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짐을 정리하는 날, 먼지와 때가 켜켜이 쌓인 상자를 오랜만에 열었다. 쾌쾌하고 묵은 먼지의 냄새, 오래된 고전에서 나는 묘한 냄새 속에 꺼내 든 나의 일기장 속에는 오랫동안 주인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홀로 잠자고 있던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00 국민학교. 5학년 3반.
빛바랜 일기장 속에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어떤 꿈을 꾸고 살아가고 있었을까?
국민학생이었던 아이의 일기장 속에는 매일 같이 착한 어린이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이 적혀 있었다. 어찌나 반복되는지 참, 심심하기 짝이 없는 일기장이었다. 실망스러웠다. 추억이란 낡은 냄새를 실망시키다니.
그때 당시에는 어린이의 프라이버시 따윈 중요하지 않고 아이들의 세계를 속속들이 알고 싶은 어른들의 욕심으로 일기장 검사를 하곤 했으니, 그도 그럴 것이다.
선생님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새 나라의 새 어린이니까 착한 어린이가 되고 싶었던 게지. ‘그때의 그 마음. 이해한다.’ 중얼거리며 심드렁하게 일기장을 덮었다.
다른 아이들도 이토록 착한 아이가 되고 싶었을까?
모든 결론이 '착한 아이가 되어야겠다.'라고 다짐했던 일기장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유독 나는 착한 어린이가 되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아니, 착한 어린이가 돼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절절맸던 나였다. 그 말인즉슨, 내가 나쁜 아이라서, 어른들 말에 의하면 복도 지질히 도 없는 년이라서 아빠가 일찍 죽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 왜 나에게 일어났을까?
남들에게 다 있는 아빠가 나는 왜 없을까?
왜 엄마는 아직 엄마가 필요한 순간에 우리를 외갓집에 맡겼을까?
매일같이 찾아오던 존재에 대한 의문은..
내가 나쁜 아이라서, 내가 말을 잘 듣지 않아서 이런 일들이 생긴 거라고, 내가 만약 잘못을 저지른다면 또 다른 무시무시한 벌이 다가올 거라는 허구로 귀결됐다.
부모의 죽음을 경험한 아이,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아이, 부모를 떠나보는 경험한 아이, 부모의 학대를 경험하는 아이들은 나와 같은 생각을 종종 한다. 세상은 온통 선하고 좋은데 나 하나를 나쁜 존재로 여긴다면.... 그렇다면 나란 존재만 나아지면 세상은 바뀔 여지가 있고 더 이상 나에게 나쁜 일이 생기지 않을 거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분석가 도널드 페어베인은 이를 ‘도덕적 방어’라고 이야기하였다.)
그러니 일기장 속에 빼곡히 들어선 ‘착한 어린이가 되어야겠다.’는 나 자신의 존재를 살리기 위해, 내 세계를 견고히 지키기 위해 어린아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으리라. 엄마에게 또다시 버림받을까(엄밀히 말하면 맡긴 건데 그렇게 여겨졌나 보다.), 엄마마저 잃게 될까 봐 두려웠다. 부모 중 한 사람을 잃은 아이는 남겨진 다른 사람마저 잃게 될까 봐 종종 공포에 떤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지금은 아빠의 죽음 사건이 내가 재수 없는 존재 때문이 아님을, 내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알게 되었지만 그때 당시엔 이유모를 죄책감에 시달리곤 했다. 엄마가 밉고 엄마가 간절한 만큼, 그만큼의 죄책감에 시달리곤 했다.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면, 나와 같은 슬픔에 처한 아이를 만나면 떠오르는 영화 속 장면이 있다. 나에겐 슬픔을 완화시키는 장치 같은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야자 땡땡이치고 쪼르르 달려가 보았던 영화. 잘생긴 얼굴의 주인공을 큰 화면으로 본다는 설렘에 한껏 달떴던 날. 제주시 칠성통 골목에 있던 허름한 극장에서 눈물, 콧물 다 흘리며 보았던 영화.
굿윌 헌팅
입양, 파양, 학대를 당했던 윌은 숀과 상담을 한다.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았던 그에게, 상담을 하면서도 반항적이고 독을 퍼붓는 그에게 숀은 마지막 상담 장면에서 이렇게 말한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
뿌리치는 윌에게 숀은 계속해서 진정성이 담긴 눈빛과 어조로 단호하게 말한다.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날 이 대사가 내 마음속에 콕 박혔다.
아빠가 죽은 것도, 아빠 없이 사는 서러움에 갇힌 삶을 사는 것도, 엄마가 나를 떠났던 시간이 존재하는 것도...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라고..
어쩔 수 없이 그런 일들이, 세상에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거라고.
이 일들 가운데는 분명히 그분의 뜻이 있고 언젠가 모든 해답을 알 수 있게 되는 날이 마침내 찾아올 거라고 그 밤에 그렇게 나를 다독였다.
그 아이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켜켜이 묵은 앙금과 어설픔, 가시를 걷어내고 어떤 일에도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떤 일에도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를 지닌 어른이 되고 싶었다. 혼자서도 외롭지 않은, 혼자서도 우뚝 설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나처럼 상실의 깊은 슬픔을 가진 이들을 위로해주는 상담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착한 어린이가 되게 해달라고 빌었던 그 아이는...
그날 이후로 누군가를 위로하는 상담자가 되는 꿈을 가진 여고생을 지나...
그리고...
꿈꿔온 대로 그럭저럭 괜찮은 어른이 되었다.
숀처럼 죄책감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상담자가 되었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
따뜻한 이 말 한마디는 오늘도... 나에게, 내가 만난 아이들을 살게 해 준다.
"내 삶이라는 돌무더기를 찬찬히 뒤지며 그 안에 숨은 보석을 찾아보고 싶었다.
나의 상실을 귀중한 부가가치이자 폐허를 재건할 수단으로 재구성하고 싶었다.
-상실의 언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