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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자수 Nov 16. 2021

마흔, 또 다른 시작의 이유

 언젠가부터 금요일 퇴근 후, 그리고 주일 밤에 정확히 설명하기 힘든 어떤 감정에 휩싸였다. 이 감정은 기분 좋은 것과는 완전히 다른, 분명 부정적인 감정이었다. 어떤 감정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에게 주어진 숙제를 다 안 끝낸 조급함, 답답함이었다. 주 5일 직장을 다니고, 두 아이를 돌보는 엄마이기에 상대적으로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그런 와중에 박사 논문까지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내년 8월 졸업을 목표로 삼고 논문을 준비하고 있지만 진도가 안 나간다. 한 주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불안감, 주말 동안 아무것도 안 했다는 한심함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지난 주일 밤에 일부 자료 정리를 끝냈다.      


 그러니까 박사 논문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하기 위해서는 내가 왜 박사논문을 쓰고 있는지, 왜 박사를 시작하게 됐는지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다른 전공에서 ‘박사 학위’의 의미는 잘 알지 못하지만 그래서 요즘 트렌드에 자신이 없긴 하다. 여하튼 보통은 박사 공부를 한다고 하면 교수를 준비하는지 안다. (우리 엄마도 교수될 거 아니면 왜 하냐고 하셨다.) 하지만 내가 공부하는 상담 분야에서는 박사학위를 취득한다고 해서 꼭 교수가 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유학파들도 요즘엔 교수되기 힘든 지경이라 애당초 꿈꾸기엔 너무 먼 님일 뿐이다. 나이도 이젠 있고......  그러함에도 박사는 필수코스처럼 느껴진다. 석사 동기들도 대부분 박사과정에 들어섰으니 상담 분야에서는 어쩌면 필수적인 코스가 아닐까 하는 착각도 든다. 여하튼 이 바닥은 이렇다. 많은 이들이 다 하니까 박사를 한다고 하면 너무 힘 빠지는 이야기니 나의 시작의 이유를 이야기해야겠다.      


 아직은 박사 공부를 하기엔 덜 여물었다 생각했다. 그런데 4년 전에 생각지 못한 기회가 생겼다. 평소에 좋아하고 존경하던 교수님께서 나에게 물으셨다.

“00 선생은 나중에 뭐하고 싶어?”

이미 이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나에게 이 질문은 너무나도 신선한 질문이었다. 이미 꿈을 이뤘다고 생각했는데 더 할 수 있는 게 있구나. 다 큰 어른인 나에게.... 이제는 아이들에게 꿈을 물려줘야 할 때라 생각했던 나에게.... 교수님은 꿈을 물으셨다. 그렇게 얼떨결에 박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알고 사람 마음을 얻는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랴. 끊임없는 수련과 공부가 필요하다. 아직은 한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기에, 조금 더 나의 내면이 성장하고, 미약하게나마 전문성을 갖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박사를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기회가 주어졌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자란 심정으로 ‘박사 수료’를 목표로 삼았다. 강의를 듣고 새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었고, 과정을 잘 마무리했다. 사실, 현장에서는 ‘박사 졸업’과 ‘박사 수료’의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굳이 고생해서 박사논문을 써야 할까?’, ‘별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굳이 박사논문을 써야 할까?’ 더 이상 나아질 것이 없다 생각했기에 굳이 고생의 이유를 대고 싶지 않았나 보다. 차라리 아이 한 명을 더 낳고 싶다는 생각도, 엄마 놀이를 더 하고 싶단 생각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씩 지나고 보니, 소논문 한 편, 두 편, 세 편, 네 편... 쓰다 보니 박사논문을 써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시작한 일이니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긴 똥을 쌌는데 다 안 닦고 나온 기분이랄까. 주변에 하나, 둘 박사 논문을 쓰고 학위를 따는 분들이 생겨나니 어쩌면 조금의 질투심도 한 몫했는지도 모른다.  한의원 선생님은 40대 중반 넘어가면 기력 딸려서 못한다고 얼른 하라고 하셨다. 눈도 침침하고 총명함 없어 기억하기 힘들다고.... 하아 그러니..... 어서 해야지   


 그렇게 나는 짬짬이 시간의 짜내서, 틈틈이 집중력을 발휘해 박사 논문을 쓰고 있다. 아무것도 안한채 한 달이 지난 허무함이 아닌 아주 조금이라도 진전이 생긴다면 그것만으로 벅찬 기분이 든다. 아이를 낳으며 대단한 무언가를 하겠다는 포부는 일찌감치 접은 지 오래다. 돌 지난 아이를 안고 석사 논문 쓸 때, 급성 중이염도 걸려가며 고생했던 터라... 욕심은 버린 지 오래다. 그저 하는데 의의를 두자! 생각한다. 이렇게라도 기록한다면 내게 주어진 시간을 잘게 잘게 잘 쪼개서 해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길까 하여 글을 써본다.


 한 발 한 발 나가다 보면....... 졸업할 수 있겠지?

(다니엘 기도회가 진행 중이다. 교수님들도 많다 보니 논문 이야기가 정말 많이 나온다. 덕분에 나도 다시 시작했다. 기도와 함께... 하나님께서 논문보다 관계를 더 중요하지 않냐 물으셨던 이야기가 마음에 진하게 남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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