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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자수 Oct 03. 2021

나와 아이들 마음의 여우비

워킹맘의 육아 이야기


“엄마. 엄마 학교 안 가면 안돼? 엄마가 맨날 맨날 학교 안 갔으면 좋겠어!

엄마 엉엉. 엄마가 매일매일 보고 싶어!”


2년 만에 복직 후, 한동안 되풀이되었던 아침 일상의 한 장면이다. 이제 6살이 된 첫째와 28개월 된 둘째를 떼어 놓고 바쁘게 직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늘 무겁다.


복직한 첫날, 하필이면 둘째는 기관지염에 걸리고 첫째의 유치원 입학식은 3일 뒤에 있었다. 날 언제나 설레게 하는  학생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 내가 차리는 밥이 아닌 다른 사람이 해주는 밥(급식)을 먹는다는 사소한 기대감도 있었지만 아이들을 떼어놓고 복직을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늘 고민되었기에 오랜만에 몸을 실은 전철에서는 수많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2년 만에 복직인데 학교는 얼마나 변해있을까? 많은 업무를 감당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고 어려운 일들이 많은 학생들을 잘 상담해줄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은 항상 곁에 있던 엄마 품에서 떠나 잘 성장할 수 있을까?

일을 하는데 아이들이 아프면 어떻게 하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염려 아닌 염려들을 떠올리며 이동하다 보면 어느새 1시간 넘는 거리에 위치한 학교에 도착해 있었다. 신규 때도 이렇게까지 떨리진 않았는데 싶어 나 자신이 너무 우습기도 하였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걸려온 전화..

“난 엄마가 좋아서 엄마랑 놀고 싶은데 엄마가 아침에 없잖아.

내가 엄마 학교 따라가면 안 돼? 유치원 아니고 엄마 학교 다닐래”

첫째가 전화기 넘어 엉엉 울며 투정을 부렸다. 아이들의 울먹이는 소리를 듣자니 나도 모르게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내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엄마랑 저녁에 만나서 놀자..'라는 말로 위로만 할 뿐.... 지금이라도 당장 아이들에게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나를 반겨주는 직장 동료들, 친구들의 응원에 의지하여 마음을 강하게 먹기로 다짐하였다.



복직을 한 후, 3월 동안에 아이들은 고열과 독감에 걸린 데다가 감기가 떨어지지 않아 마음고생, 몸 고생 참 많이 하였다.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서툰 어린아이들이라 그런지 엄마와 떨어지는 스트레스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스트레스가 몸으로 표현되었던 것이다. 친한 언니와 통화를 하면서 '아이들은 엄마가 일하기 시작하면 꼭 많이 아프다고, 아이들은 엄마의 품에서 면역력이 더욱 생기나 보다.'라고 농담처럼 했던 이야기가 현실처럼 다가오다니... 워킹 맘이 가장 힘들 때는 아무래도 아이들이 아플 때이다. 조퇴도 휴가도 쉽지 않기에 매일 발만 동동 구르며 기도밖에 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아프면 마치 내 잘못인 것 같아 우울해질 때도 참 많이 있었다. 하지만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아이들과 나는 차츰 적응해나갈 수 있었다.



엄마 품이 그리운 아이들은 엄마의 퇴근 시간만 기다리고 엄마를 꼭 안고 이야기 나누고 싶어 한다. 하지만 바쁘게 돌아온 엄마는 저녁을 준비해야 하고, 씻겨야 하고,  엉덩이 붙일 틈 없이 바쁘다. 직장 일에, 오가는 출퇴근길에 힘든 엄마는  아이들과 온전히 함께 하기 정말 어렵다. 복직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짜증과 화를 많이 내기도 하였다. 6살 첫째와의 대화는 늘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엄마가 요즘 린이에게 화를 내면 기분이 어때?”

“너무너무 엄청 엄청 속상해.”

“그럼 엄마가 어떻게 해주었으면 좋겠어?”

“내가 울 땐 날 꼭 안아주고 왜 울어? 이유를 말해봐.

하면서 부드럽게 물어보고 내가 잘못했을 땐 다음부터 그렇게 하지 마.

그리고 엄마가 오늘만 화해해줄 거야 하고

엄마가 놀리고 나선 농담이야 괜찮아 다음부턴 안 그럴게.

이렇게 해주면 좋겠어. 그리고 엄마가 아주 많이 많이 안아 주었으면 좋겠어.”


복직과 동시에 꼭 해야 할 일 중 하나로 결심했던 것은 “자기 전 아이들과 대화하고 안아주기”였다. 지킨다고 해놓고 잊었다는 생각이 든 순간,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아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한 것이, 몇 번 안아주는 것만으로 괜찮다고 혼자 착각했던 것이 참 못나게 느껴졌다. 때때로 지쳐서 아이들을 빨리 씻기고 재우고 싶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을 때도 있지만, 첫째 아이가 말한 것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꼭 안아주는 것으로 함께 하지 못한 시간을 빈틈없이 채워줄 수 있다고 여겨진다.


아이가 가져온 그림책


첫째 아이는 자기 전, 책을 읽는 것이 습관화되었기에 책을 읽으며 대화하기 안성맞춤이다. 어떤 날에는 아이가 ‘우리 엄마.’, ‘나에게도 사랑을 주세요.’, ‘영원히 널 사랑할 거야.’ 책을 골라왔는데 아이의 마음이 느껴져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하였다. 이 책을 읽으며 아이는 엄마랑 헤어지기 싫고 늘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하기도 하고, 엄마가 나를 계속 사랑해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때로는 엄마랑 다녔던 곳을 고모나 할머니와 다니게 될 때 엄마가 더욱 그리웠노라고, 다른 친구들은 엄마랑 같이 다니는데 나만 엄마랑 안 다닌다는 속상한 마음도 내비쳤다. 속상한 마음을 들어주고, 토닥여주며 엄마가 여전히 너희들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 어느새 아이들이 함박웃음 짓는다. 서비스로  뽀뽀해주고 꼭 안아주면 어느새 아이들이 까르르 웃음 짓는다.


‘엄마 냄새’ 책에서 하루 3시간 아이들과 꼭 함께 있어주라고 하였다. 신기하게도 퇴근 후, 아이들은 3시간가량을 엄마 곁에서 조잘조잘 떠들어 대고 안아달라면서  “엄마 냄새가 정말 좋아.”라고 말한다. 그 시간은 온전히 아이 스스로 재충전하는 시간일 것이다.  엄마 냄새를 충분히 맡게 해 주고, 밤새 엄마 옆에서 잠을 자고, 주말에는 함께 마음껏 놀다 보니  아이들은 아프지 않고 건강해졌다. 이제는 둘째 꼬맹이가 아침에 일어나 엄마를 찾지 않고, 울지 않으며 아빠에게 ‘이제 하현이 아가 아니지? 엄마한테 나 안 울었다고 자랑해줘.’라고 말을 하니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내 아이들의 적응과 함께 한 움큼 더 성장할 내일을 기대하는 것처럼, 일자리에서도 내일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2년의 휴직으로 경력이 단절되었다고 염려했던 것이 이제는 큰 감사가 된다. 두 아이를 키우며 절로 생겨났던 공감 능력과 인내심은 상담을 하는데 큰 자산이 되었다.  중학생이 되어도 여전히 엄마의 따뜻한 말, 엄마의 따스한 품이 그리운 아이들이 너무나 많다.  잔소리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너무나 그립다.  아프고 속상한 마음을 위로해주고 보듬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부족하지만 아이들의 마음과 함께 하며, 지금은 독한 사춘기를 거치며 반항하고 토라져 있지만 내일이 다르고 모레가 또 다를 아이들의 인생이 기대된다. 상담을 신청한 학생에게 맞는 도움을 제공하고, 위로하면 아이들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또한 학부모 교육이나 상담을 할 때면 워킹 맘으로 사는 경험이 큰 자산이 된다.  


첫째 딸은 가끔 엄마가 왜 중학교 선생님이어야 하냐고, 왜 상담 선생님이어야 하냐고 묻는다. 그럴 때면

"마음이 아픈 언니, 오빠들이 많아. 엄마는 그 언니 오빠들 이야기도 들어줘야 하고 함께 해줘야 돼.

하린이도 마음 아플 때 엄마를 찾지? 언니 오빠들도 그래."

몇 번 이야기해줬더니 이제는 이해하는 척,

“엄마 나도 엄마가 필요하지만 내가 양보할게.

엄마 학교 다녀. 그런데 엄마는 몇 살 때까지 학교 다닐 거야?”

아이다운 발상의 웃긴 말을 하기도 한다. 20살이 되면 대학교를 간다는 것을 아는 첫째는 다 큰 엄마가 아직도 학교를 계속 다닌다는 것이 참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다. 호기심 가득한 아이의 눈을 마주하며

“엄마는 아직 배울 게 많아. 그래서 계속 계속 학교 다녀야 해!”라고 대답하였다.

그렇다. 아직도 육아, 일, 인생에 있어서 배울 게 너무 많다. 그렇기에 나의 직장이 공교롭게도 '학교'라서 다했고 재밌다. 언젠가 바쁘게 일하고 있는 나에게 누군가 물었다.

“집에서 애 보는 게 나아요? 일을 하는 게 나아요? 아니 어떤 게 힘들어요?”

“내게 주어진 환경에 얼마나 감사하고 만족하느냐에 달린 것 같아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지금이 더 힘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감사할 것들이 매일 생기는 거 같아서 살만한 것 같아요.”

워킹 맘으로 일과 육아 사이에서 하루하루 고민되는 일들이 많고, 선택해야 하는 일들이 많이 있지만 작은 것에 감사하자고 마음먹었을 때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워킹 맘의 삶을 잘 헤쳐 나갈 수 있는 것 같다.


두 아이의 엄마로,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으로..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워킹 맘으로 “해낼 수 있을까?” 란 물음표 앞에 조금씩 해내고 있다고... 그렇기에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앞으로의 삶이 더욱 기대가 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듯하다. 때로는 주변 사람들이 아이들을 좀 더 키우는 것이 어떠냐고, 엄마 품을 그리워하는 아이들을 두고 어떻게 일을 하느냐 묻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나 자신, 나의 가족을 넘어서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있단 생각에 뿌듯하다. 우리 아이들도 언젠가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자랑스러워할 날이 있을 거라 생각해본다.


오늘도 내일도 워킹 맘으로 힘차게 살아가 보련다.


** 여우비: 여우비는 맑은 날에 잠깐 내리는 비이다. 이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대기 높은 곳에서 강한 돌풍이 몰아치기 때문이다. 비구름은 멀리 떨어진 곳에 있으나 강한 바람으로 인해 빗방울이 구름이 끼지 않은 맑은 곳까지 오는 것이다.(위키백과사전 인용)


**육아와 일을 병행하다 보면 잘 지내다가도 어느 한순간, 잠시 잠깐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그리고 저만치 일어난 큰 일들로 인해 아이들과 내 마음에 비가 내릴 정도로 영향을 미치곤 한다. 이런 것들을 빗대어 제목을 ‘여우비’라고 표현해 보았다. 장맛비, 폭풍우가 아닌 여우비이기 때문에, 그것도 맑은 날에 잠깐 내려 금세 날이 맑아지도록 하는 비이기 때문에 앞 날을 기대하며 워킹 맘으로 살아갈 수 있는 듯하다.


<나의 복직기의 도움을 주신 분>

남편.

무엇보다  남편은 늘 나의 든든한 조력자였다. 남편의 직업은 학원 강사이기 때문에 내가 일찍 출근을 하여도 걱정 없이 나갈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아침마다 부대끼며 준비해서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보내는 일은 남편이 도맡아 하였다. 내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아이들과 조금이라도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남편은  청소, 쌀 씻어놓기, 빨래 등 많은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특히 남편이 쌀을 씻어 놓으면, 퇴근 후 집에 와서 앉히기만 하면 됐다. 밥이 되는 동안 아이들과 하루 동안 쌓인 이야기를 나누고 웃을 수 있었다.  또한 요리를 잘 못하는 남편이 노력에 노력을 다 한 끝에 가끔씩 해 놓는 카레에는 남편의 세심한 배려와 사랑이 듬뿍 담겨 있었다. 나 또한 아침에 남편이 조금이나마 신경을 덜 쓸 수 있도록 아이들 옷가지 챙기기 등은 자기 전 내가 꼭 해놓는 일 중에 하나였다.


시어머니와 시누.

직장 근처로 이사를 고민했었다. 하지만 직장에 다니며 아이들을 케어하기에는 예상치 못한 변화무쌍한 일들을 감당할 수 없을 거란 판단에 시댁 근처에서 살기로 했었다. 시어머니와 고모의 도움으로 아이들을 좀 더  빠르게 안정되었고, 적응해 나갔다. 아이들이 아파서 원에 갈 수 없을 때에는 시어머니와 고모가 번갈아가면서 봐주셨고, 혹여 회식이나 교육 등의 이유로 늦어질 때도 흔쾌히 아이들을 돌봐주셨기에 안심하고 직장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하고, 퇴근길에 조금이라도 아이들을 빨리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턱에 숨이 차도록 뛰어다니는 며느리가 안쓰러워 늘 걱정해주셨던 시어머니께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우리는 아이들을 잠깐 보면 되지만, 너는 일하면서도 문득 생각나고 혼자 있고 싶어도 그러지 못할 텐데 조금이나마 네 시간도 가져.’ 라며 배려해주시던 시누에게도 참 감사하다.


동네 엄마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듯이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휴직기간 동안 동네 엄마들과 친분을 다져왔다. 친한 언니들은  아이들 하원을 도와주겠다고 먼저 이야기해주었던 고마운 사람들이다. 때때로 퇴근할 때까지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서 놀기도 하고, 맛있는 빵을 구워 주기도 하였다. 아이들이 준비물을 깜빡 잊고 챙기지 못했을 때 챙겨주기도 하였다. 첫째 아이가 다녔던 어린이집 원장님도 함께 걱정해주고 힘을 주었다. 어떤 날은 시어머니, 시누 모두 바쁜 날이어서 첫째 아이를 돌봐주실 수 없었다. 그날엔 다른 유치원에 다니는 첫째 아이까지 둘째 아이와 함께 어린이집에서 봐주셨던 배려가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2015년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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