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실의 순간, 모녀의 졸업식

Congratulations!

by 민돌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매일 맞는 아침이지만 졸업식이 있어서인지 오늘은 마음이 묘하게 들떠 있었다. 학생으로 돌아가 4주 동안 공부하며 영어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던 날도 있었지만, 음식·청소·빨래에서 해방된 삶은 신선했고 생각보다 더 편했다.


오늘은 마지막 수업이기에 선생님들께 드릴 작은 선물로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과 커피, 여분의 화장품과 선크림을 포장해 드렸다.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선물이었는데도 선생님들은 예상보다 훨씬 기뻐했다. 그 모습을 보니 더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 수업을 마친 뒤 한 달 동안 함께한 선생님들과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인스타그램을 교환하며 작별 인사를 나눴다.


엄마는 마지막 날까지 단 하루도, 단 하나의 수업도 빠지지 않았다. 한국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환경에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지만, 그럼에도 단어를 찾아 미리 외우고 사전을 들여다보며 예습·복습하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괜스레 가슴이 뜨거워졌다.


엄마에게 이번 한 달은, 평생 넘기 어려워 보이던 영어라는 벽에 처음 작은 틈이 생긴 시간이었다.

4시 반에 시작된 졸업식은 짧고 소박했지만 마음 깊은 곳이 은근히 차올랐다. 졸업장을 들고 엄마와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어 언니에게 보내자, 언니는 누구보다 먼저 울컥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자신은 엄마에게 이런 시간을 선물해 줄 여력이 없었는데, 내가 대신 그 역할을 해준 것 같아 정말 고맙다고 했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싸기 시작하니, 이제 정말 떠난다고 하는 실감이 밀려왔다. 마지막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엄마와 수영장 근처 비치 의자에 나란히 앉아 바람을 맞으며 학생들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잔잔히 흔들리는 물결을 바라보며 이 공간이 이상할 만큼 포근하게 느껴졌다.

‘아마 이곳에 다시 올 일은 없겠지?’ 그 생각과 함께 아쉬움이 번졌다.


짐을 모두 정리하고 9시 반쯤 공항으로 향하려 건물 3층에서 캐리어를 끌고 내려오는데, 1층의 젊은 학생들이 우리를 보자마자 활짝 웃으며 “Congratulations!”하고 축하해주었다. 우리는 서로 이름도 모르고, 나이 차이도 컸다. 일면식도 없던 사이였지만, 이곳에서는 모두가 같은 ‘학생’이라는 이름 하나로 묶여 있었다. 그런 친구들에게서 받은 축하 인사는 낯설면서도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었다. 그 짧은 순간, 이 한 달이 내게 어떤 시간이었는지 새삼 또렷하게 느껴졌다.


공항에 도착해 짐을 부치고 라운지에 앉아 엄마와 맥주를 마시며 지난 한 달을 돌아봤다. 졸업 뒤풀이처럼 소소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렇게 우리의 필리핀 한 달은 마무리되었다.


낯선 동남아의 한 도시에서, 65살 엄마와 41살 딸이 4주 동안 24시간 붙어 영어를 공부하며 보낸 시간. 앞으로도 엄마와 여행하겠지만, 이런 형태의 시간은 아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평생 기억될, 특별한 한 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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