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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자수 Jan 12. 2022

엄마. 20만 원 만!!

현금 없이 일주일을 버틸 수 있을지 알았다.

현금 없이 일주일 정도는 거뜬히 버텨낼 수 있을지 알았다. 핸드폰 안에 다양한 회사의 카드사와 콜라보를 한 삼성 페이가 있겠다. 10% 할인에 현금영수증까지 발급 가능한 지역화폐도 있겠다. 지갑 따윈 안 가지고 다닌 지 꽤 되었으니 현금 없이 산다는 것에 대한 불편함은 크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경제관념이 제로인 탓에 월급은 따박따박 통장에 쌓여갔고, 매일 밤 자기 전 의례적으로 계좌 잔고를 확인하는 소소한 기쁨을 누려왔다. 나에겐 꽤나 큰돈을 통장에 넣어뒀다는 이야기에 친구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너 그 돈을 예금으로 묶으면 2% 이자라도 붙지. 뭐 하는 거니!!!"

어쩌고 저쩌고 모르겠는 이야기가 참 이어졌고.............. 한 가지 좋은 상품을 가입하라고 성화였다.


안 그래도 '목돈 예금을 해놓아야겠다.'라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솔깃한 나머지, 우선 통장에 돈을 넣기만 해도 2% 이자가 매일 나온다는 ** 통장을 개설했다. 밤늦도록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돈을 말 그대로 영 끌 해보았다. 예금을 하려면 기본 @@@@이 필요하다는데 하아. 30만 원이 모자란다.


작년 설날에 아이들이 받은 빳빳한 세뱃돈을 올해 설날에 사용하려고 1년을 보관했는데 불현듯 그 돈이 생각났다. (1년을 이자 없이 고이 봉투에 간직한 나도 참....) 남편에게 통장으로 돈을 보내달라고 요청하고, 싫은 소리 들어가며 돈을 받았다. 꾸역꾸역 필요한 액수를 채우고 가입절차에 들어간다.


생각해보니 아무 때나 가입해도 되는데 왜 이렇게 급히 는지.... 지금 당장 가입해야 김도 주고, 홍게 간장도 주고, 곰# 곰탕도 준다길래 이왕 하는 거 선물 받으면 좋잖아. 나름 합리화를 하며 영끌 완료했다. (정말 난 집안 살림을 생각하는 기특한 아줌마다.)


이제 월급 통장 잔고는 몇 백 원. 일주일만 버텨보자. 

..... 음...... 왜...... 현금이 필요하지? 구매대행 카페에서 필요한 게 왜 눈에 들어오는지. 운동을 하려고 계획했는데 싸게 양도한다는 글이 왜 눈에 들어오는지. 몇 개월 전, 몇 분의 선생님과 같이 강의했다 대표로 받은 돈을 왜 지금 달라고 요청이 들어오는지..... 지금 돈이 없다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현금이 없다는 게, 지금 당장 쓸 돈이 없다는 게 이토록 마음 가난해지는 일이구나.


.... 친정 엄마가 전화를 하셨다. 대뜸 나도 모르게..

"엄마. 나 20만 원만!"

"어?"

결혼 후, 15년 동안 한 번도 10원 한 장 달라고 한 적이 없기에 엄마는 꽤나 놀란 눈치다. 수화기 너머로 짧은 침묵이 이어진다. 옆에서 듣던 둘째가 "엄마 요즘 왜 이렇게 여기저기 돈을 달라고 해?!"....

"20만 원 아니면 10만 원이라도..."


엇!!! 이 장면 많이 본 장면인데... 내가 아무리 돈이 없어도 엄마에게 돈을 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 왜 이렇게 용감해졌지?


흠.. 얼마 전 너무 배꼽 빠지게 웃었던 장면이 내 삶에 연출되었다. '놀면 뭐하니'의 유재석처럼 나의 옛 연인인 엄마에게 20만 원을 달라고 이야기하고, 안되면 10만 원 디스카운트를 외치고 있다. 영상의 힘은 이토록 대단하구나.



유재석의 옛 연인은 전화를 끊어버렸지만 나의 옛 연인인 엄마는 쿨하게

"계좌 알려줘. 엄마가 줄게."

그리고 쿨하게 25만 원을 주셨다. 갚을 필요 없다는 말과 함께..



사랑해요 엄마!

마흔이 넘어서도 엄마랑 투닥투닥 싸우기도 하는데 웃자고 기대 없이 내뱉은 한 마디에 사랑을 표현하는 엄마....

어린아이처럼 용돈 받고 기분이 좋은 마흔 짤 중년 딸이라니..


그나저나 우리 엄마는 너무 걱정이다.

예전에는 보이스피싱에 은행까지 달려가 정보를 알려주다가 직원이 제지해서 불상사를 막은 적이 있었다. 작년에는 언니의 카카오톡이 해킹당해서 언니인 척 돈을 보내달라는 이야기에도 반응하셨다. 엄마는 은행 문이 닫혀 언니에게 지금 계좌이체가 어렵다고 했단다. 그랬더니 편의점에 가서 상품권인가 티머니로 보내다고 했다고.... 엄마는 또 편의점까지 가셔서 결제하려다 아르바이트생이 언니에게 전화를 한 번 해보라고 해서 그 때야 언니에게 전화할 생각을 하셨다고...

언니는 태연하게 나 그런 적 없는데... 이러고. 이 자리를 빌어서 아르바이트생에게 감사를 전한다.

(어르신분들은 정말 순간이다.)


... 얼마 전엔.... 책 출간한다 이야기하니

"요즘 누가 책을 사 보기나 하니?"라고 이야기하시다가 다시 전화와 서는

"책 출간하는데 얼마 드니? 엄마가 돈 다 내줄게."라고 하셨다.

생각하셨던 출간 비용에 비하면 25만 원은 껌 값인 거죠?

.... 엄마.. 다행히 출간비용 없어요....

더 잘할게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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