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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자수 Jan 25. 2022

오겡끼데스까??

코로나 확진 가족의 세상을 향한 서신

 110m2, 땅이라곤 밟아볼 수 없는 높은 공중에 떠있는지 벌써 열흘이란 시간이 지났군. 보이는 것이라곤, 끊임없이 달리는 도로 위의 차, 어쩌다 찾아오는 반가운 새들(우리 강아지는 불청객이라 생각하는지 짖으며 좇아낸다), 시간의 흐름을 어렴풋이 알려주는 하늘. 너희들마저 없었더라면 어찌 이 시간들을 견딜 수 있으랴. 찾아오는 이라곤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갈 수 있는 곳이라곤  110m2의 공간뿐인 이곳에서.


 이곳에 갇힌 사람은 총 4명의 추레한 사람들. 플러스..  옆 아파트 사는 11살짜리 여자 아이. 이런 경우는 모두들 특이 케이스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어쩌다 이들은 열흘 동안 함께 생활하게 되었을까? 세상이 두려워하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아이가 한 집에서 자기 식구들과 지내기란 쉽지 않은 일. 우리가 한 몸이 되어 너를 지킨다. 우린 슈퍼 파워 바이러스를 이겨내고 있는 용사이므로.


이곳에 갇힌 바이러스 수용자들은 줄무늬의 내복 차림으로 생활하는 군. 하아. 줄무늬 내복이라니. 흡사 영화 속 수용복과 비슷하구려. 3명의 어린 수용자들은 매일 같이 세계 여행을 떠난다. 바이러스로 인해, 마음껏 떠나지 못하는 세계 여행을 자유로이 여행하는 그대들의 모험을 지켜본다. 시간이 남아돌아, 여행지를 돌고 돌아, 한 도시에 몇 번을 정박하는 건지. 호텔은 점점 쌓여가는군. 9층짜리 호텔 건물이라니. 그대들이 이렇게 부자였다니. 그저 부러운 웃음만 지을 뿐이 오다. 하루 종일 세계 여행을 떠나는 그대들은 심심할 틈이 없어 보이오. (씨앗사의 부루마불 보드게임 너무 사랑하오. 상을 주어야겠소.)



고립된 채 생활하는 바이러스 수용자들이 이번엔 쇼핑이 하고 싶나 보군. 시장 놀이 시작! 종이로 돈을 만들고 이곳에 있는 온갖 물건을 사고팔기 바쁘구려. 아직까지 쇼핑의 흥미를 알지 못하는 그대들이 쇼핑이라니. 어지간히 지루한가 보군. 옆에서 지켜보던 감독자인 나는 문명세계가 선사한 손바닥만 한 네모진 요 녀석으로 이것저것 물건을 사보오. 난 고립된 섬에서 탈출하면 그토록 원하는 대지를 밟아 보겠소. 고로 보라색 운동화 한 켤레 구입했소. 아하하하.



하아. 저녁이 되니 답답한 마음을 위안받고 싶나 보군. 말캉말캉, 쫀득쫀득, 주물럭주물럭, 팍팍, 얄랑얄랑, 푹신푹신, 풍덩풍덩.... 주루 루룩 흐르는 이 이상한 물체는 무엇인고. 콧물 같이 흐르는 이 요상한 물체가 무엇이 그리 좋다고 만져되는고. 철퍼덕철퍼덕. 한없이 바닥으로 퍼져대는 꼴이 흡사 바이러스로 인해 제 한 몸 가누지 못해 침대에 퍼져 있던 나의 몸 같소.


찾아와 주는 것이라곤 덩그러니 놓여있는 현관 앞 비닐봉지들. 하루는 이 친구가 딸기와 갓 담근 김치를 가져왔소. 하루는 다른 친구가 닭볶음탕과 젤리를 가져왔소. 하루하루 배달되는 이 음식물 덕에 우리가 하루하루 생명을 연장할 수 있구려. 삼시 세 끼를 해 먹는 노동이 이렇게 중요한지 몰랐소이다. 아침을 먹고 돌아서니, 점심은 무어냐 묻는 줄무늬 수용자들을 그저 소리 소문 없이 매서운 눈 총알을 쏠뿐이오.


"오겡끼데스까?"

하루에 한두 번씩 창밖을 바라보며 외쳐보오. "그대들 잘 지내고 있소?!"

(영화 '러브레터'에서는 하얗디 하얀 설원에서 멋지게 외쳤지만, 우린 내복 차림에 추레한 모습이어서 멋은 안 나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우리는 다랑쉬오름이 보이는 숲 속 어느 집에서 산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잠을 깼어야 하오. 마음껏 숲 길을 밟으며 숲 속 공기를 마셨어야 하오. (인생은 늘 계획과는 상관없이 흘러가는구려.)


우리가 없어도 세상은 참 잘 돌아가는구려. 시간은 소리 소문 없이 잘 흘러가는구려. 쪼매 서운하기도 하지만 내 나름 갇힌 이곳에서 일상의 소중함으로 매우 절실히 느꼈소. 내 발로 원하는 곳을 가고, 내 코로 원 없이 세상의 공기를 마시는 일이 이토록 소중한 일인지 몰랐소.


매서운 추위는 좀 끝났소? 밖에 나가면 어떤 옷을 입어야 하오?

이제 기다리시오. 슈퍼 파워 용사들이 곧 세상으로 달려 나갈 것이오. 우리가 살아서 돌아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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