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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moon Mar 29. 2017

"우리, 식사를 합시다."
'몽마르뜨'에서의 동행 Ⅲ

Day 7-8, Paris, France



#밥을 먹든 커피를 마시든 술을 먹든

  이런 날은 혼자서 보낼 수는 없어

  스무 살  (Feat. 다영) - Talk about 中



이제 정말로, 드디어 밥을 먹으러 간다. 친구와의 약속은 10시 10분인데, 벌써 오후 아홉 시가 조금 넘은 시간.

애써 침착하며, 티 나지 않게 서둘러야 했다. 우리가 찾는 식당은 가까이에 있었다.


‘사랑해 벽.’에서 도보로 5분 정도의 거리.

식당의 이름은 ‘Le BON Bock’이다.


입구의 빨간 간판을 바라본다. 1879년부터 시작되었다는 이 가게. 평소 오랜 역사를 가진 식당은 그들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 나로서는 반가운 소식이다. 내부로 들어갔다. 작은 규모의 식당이다. 아늑한 노란 조명과 원목 재질의 7~8개의 테이블.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이 프랑스 식당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에서 피어오르는 오랜 시간의 흔적이 어렴풋하게 보인다. 이미 자리는 거의 만석이었고 오직 한 테이블만이 남아있었다.





메뉴판이 나오자 다들 멀뚱멀뚱한 눈. 눈치껏 가장 먼저 오늘의 메뉴를 골랐다. 역시나 나머지 두 명도 오늘의 메뉴를 고른다. 스페인 식당의 ‘메뉴 델 리아.’라는 시스템을 수없이 봐서 익숙했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애피타이저, 메인 디시, 디저트로 구성된 오늘의 메뉴 중 우리는 각자 선호하는 것들로 주문을 완료한다. 물론, 같이 마실 와인까지.


식사가 시작된다. 나에게는 오늘 첫 식사이다. 다행히 음식은 정말 맛이 있었다. 두 사람도 호평 일색이다. 프랑스에 와서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이라는 여성분과, 식사 다운 식사는 처음이라는 남자분. 별거 아닌 칭찬에 나는 또 으쓱한다.


나는 평소 정말 친한 사람이 생기면 여기저기에 숨은 보석 같은 맛집을 데리고 간다. 그리고는 그 반응을 살핀다. 평소 맛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고 까다로운 탓에 실패한 경험은 거의 없지만, 늘 긴장이 된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그 음식이 바로 나온 직후의 순간. 그리고 그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그 순간. 


‘마음에 들어야 할 텐데.’


이런 식으로 나는 그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성격이 그렇다. 평소에 자주 전하지 못한 마음을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 행위를 통해 전달한다. 그렇게라도 전달하고서야 마음이 흡족하다. 늘 그렇게 꼭 돌려서 말한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들에게 그런 식으로 감사를 표하고 있다.



Le BON Bock, Lamb steak



서로의 음식을 먹어보며, 와인 몇 잔을 나누며 우린 많은 이야기를 했다. 직장인들은 직장인 나름의 고충을 털어놓으며 신나게 회사 욕을 했다. 유학생은 또 학생이 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고민과 걱정들을 푸념했다. 이야기를 할수록, 우리의 지친 마음들은 비단 각자의 몫만은 아니었다. 모두 다 그저 길 위를 걸어가는 고만고만한 존재들이었다. 그것이 단지 나만 아무 일 없이 잘 산다는 말로 누군가에게 시기와 질투를 유발하거나 상대적 박탈감을 줄 수 있기에 경계한 겸손인지, 혹은 반대로 너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위로를 건네는 것 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한숨과 함께, 남은 와인은 자꾸만 줄어갔다.



그런 이야기가 나오기에는 배경이 너무 아까워서, 우린 현실 이야기를 접었다. 그리고 또 다른 현실 이야기를 꺼냈다. 바로 이것에 있는 것. 파리를 이야기했다. 그렇게 해서 찾은 공통점으로는 세 명 모두 지금 이곳에서의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내 사그라진 고민과 걱정들. 같은 고민을 안고 살더라도, 어디에서 그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그 농도는 짙어질 수도 묽어질 수도 있나 보다.




어느덧 시간은 오후 10시. 이제 막 디저트가 나왔을 때, 나는 떠나야만 했다. 그리고 이야기해야만 했다. 먼저 떠나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자리의 흥을 깨는 송구함에 맞서야 했다.


이를 위해 꽤나 고전적인 수법을 썼다. 화장실을 다녀온다 하고 계산을 한 것이다. 그리고 자리에 돌아온 순간 바로 짐을 챙기며 말을 했다. 먼저 나가보겠다고. 식사 전부터 약속이 있다고 넌지시 이야기를 던졌기에 그들은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제가 계산했어요.” 

그들은 이 말에 놀랐다.


얼마가 나왔냐는 말에 아니라고, 그냥 괜찮다고 대충 얼버무렸다. 수많은 여행 중에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고. 좋은 사람들 만나서 좋은 식사를 하고 좋은 구경을 했다며 흘려 말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마지막 성의 표시였다.





디저트로 나온 크림 브륄레를 한입 크게 퍼먹고 서둘러 일어섰다. 우물거리며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려 하는 순간, 그들은 연락처 교환을 제안했다. 우린 카카오톡 아이디 교환을 했다. 언젠가 만날 기약을 하며. 그리고 꼭 연락하고 지내자는 말과 함께.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을 함께한 것에 비해 우리의 헤어짐은 너무나 신속했고 냉정했다. 그렇지만, 누가 먼저 안녕을 이야기할지. 누가 먼저 돌아 설지로 서로 눈치 보며 쭈뼛거리는 그런 질척한 안녕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렇게 그 둘을 남겨놓고 가게를 나왔다.

그리고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친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Season.1  - 안녕. 그리고 안녕

 [Spain, France]         by.mind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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