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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자수 Oct 28. 2022

그때는 어렸고 다 지나갔다.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나의 어린 날들에게 

 




코로나로 인해 학교에 가지 못한 둘째 아이는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린다. 가끔씩 전화를 걸어 “엄마 언제 와?” 묻거나, “엄마 빨리 와!” 한 마디로 기다림을 묵묵히 감내해낸다. 아이가 애써 묵혔던 마음은 “혼자 있기 정말 싫어. 외롭단 말이야...”라고 소리치는 잠꼬대를 통해 그 실체를 드러내곤 한다. 살아가면서 기다림을 끊임없이 연습하는 아이와 함께 “엄마 언제 와” 그림책을 꺼내 들었다.    


 색연필과 수채물감으로 표현된 저녁노을이 애잔하게 펼쳐지고 있다. 엄마는 기다릴 아이를 생각하며 분주하게 퇴근길을 준비한다. 하지만 퇴근으로 향하는 길은 쉽사리 이어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펼쳐지는 일의 향연 속에 엄마는 더욱 애가 탄다. 이제 정말 끝인 걸까.. 드디어 퇴근길에 오른다. 열심히 뛰어 전철역으로, 커다란 공룡 배 속(지하철)으로.. 엄마는 퇴근길에서도 아이 생각에 여념이 없다. 제 아무리 아름다운 주황빛의 노을이 내 머리 위에 펼쳐져도 내 눈엔 다가오는 밤을 알리는 무채색의 하늘만 더 들어올 뿐이었다.   


 “조금만 기다려줄 수 있지?”      

 그림책 속의 엄마와 아이를 보며 아이와 함께 추억의 상념에 젖는다. 

 “엄마, 나 그때, 엄마 맨날 기다렸지. 대개 외로웠는데... 그래도 좋은 점도 있었어. 선생님이 나한테만 사탕 주시고 그랬거든.”


외롭고 쓸쓸한 기억으로만 남을까 염려했는데 아이는 그 속에서 행복한 기억도 같이 꺼내 든다. 그림책 속에 빈 여백으로 표현된 외로움과 쓸쓸함이 가득한 마음의 자리에 아이는 새로운 색의 경험들도 조금씩 채워갔다. 그리고 언제나 기다린 엄마를 무사히 다시 만나는.. 수도 없는 경험을 통해 기다림 뒤에 만끽하는 기쁨도 맛볼 수 있는 아이가 되었다.          

 

 “엄마.. 엄마가 아침에 나가면 속상하지만 그래도 마음이 아픈 언니 오빠들 도와주니까 괜찮아. 엄마가 자랑스러워”라고 이야기하는 아이가 되었다. 헤어지는 슬픔 만이 아닌 엄마가 하는 일들에 대한 자랑스러움도 슬쩍 끼어넣을 수 있는 아이로 자랐다.     

      

아이와 훈훈하게 마무리하는 즈음... 

웬일인지 쉽사리 내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림책이 주는 깊은 여운이 요 며칠, 오래도록 곱씹어졌다. “엄마 왜 안 와”라는 말이 왜 이리도 사무치게 맴도는지 차마 제목을 읽을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둘째 아이와의 추억은 마음이 아팠던 대로, 기특한 대로 그럭저럭 지나갔는데... 왜 이리 내 마음은 아직까지 물먹은 스펀지 마냥 축축 늘어져 있는 것인지....     

     

.....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에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나의 엄마는 옷가게를 하셨다. 혹여나 아이들이 깨서 배고플까 걱정하며, 우유와 빵을 두고 새벽 시장에 가셨다. 엄마가 돌아오면 방문 앞에는 널브러진 빵과 우유, 그리고 울다 지쳐 잠든 언니와 내가 있었다고 했다. 엄마의 이야기 속에 만난 나는 밖에서 걸어 잠근 문으로 세상과 단절된.. 깜깜한 광야에 홀로 내버려진 아기였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지금처럼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길 수도..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맡길 수가 없는 그런 시절.  


 그러다 지금의 둘째와 비슷한 나이인 9살 때, 언니와 나는 시골 외갓집에 맡겨지게 되었다. 엄마 없이 지냈던 1년 반의 시간은 혹독한 이별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보고 싶어도 보고 싶다고 보채고 울 수 없었던 이미 철든 아이였다. 그저 외로움을 달랠 길은 뒷산에 올라 마른땅에서 자라는 풀잎들을 쭈그려 앉아 오래도록 바라보는 일. 마당 평상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일. 새순이 돋아나는 목련을 보고 푸른 매실이 통통하고 둥글게 익어가는 계절의 흘러감에 따라.. 엄마가 돌아올 날을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기다리던 엄마가 왔다. 명절 분위기에 한껏 들떠있던 나무들도 산들바람으로 나의 걸음을 재촉하였다. 주체할 수 없는 설렘에 발맞추어 한들한들 산들바람이 함께 춤추었다. 하교하자마자 달려서 외갓집에 갔건만, 엄마는 친척들 틈에서 음식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막상 엄마를 오랜만에 보니 차마 가까이 다가갈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그런 나를 보고 먼저 반가워해주었더라면 덜 서러웠을 텐데... 그런 마음을 엄마는 모르는지, 혹은 내어 맡긴 나를 안아주는 게 미안했던 건지.. 엄마는 나에게 오지 않았다.    

       

쭈뼛쭈뼛 망설이다 마침내 용기를 내어 오랜만에 불러본 이름.... “엄마야~~~”...

내 딴에는 최대한 다정하게, 그리고 정겹게, 내 나이만큼의 귀여움을 담아 엄마를 불렀다. 하지만 엄마와 이모들은 “엄마 야!”가 뭐냐고 “야”를 붙인 것을 나무라셨다. 한 순간에 난 버릇없는 아이가 되어버렸고, 엄마와 나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마음도 멀어지게 되었다. 차라리 나와 엄마 사이에 수많은 친척, 사촌들이 있는 게 다행이었다. 북적북적,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 민망함과 서러움에 붉게 물든 나를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해 참 다행이었다.         


차마 용기 내어 꺼내볼 수 없었던 장면들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아! 그래서 이토록 마음이 아렸구나. “엄마 왜 안 와”란 말에 사로잡힌 내 마음을 내팽개칠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새벽마다 사라지는 엄마를 기다리며 한없이 울고 있었을 내가.... 엄마를 오랫동안 볼 수 없어 그리움에 눈물 삼켰을 내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말이었구나. 

“엄마 왜 안 와.”


“엄마 왜 안 와.” 

너무나 묻고 싶은 말이었다. 엄마는 왜 올 수 없었는지, 엄마는 어딜 가야 했는지.. 그러나 끝내 할 수 없었던 말이었다. 묵혔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른이 된 나에게도,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나에게도.. 이토록 서러운 마음이 지금까지 남아 있었구나. 쉽사리 꺼낼 수 없어, 쉽사리 묻을 수도 없어.. 어느 곳에 자리해야 할지 몰라 헤매던 마음이 내게 있었구나...     


가만히 2살, 9살의 어린 “나”를 불러낸다. 그 아이는 여전히 서러움과 외로움에 울고 있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어린 시절의 나'를 나의 소중한 내담자(client)라고 생각하고 내 앞에 앉힌다.  

잘 자라주어 그럭저럭 괜찮은 어른이 된 내가, 아픔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된 내가,,  이 아이를 감싸고 보듬어준다.    

 

 “자수야. 얼마나 엄마를 기다렸니..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엄마가 참 많이 원망스러웠겠다...

너무나 외롭고 쓸쓸했겠네. 

망망대해에 홀로 파도와 싸우고 뜨거운 햇살에 울었을 너의 외로움을 내가 안아줄게............. 

그 아픔이 재연되지 않도록 언제나 너를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돌아가 꼭 안아주는 네가 참 자랑스러워.

그때는 어렸고 이제는 다 지나갔어. 

그 아픔을 내팽개치지 않고 잘 보듬고 살아온 덕분에 네가 만나는 아이들을 위로하고 공감해줄 수 있게 되었어. 괜찮아.... " 

    

여름의 끝자락이 이렇게 흘러간다. 

내 인생의 때 이르게 찾아왔던 겨울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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