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연수의 끝자락

끝나는 순간에야 보이는 것들

by 민돌

D-day라는 단어는 언제나 마음을 조용히 조여온다. 이곳에서의 한 달도 그랬다. 처음에는 끝도 없이 길게 느껴지던 시간이 막상 떠날 날이 다가오니 손끝에서 모래처럼 빠져나갔다. 떠날 때가 되어야 비로소 소중함을 깨닫는 건, 어쩌면 인간이 가진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문득, 삶도 그렇게 스쳐 지나가다 마지막 순간이 되었을 때 하루하루를 얼마나 아쉬워하게 될까? 그런 생각까지 이어졌다.


오늘은 2주 차에 봤던 레벨테스트 성적을 받았다. 한 달 만에 기적처럼 늘 거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성적표에는 분명 작은 변화가 있었다. 입학 첫날의 Low Beginner에서 이번엔 Low Beginner+. 아주 사소해 보이지만 앞으로를 위한 발판이 생겼다는 사실이 조금은 기쁘게 다가왔다. 언어를 배우기에 한 달은 짧았지만, 적어도 ‘왜 배우는지’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를 찾았다는 점에서 이번 시간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엄마에게도 이 한 달은 작은 기적이었다. 영어는 늘 높은 벽이었고, 시도조차 어려운 영역이었다. 하루 네 시간씩, 한국어 한마디 못 하는 선생님과 4주를 버틴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엄마는 결국 적응해 냈고, 매 수업을 성실하게 해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속에서 조용히 박수가 터졌다.


알파벳이 서서히 익숙해지고, 낯설던 단어가 입안에서 형태를 갖춰갈 때마다 엄마는 마치 새로운 세계의 문턱 위에 서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한국으로 돌아가 길거리 간판의 ‘Coffee’나 ‘Sale’을 스스로 읽어낼 모습을 상상하면, 괜히 내 마음도 따뜻해졌다. 언어는 단순한 공부가 아니라, 세상을 해석하는 다른 방식이라는 걸 엄마는 이제 막 깨닫고 있었다. 이제 이곳에서 보낼 시간은 며칠 남지 않았다.


드라이 망고와 몇 가지 기념품도 이미 샀고, 먹고 싶던 음식들도 대체로 맛봤다. 지도에 하트만 찍어놓고 못 간 식당들이 남아 있지만, 이미 마음은 한국의 얼큰한 국물로 향하고 있었다.


선생님들께 드릴 선물을 사기 위해 쇼핑몰을 돌아다녀 봤지만, 마땅한 것을 찾기 어려웠다. 한국에서 립밤이나 작은 굿즈들을 미리 챙겨오지 않은 게 뒤늦게 아쉬웠다. 그런 사소한 아쉬움들까지 포함해, 이 여행은 어느새 끝을 향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tempImagePlwRuP.heic


매거진의 이전글마지막 주의 소소한 나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