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이 된 혀니는 요즘 레고에 푹 빠졌다. 레고 중에서도 '닌자고'와 사랑에 빠져 하나씩, 하나씩 기회가 될때마다 선물받아 조립하곤 한다. 그리고 터닝메카드 장난감 모으기도 아직까지 사랑하는 중.... 아기때부터 인형보다는 자동차에 관심이 많던 혀니는 로보카 폴리, 헬로 카봇, 터닝메카드 등 남자 아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모았다. 혀니는 여자 아이지만, 파란색을 좋아하는 터프한 아이다.
방학 중 프로젝트로 어린시절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정리하기로 했다. 4살난 쭈이는 우리 집에만 놀러오면 누나 방에 들어와 눈이 휘둥그레진 채 구경하느라 바쁘다. 혀니는 기분이 좋다면, 쭈이에게 장난감 하나씩 선물해준다. 쭈이는 신이나서 누나가 최고라며 뽀뽀해준다. 로보카 폴리, 헬로 카봇, 총과 칼은 친한 동생 쭈이에게 그렇게 흘러갔다.
혀니는 요즘 '닌자고 하이드로 전함'이 너무나 갖고 싶다. 엄마가 비싼 장난감은 절대 못 사준다고 엄포를 놓았기에 궁리를 하던 혀니는 당근마켓에 자신의 장난감을 팔겠다고 했다. 심심할때마다 엄마 핸드폰으로 당근마켓에서 '터닝메카드'를 검색해보더니... 하나, 둘 정리하더니 가격을 책정하고 어린 주인을 기다려본다.... 우와. 하나 둘 거래가 성사되었다.
신기한 건. 장난감을 사러 온 사람들은 의외로 엄마가 아닌 "아빠"다. 육아의 세계가 달라졌다. 엄마들의 점유물이라고 여겨졌던 당근마켓을 아빠들도 많이 하다니. 최근에 거래한 모든 분들이 다 남자분이었다. 퇴근 시간 혹은 직장에서 근무하다 점심시간에 들린 것일테다. 작업복 차림에 쏜살같이 달려오는 자동차에 아이를 향한 사랑이 뭍어난다. 추운 겨울날 잔뜩 껴입은 작업복 속에 몸을 웅크리지만, 눈은 웃고 있다.
장난감 조립은 엄마인 나에게 너무나 어렵다. 그래서 거래 시에는 아이를 꼭 데리고 나갔는데.. 아빠들이 아이에게 어떻게 조립하는 거냐고 묻는다면, 신이 난 혀니는 열심히 조립하고 설명한다. "이렇게 이렇게요. 이렇게도 변신해요!" 추운 겨울에 손이 한창 시려울텐데 야무지게 조립한다. 물론, 엄마들과 다르게 상태를 확인하라고 해도 쿨하게 그냥 가져가는 분도 있긴 하지만.... 이렇게 말이라도 아이에게 건넬라치면 아이는 더욱 신이 난다.
아쉽지 않냐는 말에 아이는 쿨하게 돈을 들어보이며 웃는다. "엄마도 당근에서 뭐 사면 기분 좋잖아!!"
더욱 행복함을 느낀 건... 거래 후기가 오고 갈때.
<여자 아이가 가지고 놀던 거라 상태가 좋아요>라고 썼지만, 정말 이렇게까지 상태가 좋을까 했을 거다. 그래서 보내온 인사를 보면, 엄마인 나도 아이도 기분이 한결 좋다.
요즘 당근마켓 재미에 푹 빠진 아이는 핸드폰에 앱을 다운받을 수 있다면,당근마켓은 무조건 1순위로 다운 받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워킹맘으로 어쩔수 없이 스마트폰을 사줬지만, 유트브, 구글 플레이 등 다 삭제한 상태).. 당근마켓은 누가 만든거냐고 칭송하며, 그 사람은 어떻게 돈을 버냐고 묻는다. 기부라도 하고 싶나보다.
다른 나라에서는 크리스마스나 땡스기빙데이 같은 때에도 새 물건을 선물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아끼던 물건을 하나씩 들고 친구나 선생님에게 선물한다고 한다. 새 물건도 좋지만, 누군가의 추억이 담긴 소중한 물건이었던 중고도 뭐 그다지 나쁘지 않다. 이젠 그에겐 필요없어졌지만, 누군가에겐 그토록 갖고 싶은 간절한 물건이기도 할테니.
한켠으론 .. 엄마, 아빠가 일하러 간 사이 아이의 친구가 되어주었던 장난감, 아이의 외로움을 달래주었던 장난감을 보내자니 아쉬움도 든다. 포장해놓은 장난감을 보니, 쪼그려 앉아 장난감과 대화하고 놀던 아이의 뒷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장난감 사이 사이로 묻은 아이의 손때만큼, 아이도 조금씩 자란 것 같다. .. 그러니 친구를 떠나보낼 용기도 생기는 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