7-10, Paris, France



#A voice that says I'll be here 

  and you'll be alright

LALA LAND OST - City Of Stars 中



그것에 가까워진다. 눈에 들어오는 에펠탑의 모습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리고 그 정도의 애잔함도 같이 자라고 있다. 계속해서 팽창하는 마음에 저 밑에 다가간다면, 온통 노란빛이 눈앞을 덮는다면 풀썩 주저앉을지도 모를 심정이었다.






에펠탑 앞 잔디밭. 그 안은 이미 관광객들과 현지인들로 북적거린다. 그 인파만큼 잡상인들도 많다. 그들은 에펠탑 모형 기념품과 술 등을 팔고 있다. 1유로에 에펠탑 모형 10개. 하루에 대체 얼마나 벌 수 있을는지 하는 연민이 들었지만, 그런 연유로 팔아주기엔 너무 짐이 될 것 같았다.


한 사내가 맥주 두병을 흔들며 다가온다. 이번에도 하이네켄이다. 다른 사람은 다를까 싶어 주변을 둘러봤지만, 역시나 하이네켄이다. 여긴 프랑스인데 대체 블랑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기존 맥주병보다 훨씬 작은 크기에 비싼 가격. 관광지의 특수성을 고려해도 이건 좀 심하다 생각했지만 애써 가격을 깎으려 하지 않았다. 이 정도의 온정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후하게 그 가격 그대로 지불을 했다. 에펠탑 모형을 사지 않았던 것이 마음에 걸렸나 보다.


그러나 이런 내 마음과는 반대로, 이 사내는 봉 잡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바로 샴페인을 연달아 팔려 하는 모습을 보고 직감했다. 어리숙하게 생긴 동양 남자가 흥정도 없이 물건을 사다니. 그런 간사한 마음이 솟았던 걸까? 역시나 말도 안 되는 가격이었고, 그것만큼은 용납하지 않았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내 마음은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이 사내가 원망스러웠지만, ‘이런 사람’들은 늘 그렇지 하는, 그 잠시의 오만한 생각에 죄스러워하며 그냥 그렇게 덮어두기로 했다.



풀밭에 맥주 한 병을 들고 주저앉았다. 같은 공간 속에서 다른 시간을 사는 사람들. 그들의 시간은 1초, 2초로 늘어나고 있었고 우리의 시간은 2초, 1초로 줄어들고 있다. 시간이 흐르는 것과 닳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파리의 까만 밤과 이 노란 빛은 지금이 마지막이다. 이 시한부의 상황은 감정의 밀도를 더욱 빽빽이 수놓게 했다.

그 마음에 눈이 약간 붉어져 노란 빛이 형체를 잃고 검노랗게 번지기도 했다.



Eiffel Tower




들고 있던 맥주병은 모래시계가 되었다. 병을 채우고 있는 액체의 가로 눈금은 남아있는 시간을 수치로 표현하고 있다. 더욱 삼킬수록 속은 채워지지만, 시간이란 놈은 저 멀리 달아나고 있다. 헤어지고 나서야 소중함을 안다는 것. 그것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지금과 같이 숙명에 놓인 이별이다. 이 불가의 상황에서 난 그저 허덕거림 밖에 할 수 없었다. 운명은 개척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무턱대고 이곳에 눌러 살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여기서 맥주나 팔고 살까?


한국인 상대로 사전예약 받고

대량으로 팔면 먹고살긴 하겠지?”


오랜 시간 생각해낸 것이라곤 고작 이게 전부였다. 극소량일지라도 이렇게나마 현실적인 요소가 첨가되었어야 했다. 그래야 꿈의 형체라도 어렴풋하게나마 그릴 수 있으니까. 던지듯 내뱉은 이 몇 마디는 지금 심정을 조금이나마 대변하고 있었다.


그만큼 이런 광경과 함께한다면 그 어떤 역경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순수한 투정이었다. 아름답지만 연약한, 그리하여 현실이란 중압감에 언제든지 짓눌릴 수 있는 그런 순수함. 그렇게 높이 솟은 노란 피사체는 그 자체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시간은 00:00 마지막 밤이 끝나고, 마지막 날이 왔다. 별과 같은 하얀 빛이 에펠탑을 감싸는 10분 동안, 이제 안녕을 준비해야 한다.


나만을 위한 빛이길. 2만 개의 전구가 깜빡이며 에펠탑을 뒤덮는다. 그 점의 빛을 통해 요 며칠 동안 내가 이곳에 남겼던 수많은 점들이 한 개, 두 개 되살아난다. 그 점들은 선으로 이어지고, 이어진 선은 면의 형태를 갖춘다. 그 면들은 건물의 모습을 하고 있고, 나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점차 소멸되어 간다.


이내 조명이 꺼졌다. 어떠한 여운도 없이, 정전이 되듯 ‘팍’하고 불이 나가버렸다. 맥주병의 눈금도 0을 가리킨다. 이제 이별의 시간이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무렇게나 앉았던 바지에는 많은 것이 붙어있다.


‘탁’하고 털어냈다.

훌훌 털어낸 것이 아니라 둔탁하게 ‘탁.’  


   

숙명이라면 곱게 받아들이리라.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안녕을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그래야 한다. 달빛 마냥 노란 빛을 등지고 걸었다.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자 더 이상 따라다니지 않는 빛의 흔적들이 다행이다.


그렇게 마지막 밤이 떠나는 모습을 저 멀리에서 지켜봤다.






Season.1  - 안녕. 그리고 안녕

 [Spain, France]         by.mind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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