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즐거움
필리핀은 여행지로 유명하지만, 우리가 있는 곳은 어학원이었고 엄마와 나는 학생이었다.
이곳에서는 수업 레벨과 시험 패스 여부에 따라 외출 가능 여부가 달라지고, 요일별 통금 시간까지 있었다.
밖에 나가려면 교문 앞 경비실에 학생증을 맡겨야 했다.
조금 귀찮았지만, 통금과 외출 규칙 덕분에 진짜 학생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통금도 있고 밥도 주니 호강이야.”
엄마는 65세에 처음 맛보는 기숙사 생활을 나보다 더 즐기는 듯했다.
잃어버린 학창 시절을 조금이라도 채우는 기분인 모양이었다.
수업은 빡빡했지만, 스스로 원해서 온 터라 힘들어도 즐거웠다.
필리핀 어학연수를 오기 전엔 “와서 별로 얻어간 게 없다”는 후기를 많이 봐서 기대가 크지 않았는데,
먹고 자고 공부만 하는 환경을 직접 겪어보니 놀라웠다.
2~3개월 정도 제대로 영어 공부를 한다면 확실히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엄마도 처음엔 많이 힘들어하셨지만, 번역 앱을 익히고 갈수록 적응해 나갔다.
엄마가 잘 견뎌줘서 너무 고마웠다.
학원 밥은 국제 학생들을 배려해 중국, 한국, 필리핀 현지식, 인터내셔널 식이 섞여 나왔지만,
결국 국적 불문의 메뉴였다. 어느 날, 볶음밥인지 기름밥인지 모를 음식이 나왔다.
“한국에선 안 먹었을 텐데, 배고프니까 맛있네.” 엄마가 접시를 싹 비우는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수업 후 오히려 내가 힘들다고 투정하자,
엄마는 “옛날엔 밥 먹고 공부만 하는 게 꿈이었어. 이게 웬 호강이니?”라며 여유를 보였다.
60대에 찾은 학창 시절의 설렘이 엄마에게 더 잘 맞았다.
엄마의 일찍 끝난 학창 시절의 빈자리를 지금이라도 조금 채울 수 있어서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