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7-9, Paris, France
#너의 이름 노래가 되어서
가슴 안에 강처럼 흐르네
흐르는 그 강을 따라서 가면
너에게 닿을까
김윤아 - 강 中
금요일 밤, 파리 시내의 교통체증은 살인적이다. 10시 20분. 나는 가까스로 바토무슈 선착장에 도착했다. 바토무슈는 대략 1시간 동안 세느강을 따라 파리의 주요 명소를 유람선을 타고 관광하는 코스이다.
왜 이렇게 늦었냐며 담배 한 대를 물고 인상을 쓰며 투덜거리는 친구. 예상했던 반응이다. 그래도 고작 하루, 아니 고작 몇 시간을 떨어져 있을 뿐이었는데 이렇게 보니 또 반갑다.
우린 원래 10시 10분 배를 탈 예정이었다. 나의 지각으로 인해서 떠나보내야만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10시 30분 마지막 배가 남아 있다. 10분 남은 시간, 서둘러 맥주 한 캔을 샀다. 마지막 배인 덕에 사람이 많지 않다. 블로그의 팁을 따라 명당이라는 오른쪽 맨 앞에 탑승한다.
아직은 9월 초이지만 건조한 공기 때문인지 세느강의 밤은 초겨울의 날씨이다. 겨우 긴팔 셔츠 하나로 버티기에는 강바람이 상당히 매섭다. 도저히 맥주를 마실 여건이 아니었지만, 세느강을 적시는 빛의 낭만에 맥주가 빠질 수 없다. 오들거리며 맥주 한 모금을 마신 후,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카메라를 들었다.
이윽고 배가 출발했다. 금요일 밤, 강가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축제 분위기이다. 한껏 크게 음악 소리를 높여놓고 마음 가는 대로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을 지난다. 배가 지나갈 때마다 그들이 한껏 내지른 함성소리는 반가운 환영의 표시였다.
우린 서로 손을 흔든다.
다리 밑을 지나가며 다리 위의 사람들에게.
강가를 지나가며 그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요 건물을 지날 때마다 다양한 언어로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한국어는 지하철에서 들릴법한 어떤 여성의 기계음 같은 목소리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국어는 맨 끝 순위라는 것. 이렇다 보니 선 감상, 후 설명이다. 그 불일치에 어떻게든 아구를 맞추려 하다 포기하고 지도를 꺼냈다.
어둠은 세느강의 탁한 수질을 오로지 검정색으로 덮어버린다. 맑게 재탄생한 그 심연의 짙은 검정색은 도시의 빛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다. 온갖 조명이 물결의 흐름에 따라 일렁거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내 마음까지 일렁이게 한다. 물결 위의 건물은 춤을 추고 그 장단에 맞춰 괜히 고개를 까딱거린다. 많이 보아왔던 풍경이다.
당산역 쪽으로 갈 기회가 생기면 자주 양화대교를 오른다. 맥주 몇 캔을 손에 들고. 내가 참 좋아하는 곳이다. 노래도 흥얼거려보고, 소리도 질러본다. 지나가는 차들의 소음에 나의 목소리는 바로 묻힌다. 중간 아무지점에 털썩 앉아 맥주 몇 캔을 마셔도 괜찮다. 지나가는 사람도 별로 없다.
차들이 지나가며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근근이 들려오는 경적소리들. 양화대교의 산만함은 홀로 집중하기에 참 좋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한적한 카페에서 공부가 더 잘되는 것처럼.
걷기엔 꽤 길고, 강바람이 세차게 몰아붙이는 척박한 환경이라, 단순한 이동을 위한 공간으로서 굳이 이곳을 찾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사연 있는 사람들이 찾는다. 마구 팽창하다가도 문득 고요해져버리는 그런 마음이 필요한 사람들. 그렁그렁한 눈으로 강을 바라보며 자맥질을 하듯 숨을 털어내는 그런 사람들.
그리고 그 몇 명의 사람 중에 나도 한 사람이었다.
도시의 검은 강은 나에게 그런 장소였다.
때론 잊기 위해, 때론 기억하기 위해.
그리고 오늘 역시 그런 마음이다.
색깔의 빛이 아닌 그저 조용한 침묵의 빛. 그것은 투명한 바람을 타고 건물을 이루고 있는 돌의 결들을 은은히 밝히며 조용히 돋보이게 한다. 배는 그 가냘픈 의식 속으로 유유히 흘러간다. 꾸밈도 없고 과함도 없다. 오로지 사람들을 위해, 시야를 밝히기 위해 조명을 켰던 그 시대로 돌아간 것 같다.
우리에게 마지막 날은 내일이지만, 마지막 밤은 오늘 이 순간 밖에 없다. 끝이라는 단어에 함축되어 있는 무궁무진한 아픔의 방울들이 강에 흘러넘친다. 어리석게 시간이 천천히 지나가길 바라는 간절함을 띄워 보낸다.
한숨 반 탄식 반. 우린 서로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것이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서로를 배려하고 있었다. 잠시 각자의 시간을 갖자는 무언의 합의이다.
친구의 눈가에는 그간의 여정이 서려있는 듯 했다. 이 배의 나머지 부분도 침묵으로 일관한다. 오로지 들려오는 것은 야속하게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안내방송 뿐이다. 다들 우리와 같이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던걸까.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계속해서 침묵이라는 언어로 나를 위로해주길 바랐다.
바토무슈에서 나는 정말 많은 사진을 찍었다. 대략 700여 장의 사진을 찍었다.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을 생각하면 6초에 한번 꼴로 사진을 찍은 셈이다. 집에 돌아와 사진을 켜 놓고 방향키에 손을 떼지 않고 쭉 넘기자, 한 편의 영상처럼 사진들은 이어진다. 정교하지 못한 손의 떨림으로 인한 흔들림은 크게 상관이 없다. 이곳에서 나는 찰나와 장면을 기억하지 않는다. 쭉 이어진 사진만큼, 연결되어 있던 감정의 처음과 끝까지 그 전체를 기억한다. 그 모두는 오로지 사진첩의 한 쪽으로 장식될 이야기다. 꾹꾹 눌러놓아 상대적으로 조금 더 무거운 한 쪽의 이야기.
배가 세느강 코스의 반바퀴를 도는 순간, 그 터닝 포인트에서 최고조에 이르렀던 감정. 그것은 정말 아름다우면서 슬픈 영화의 절정과 비슷했다. 이제 더 이상 저편 너머에 보이는 것이 무슨 건물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무척 슬펐을 뿐이다. 차가운 바람에 눈이 시렸고, 그것을 핑계로 시리도록 했다. 먹먹해진 목을 차가운 맥주 한 모금으로 해소한다.
에펠탑이 점점 가까워짐은 이 배의 출발지이자 목적지인 그 곳에 도달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까만 하늘에 별자리처럼 수놓인 에펠탑의 노란색은 난로의 붉은 빛의 색과 같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차가워진 마음을 천천히 녹인다.
배가 정지했다. 물살을 가르며 흔들리던 배도 이제 위아래로의 출렁임만을 반복한다. 만약 마음이 정지했었다면 심한 멀미를 느꼈을 테지만, 이미 마음은 더욱 흔들리고 있었기에 그 울렁임이 상쇄되는 것 같다.
그렇게 한동안 배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데 핸드폰 액정이 반짝인다. 메시지가 왔다. 한국과의 시차를 생각한다면 꽤나 이례적인 일이라 평소와 다르게 바로 확인을 했다.
몽마르뜨에서 만났던 여학생이다. 너무 감사하다고, 즐거운 시간이었다는 이야기. 유학생인 신분이니 사드렸다고, 다음에 이런 상황이 생긴다면 오늘 받은 만큼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전했다. 그렇게 몇 번의 대화를 더 하다, 한국에 오면 꼭 보자는 말로 우리의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
내가 준 것. 그 사람이 받은 것. 그리고 다시 내가 받은 것. 그 모든 것들이 떠오르며 단순한 고마움을 표시하는 그 몇 글자는 당시 왜 그리 벅찼는지. 기껏해야 형식적인 대화였을 뿐인데, 이별을 앞둔 공허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분명 준 것은 나였는데 오히려 받은 것처럼 답장을 하며 나는 분명 웃고 있었다.
액정에 고정된 눈은 여행이 줄 수 있는 다른 형태의 추억이었다. 어떤 도시와 자연도 줄 수 없는, 사람만이 줄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그 내용은 다른 형태로 쓰인 작별의 인사였다. 지금 겪는 것과는 또 다른 마지막 인사. 기약이 있는 인사. 나만이 기억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가 나를 기억하는 인사.
그 덕에 오늘 도시의 강은 나에게 기억하기 위한 곳이 되었다. 웃음 섞인 슬픔에 나는 웃픈 상태가 되어 배에서 내렸다.
Season.1 - 안녕. 그리고 안녕
[Spain, France] by.mindm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