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열리는 시간

한 가닥 빛

by 민돌

나는 엄마의 열정을 본받아 공강 시간 틈틈이 다음 수업을 준비하고,

외워지지 않는 단어를 곱씹으며 영어에 대한 열의를 불태웠다.

학원 선생님들은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마음을 다르게 먹으니 어려웠던 수업도 더 즐겁게 느껴졌다.


오늘은 수업 후 방에 돌아오니 어학원 서비스 중 하나인 방 청소까지 마쳐져 있어 마음이 가벼웠다.

기분이 좋아 전부터 궁금했던 학원 앞 후줄근한 슈퍼 겸 식당에 가보기로 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 맥주와 안주를 골랐다. 맥주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커다란 1000ml 산미구엘 병맥주를 골랐다. 한참 지나 안주가 나오고,

평소처럼 우리 삶을 이야기하며 엄마와 신나게 수다 떨고 있는데,

엄마가 눈을 반짝이며 말을 꺼냈다.


“나는 이것 이후로 밝게 살 거야!”


무슨 말인지 몰라 한참 어리둥절해 하고 있을 때 엄마가 말을 이었다.

“여기 와서 수업 들을 때 한국말도 안 통하고, 대화도 안 되고, 공부도 안 돼서 너무 답답했어.

그런데 어쨌든 내가 목표로 이곳에 왔고, 독한 마음으로 공부하다 보니 뭔가 조금 알 것 같아.

그래서 너를 보내고 나만 1~2달 더 있을까도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아.

한국 돌아가면 글도 조금 보이고, 사전 앱도 쓸 수 있고, 이전엔 안 보이던 게 보일 것 같아.”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한국 곳곳에 영어가 넘쳐나고 모든 대화에 영어가 섞여 있다.

엄마는 어릴적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해 괜한 부끄러움을 가지고 영어가 들어간 많은것들을 그저 피하며 살았었다.

똑똑한 우리 엄마가 조금만 배우면 다른 세상이 보이고 삶이 편해질 것 같아 영어 어학연수를 제안했던건데 그런 엄마에게 '나는 이것 이후로 밝게 살꺼야' 라는 말을 들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재밌었던건 나도 똑같이 한 달은 너무 짧다고 느껴서, 엄마를 보내고 몇 달 더 있을까 생각했었다. “엄마, 나도 똑같이 생각했어!”라고 하자, 모녀가 서로를 보내고 영어를 더 공부할 욕심을 품었다는 사실에 웃음이 터졌다. 나의 욕심으로 엄마를 이곳에 데려와 고생시키는 게 아닌가 내심 걱정했는데, 엄마와 내가 같은 마음이었다는 게 신기했다.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엄마를 봤다.


마음이 꽉 차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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