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드라마의 기본
사회과학, 정신건강, 교육 분야에 종사하거나 심리학, 사회복지, 간호학, 정신의학 전공자는 한 번쯤 ‘심리극’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경험이 있습니다. 전공서적에서 또는 최근에는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심리극’이 소개되어 알게 됩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심리극에 대해 아는 수준을 넘어 경험하는 수준까지 관심의 폭을 확장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심리극을 경험해보았다는 사람들은 지역사회에서 있는 정신건강센터, 청소년상담복지센터, 기업체, 병원 등에서 경험한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심리극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심리극 실천가들의 심리극장에 직접 찾아가기도 합니다. 저는 대학 시절 심리학을 전공하면서 학과 내에 있었던 동아리에서 ‘심리극’을 경험했습니다. 사람들마다 심리극을 조금 더 깊게 배우고 싶은 욕구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병원에 있는 사람이라면 개인이 맡고 있는 직무를 잘 수행하기 위한 목적도 있고, 기업체 내에서 근무하는 분이라면 집단 교육 프로그램에 적용하기 위한 바람도 있습니다.
일반 전문가가 되기 위한 교육과정과 심리극 수련과정이 가장 큰 다른 점은 심리극 디렉터의 전문성이 상담자 발달과정과 유사한 점입니다. 이는 마치 인간의 발달 과정과 유사하게 일련의 발달 단계를 거쳐, 체계적, 구조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김진숙, 2001; Skovholt & Ronnestad, 1992). 저는 2002년 대학 시절에 심리극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병원과 지역사회에 있는 정신재활시설에서 심리극 봉사활동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심리극으로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의미가 있어 열심히 활동한 기억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열심히만 했지 전문성을 기반으로 했다고는 말할 수 없었습니다.
심리극 디렉터와 같은 상담자가 전문성을 발휘하는데 Ronnestad와 Skovholt(2003)는 6단계를 거쳐 발달한다고 보았습니다. 가장 첫 단계로 수련받기 이전 단계로 자신의 경험과 상식에 기초하여 도움이 필요한 타인에게 조언과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는 단계입니다. 저는 이 시절에 “오늘 환자들에게 실시했던 이 방법이 도움이 될까?”라는 의구심이 있었습니다. 2005년 봄, 처음으로 모 대학 상담센터에서 공개 심리극에 참여했습니다. 저는 심리극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실천하는 심리극 디렉터(박희석 (Hee-Seok Park))에게 주인공 경험을 하게 된 이후로 심리극을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너무도 간단했습니다. 심리극은 마치 마음의 수술과 같아서 안전하지 않으면 도움의 행위가 상처를 재경험하게 하는 행위로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06년 여름, 서울 여성프라자에서 숙박을 하면서 14명의 집단원과 심리극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심리극 수련의 시작은 심리극 초급과정으로 50시간 동안 이루어집니다. Ronnestad와 Skovholt(2003)는 초기 수련생 단계에는 이론, 연구, 내담자, 교수, 수련 감독자, 동료, 사회문화 환경, 개인적인 삶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단계라고 이야기합니다. 심리극 초급 단계에서는 이론과 실제로 나누어져서 진행됩니다. 심리극의 이론 영역에서는 심리극은 무엇인지, 심리극이 작동되는 원리, 심리극의 구성요소, 심리극의 진행과정 등을 학습하게 됩니다. 특히, 심리극 초급 단계에서는 이론적인 내용보다는 심리극 주인공 경험에 더 많은 시간이 배정되어 있습니다. 이는 마치 상담수련과정으로 비교하여 보면 교육 분석과 유사합니다. 교육 분석은 개인적 또는 전문적 필요에 의해 상담을 받는 것(김민정, 조화진, 2015)으로, 상담자는 상담자가 되기 위해서 상담 및 심리치료를 통해 자신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견해가 있습니다(Freud, 1937). 심리극 주인공 경험이 언어적 방식인 상담과 그 방식이 매우 다르지만, 주인공 경험을 통해 자신의 패턴, 성격적 특성, 가치관, 자기 정체성 등 자기 탐색을 통해 자기 이해, 자각의 증진에 기여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자기 탐색과 이해 증진은 직접적, 간접적으로 심리극과 상담을 수련하는 사람에게 인격적인 부분과 전문가적 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리극 수련의 첫 번째 단계인 초급 과정에서 흥미로운 점은 심리극이 하나의 집단 심리치료로써 어빈 얄롬(Irvin D. Yalom)이 말한 치료적 요인이 어떻게 경험되는지를 알게 된다는 점입니다. 심리극의 본극단계에서 경험되는 미래의 장면과 새롭게 경험되는 삶의 장면을 통해 희망을 심어주기, 초기 가족의 교정적 재현이 일어납니다. 또한 심리극 집단이 마무리되는 나누기 단계에서 누구나 삶 안에서 각자의 마음의 짐이 있다는 사실과 새로운 방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 집단원 간의 정서적 지지를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보편성, 사회화 기술의 발달, 모방 행동, 이타주의 등을 학습할 수 있었습니다. 심리극 초급 단계에서는 주인공, 집단원 경험 외에도 숙련된 심리극 디렉터를 관찰하게 됩니다. 국내에서 숙련된 심리극 디렉터를 만날 수 있는 일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심리극이 이루어지면서 준비단계, 본극단계, 나누기 단계까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3시간 넘게 보고, 듣고, 느끼게 됩니다. 심리극 단계가 진행되는 동안 심리극 수련생은 숙련된 심리극 디렉터의 구체적인 행위로부터 많은 영감과 모방을 경험하면서 안전한 심리극을 실천할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합니다. 반면, 심리극 수련 과정을 이제 막 시작하게 되면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민감하며 의존적인 경향을 보입니다. 초보 심리극, 상담 수련생으로서 동기 수준은 높으나 한 두 가지 방법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향과 수련 감독자의 모방 학습을 주로 하게 됩니다(Hogan, 1964). 그러므로 이때 수련 감독자는 수련생을 위해 교육, 해석, 자각, 지지 등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Hogan, 1964). 최근 심리극 교육과정에서는 인턴십, 레지던트, 프로페셔널 단계로 나누어져 수련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턴십 과정에서는 한국 심리극 역할극 상담학회(http://www.kaprc.kr)에서 제공하는 심리극 역할극 전문상담사 2급을 수련할 수 있는 과정입니다. 레지던트는 1급 과정이며, 프로페셔널 단계는 수련감독급(TEP)을 말합니다. Ronnestad와 Skovholt(2003)는 현장 실습과 인턴십 단계를 소개하면서 이 단계들은 점점 전문가적 능력이 함양되고 심리적 압박이 높아지는 단계를 ‘고급 수련생’ 단계라고 말했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이론적 배경을 바탕으로 내담자의 문제를 이해하고, 기법을 학습하는 시기입니다. 심리극 초급 단계를 지나고 중급(50시간), 고급 단계(1.2단계 100시간)에서는 심리극 디렉터로서 무대 안과 밖에서 심리극 디렉팅 훈련을 본격적으로 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서도 여전히 수련 감독자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자율적이 되고자 하지만 때로는 위축감을 강하게 경험하는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때에는 수련 감독자는 양가적인 감정과 태도를 명료화하도록 돕고, 예시를 통해 교육을 하는 것이 수련생에게 도움이 된다는 견해가 있습니다(Hogan, 1964).
저의 경우에는 심리학 전공으로 학부를 마치고, 심리극 수련을 시작했으며 2급 자격을 취득한 이후 석사 학위까지 마치는데 까지 10년 정도 소요되었습니다. 보통 심리극 수련 교육 과정은 2급의 경우 2년 정도 소요됩니다. 학회에서 심리극 전문가 자격을 취득하고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하게 되면 '초보 전문가 단계'라고 이야기했습니다(Ronnestad와 Skovholt, 2003). 이 단계에서는 독립적인 치료 작업과 자기 탐색이 증가될 수 있고, 어려움이 직면될 경우에 전문가 훈련, 수퍼비전 등을 지속적으로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내담자와 상담자 관계를 중요하게 강조하고 기법보다는 상담자의 인간적 특성에 더욱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시기라고 보았습니다. 저의 경우에도 2012년도에 심리극 2급 자격을 취득한 후 200시간의 교육과 100시간의 학회활동을 하면서 약 5년 후 2017년도에 심리극 1급 자격을 취득하였습니다. 저는 심리극 초급교육을 받았던 때로부터 10년이 지나면서 더 많은 집단을 만나게 되었고, 심리극 디렉터로서 양적, 질적으로 성장하는 시기로 기억합니다. 지금까지 수련 감독자와 동료들 간의 교육과 수련 과정을 하면서 나누었던 이론과 실제가 어떻게 통합이 되고, 삶으로서 어떻게 경험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심리극 초급 과정을 시작한 지 13년 후에 2018년도부터 박사과정과 수련감독급(TEP) 교육과정을 시작했습니다. Ronnestad와 Skovholt(2003)는 '숙련된 전문가 단계'를 다양한 상담 장면에서 수년간 내담자들과 임상 경험하는 단계로 보았습니다. Alonso는 수련 감독자는 수련자의 전문적, 임상적 발달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고, 지식의 부족이나 수련자에게 일어나는 역전이로부터 오는 어떤 장애에도 민감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훈련과 치료의 균형이 잘 유지되어야 하며 수련 감독자는 임상가처럼 경청하고 교수처럼 말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Ronnestad와 Skovholt(2003)는 상담자로서 역할과 개인적인 가치, 생활 방식 간의 일치가 높아지는 시기라고 보았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지식을 학습하는 시기라기보다는 전문가로서 또는 개인적인 삶에서 경험하는 대인 관계에 대해 깊이 숙고하면서 배움을 지속하는 시기라고 보았습니다. Hogan(1964)는 이 시기에 전문가로서 자신감이 높아지고 어려움에 처할 경우에만 수련 감독자에게 도움을 요청한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수련 감독자와의 관계에서 동료적인 성격이 강해지고 한 개인 또는 전문가로서 직면해야 할 부분들을 수련 감독자와 논의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오랜 시간 동안 함께해왔던 심리극 수련 과정 동료들이 숙련된 전문가 단계를 거쳐간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제 그들은 전문가라고 말하기보다 한 사람으로 심리극을 실천하고 삶으로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20~25년 이상의 원로 전문가의 경우에 Ronnestad(2003)는 자기 수용이 증가하고 자신의 일에 만족함을 느끼는 단계라고 보았습니다. 전문가로서 자신감을 느끼고 자신이 성취한 것에 대해 겸손한 태도를 보이며 전문가적 성장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단계라고 말했습니다. 이 시기는 자율성, 안정감, 알아차림, 통찰 수준이 높고, 전문가로서 능력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직면할 필요성을 알아차리고 수련 감독자에게 정기적인 슈퍼비전을 받기보다 자문의 형식으로 경험과 조언을 구한다고 보았습니다(Hogan, 1964). 제가 소속되어 있는 한국 심리극 역할극 상담학회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고문님들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원로 전문가는 여전히 활발하게 교육 현장과 수련 장면에서 지속적인 노력과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분들의 삶을 보면 이제 심리극은 하나의 도구로서 자리 잡고 있고, 한 줄기 강물처럼 심리극이 집단원과 흘러가는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오늘은 Ronnestad와 Skovholt와 Hgan의 상담 수련자의 발달단계와 제가 경험한 심리극 디렉터 수련과정을 회상하여 ‘심리극 디렉터의 수련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라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https://youtu.be/VZO1Igdsiz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