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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자수 Jan 06. 2022

마흔, 새로운 시작이 두렵다

with 그림책 <나는 (   ) 사람이에요>

"'마흔'이 넘어도 세상이 두렵기도, 새로운 시작이 두렵기도 해요...."

요즘 내 마음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말 중 하나이다. 새로운 시작에 설레어하던 나는 어디로 도망갔는지, 새로운 도전을 즐겨하던 나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요즘 나는 한없이 신중해진다.


지금까지의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도전하고 싶은 것도 많은 사람이었다. 끊임없이 배우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삶은 새로운 것의 연속이고, 배울 수 있는 것들 투성이라며 호기심을 가지고 세상에 다가갔다. '처음 사는 인생이니 마땅히 모르는 게 당연해. 실수를 너그러이 여기자.'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완벽함 따윈 나랑 어울리지 않는다며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던 나였다. 그랬던 내가 왜!! 갑자기 세상이 이렇게나 두려워졌을까?


세상에는 마흔, 중년을 정의하는 말들이 있다. 공자가 말한 불혹(不惑)이란 40세에 이르러 세상일에 미혹되지 아니하였다는데서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 일에 흔들리지 않을 나이 '마흔 살'을 말한다. 판단이 흐려지는 일이 없다는 데 나는 점점 판단에 침침해진다. 또한, 사물의 이치를 터득한다는 데 나는 점점 사물의 이치를 더욱 모르겠다.


 또한 사람들은 종종, 마흔에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세상이 바라보는 마흔의 모습과 달리 나는 왜 이리도 흔들리는가? 왜 이리 두려운 걸까? 새롭게 시작하는 일에 대해 결과를 먼저 가늠해보게 되고, 최대한의 실패를 줄이고 싶다. 새롭게 도전하는 일에 대해 나란 사람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 깜냥이 되는지 재어보고 있다.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붙는다. '너그러움'보다 '엄격함'이 무겁게 억누른다. 20대 30대 때, 실패한다면 복구할 시간이 있으니 괜찮다... 40대 때, 실패한다면 복구할 시간이 없을까 염려한다... 그러니 더없이 신중해지는 거겠지.


낯설고도 어색한 나를 만나니 어쩔 줄 모르겠다. 아. 내가 생각해오던 '마흔'의 모습은 이게 아니었는데. 마흔이 넘으면 두려움 따윈 없을 거라 생각했다. 나란 사람이 좀 더 완벽해질지 알았다. '인생은 말이지...'라며 인생에 대한 조언도 카리스마 있게 날릴 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인생에 대해 잘 모르겠다. 좀 어렵다. 어쩌면 나이가 들수록 '현실'이라는 녀석을 정면으로 마주하다 보니, 생각보다 더욱 못난 나를 만나는 게 두려운 건지도 모르겠다.




그림책 '나는 (    ) 사람이에요.'는 아이들과 많이 읽은 그림책 중 하나다. 기적같이 세상에 태어난 한 명, 한 명의 아이들에게 그림책의 목소리를 빌려 이야기해주고 싶은 게 많았다. 아직은 어리기에 세상이 두려운 것이 당연하다고. 아직은 어리기에 실수하기도 한다고. 아직은 어리기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기도 한다고....

그런데 오늘은 나에게 그림책 한 장면, 한 장면을 읽어주고 싶다. 


그림책이 이야기하는 '세상과 마주한 우리를 위한 응원'은 비단 낯선 세상이 두려운 어린아이를 위한 것만은 아닌가 보다.  저 멀리 이어진 하늘 위로는 어떤 우주가 펼쳐질까 두렵다. 안개가 드리운 도전 속으로 뛰어내리자니 주춤주춤 조심스럽다.  어른이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깊은 연민이 든다.

 '나는 모르는 세상이 두렵기도 해요.'

 '새로운 도전 앞에서는 주춤주춤 해요.'



도전을 한다는 건, 설렘과 희열의 푹신한 구름을 걷는 것만은 아니다. 생각보다 잘하지 못한 나를 안고 울퉁불퉁 돌담길을 걸어가는 길이다. 어릴 때, 내가 꿈꿨던 모습... '정장을 멋지게 빼입고, 세상 모든 것을 다 아는 척하며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내려놓고, 여전히 잘 모르는 세상을 향해 있는 그대로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길이다. 완벽하게 잘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힘을 빼고 걸어가는 길이다.


 아이들에게 무수히 이야기했던 '아직 어리니까 괜찮아.'가 아니라 '마흔이여도, 어른이어도 괜찮아.'로 바꿔야겠다. 흔들리는 나에게 그림책이 말하는 이야기를 하나하나 다시 들려줘야겠다.


"운명은 시시때때로 찾아오지 않는다. 적어도 운명적이라는 표현을 쓰려면 아주 가끔 우연이 찾아드는 극적인 순간이어야 한다. 그래야 운명이다. 그래서 운명의 또 다른 이름은 타이밍이다. 그러나 운명은 그리고 타이밍은 그저 찾아드는 우연이 아니다. 간절함을 향한 숱한 선택들이 만들어내는 기적 같은 순간이다. 주저 없는 포기와 망설임 없는 결정들이 타이밍을 만든다." -응답하라 1998 정환이의 대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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