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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듕쌤 Sep 29. 2024

외로움이 사라지고 비로소 알게 된 재능

그리고 사업의 시작

일단 옛날 얘기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과거의 나는 내가 생각하는 모든 순간엔 항상 외로웠던 것 같다.


아주 어릴 때야 늘 엄마가 집에 있어서 외로운 걸 몰랐을 것 같고, 수험생 시절엔 공부하느라 몰랐을 것 같지만 대학에 들어가고 연애도 하고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되고부터는 늘 '외롭다'는 마음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외롭다는 건 혼자라는 말 아니야?"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인간관계에서 인기가 없는 편은 아니었다.


슈퍼 E 성향이지만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수많은 외부 활동들. 그러나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나의 존재감은 스스로를 지치게 할 만큼 나를 밖으로 나돌게 했다.


그럼 지금은?


침대에서 눈을 떴다. 전날 평소보다 늦게 잠에 들었지만 평소처럼 일찍 눈이 떠진 주말 아침이었다.


조금 더 잘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에 다시 잠을 청하려 했지만 잠시 후 알람이 울렸다. 신랑의 알람이었다.


어차피 눈을 뜬 거 그냥 이 사람이나 안아주자 싶은 마음에 신랑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머리를 만져주고 있었다.


이내 신랑도 잠에서 깼는지 내 품 안으로 들어와 나를 끌어안았다. 그 순간 뭔지 모를 묘한 생각이 들었다.


"뭐지, 이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듯한 이 느낌은?"


나는 이중적인 감정을 자주 느끼는데 지금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딱 가운데에 끼어있는 기분이 들었다.


상대의 품에 안겨있지 않고 덩치가 큰 남자를 안아주는 나라니. 과거와는 정말 많이 바뀌었다는 게 느껴졌다. 행동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나는 이제 정말 하나도 외롭지 않구나!'


단 한 사람의 존재에 의해 구원받은 느낌이랄까. 나는 더 이상 외롭다는 마음을 느끼지 않는다. 언제부터 그랬었나 싶을 만큼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언젠가부터 들었던 것 같다.


이 마음 충만함을 제대로 느껴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스스로를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외로움에 허덕이던 과거를 갖고 있던 사람이 더 이상 낮은 자존감에 힘겨워하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아 봤을 때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 아닌가?


외로움이 사라지니 달라진 생활패턴

대학시절부터 나는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왔었다. 원래부터 외향적이고 나서기를 좋아해서 중고등 시절에도 늘 학급회장을 했었지만 대학시절의 활동은 기본적으로 허전함을 채우기 위함이지 않았었나 싶다.


'심심하다, 외롭다, 쓸쓸하다, 공허하다'


이런 것들이 그 시절의 나를 설명하는 단어였다.


단 한순간도 집에 머물러 있지 못하고 누군가를 만나거나 밖에 있어야만 하는 사람.


그렇기에 자연스레 만나는 상대를 지치게 만들기도 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다 보니 만날 사람을 항상 찾아 헤맸고 친구들이 바쁠 때에는 남자친구가 나를 만나주기를 바랐었다.


아주 어릴 때야 그들도 나도 한가하니 그게 가능했다고는 하나 취업준비를 하면서 바빠질 때에는 상대방에게 많은 부담이  것이 당연했다. 정말 좋은 사람이었고 내게도 최선을 다했지만 취업준비와 가정사에 치여 힘들었던 그 사람을 결국 질리게 만들어 헤어지는 결과를 만들기도 했다.

"상대한테만 의지하면 안 되는데!"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외로움이 한순간에 사라질리는 없었다.


사람은 혼자일 때 발전한다고 한다.


사색에 잠기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기 계발에 시간을 쏟기 위해 갖는 혼자의 시간. 하지만 나는 매번, 매 순간을 타인과 함께하기를 바랐었다.


직장에 들어가면서는 상황이 조금 변했다.


대학시절처럼 우르르 몰려다니며 친구놀이를 할 무리가 딱히 없었고 돈과 시간이 생겼다. 남자친구와 함께할 때는 이리저리 잘 놀러 다니기도 했지만 역시나 상대에게 의지가 되는 관계는 건강할 수가 없었다.


남자친구가 없는 시기에는 운동에 열중했다. 혼자 있지만 늘 무언가를 하고 있고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활동. 내게는 그게 운동이었다.


혼자라는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미친 듯이 사이클을 타서 한 달에 1000km를 달린 적도 있었고 클라이밍에 미쳐있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활동들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도피처였지 순수하게 즐긴다고 말하기는 조금 어려웠다.


그러던 내가 어느 순간 깨닫고 보니 외로운 순간이 없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을 수도 있다.


"외로움이 사라진 지금은 어떠냐고?"


일을 하고, 운동을 하는 것까지는 과거와 동일하다.


하지만 그 외의 시간은 온전히 나를 위해 쓴다는 것에서 예전과는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혼자 있는 시간에 SNS를 하며 시간을 때운다던지, 불금에 누군가와 만날 약속을 잡는다던지, 오늘도 그냥 이렇게 시간이 지났네 하는 등의 것이 전혀 아니다.


타인을 만나지 않아도 괜찮아지니 자연스레 내 시간이 정말 많아졌다. 그것도 일주일에 하루이틀정도 시간이 있다는 수준이 아니라 매일 2~3시간은 운동 외에 무언가를 할 수 있을 만큼 시간이 생긴 것이다.


옛날 같으면 이리저리 약속 다니느라 지쳐서

"오늘은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쉴래"

라고 생각했을 시간이겠지만 이제는 그런 날들이 매일같이 있다.


"이 시간들을 어디에 쓰면 좋을까? 나는 뭘 좋아하는 사람이지?"


나를 위한 시간이 생기니 이런 근본적인 질문까지 하기 시작했다. 진작에 아주 어릴 때부터 했어야 하는 이 질문을 서른이 훌쩍 넘어서,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한다는 게 이상한 일이기도 하나 나이 50이 되어서도 이런 질문조차 안 해보고 산 사람들도 많으니 나는 운이 좋다고 말하고 싶다.


겨우 얻어낸 내 시간의 자유, 그리고 마음의 자유는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할 시간을 주었고 나를 정말 생각지도 못하는 방향으로 데려갔다.


남편이 있으니 당연하다고?


나는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집에 사는 건 당연하잖아"라는 말도 노숙인에게는 해당하지 않고,

"부부니까 당연히 한 방에서 자는 거 아니야?"라는 말도 숙면을 위해 각방을 선택한 커플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듯이,

"남편이 있으니까 당연히 외롭지 않지!"라는 말도 전혀 당연함이 성립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이 있으면 외롭지 않아야 한다면 단순히 성격차로 이혼하는 커플이 그렇게 많을 수가 있을까? 나는 남편과 정말 자주 싸우고 성격도 정말 다르지만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준다는 근본적 믿음이 있기에 그런 싸움들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바라보는 방향이 다른 커플 혹은 부부들은 상대를 외롭게 만들 수밖에 없고 결국 성격차로 이혼하는 결론에 다다르는 것이지 않을까.


그러니 그저 '남편이 있어서'라는 말은 틀린 말이지만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라는 말은 맞는 말이 된다.


나와 비슷하게 외로움을 많이 탔던 남편은 본인이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만큼 나를 챙겨주고 사랑해 준다.


그저 사랑을 갈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하면서 틈틈이 나를 버려두지 않고 예뻐해 주기에 항상 사랑을 받고 있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그렇게 각자의 생활에 열중해도 될 만큼 마음의 안정감이 생기고 나니 언젠가 외롭다는 마음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지금은 뭘 하느냐


어릴 적 내 꿈은 현모양처였다. 하지만 시대에 아주 뒤떨어진 꿈 따위 접어치운 지 오래고 항상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고 싶은데 뭘 해야 할지 몰랐었다.


그렇기에 그저 이것저것 시도해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을 뿐이었다.


어릴 때 내 MBTI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항상 "기업가형"이 나왔던 것만큼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 나의 MBTI는 ENTJ. 이것도 "기업가"에 적합한 성향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기업가에 아주 적합한 인간인 것 같다.


'근데 뭘 하고 뭘 경영해야 하지??'


필라테스를 가르치고 있기는 하지만 인력을 기반으로 한 국지적 사업은 내 마음을 채우기에는 너무 부족해 보였다.


클라이밍을 좋아하기는 하나 센터를 차릴 만큼 좋아하지도 않고 뛰어나지도 않다.


만들기를 좋아하지만 하루종일 무언가 만들 만큼 끈기 있는 사람도 아니고 내 손으로 뭘 만들어봐야 몇 개나 만들 수 있을까?


아, 그럼 내가 하나만 만들어서 좋으면 공장에 그대로 맡겨서 대량생산 하면 되지 않는가?


"자기야! 나 미싱 살래!"


어느 날 갑자기 뜬금없이 남편에게 미싱(재봉틀)을 산다고 선포했다.


사이즈가 작지도 않고 가격도 꽤 나가는 고가의 취미인데도 남편은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네가 사겠다면 이유가 있는 거겠지. 너는 그 이상의 가치를 만들 것 같아. 사고 싶으면 사~"


그렇게 블랙 프라이데이 광고에 홀랑 넘어가 자수 기능과 단춧구멍 기능까지 있는 고스펙의 비싼 미싱을 하나 구입했다.


원단과 부자재를 구입하는 것도 만만치 않게 비쌌지만 내가 갖고 싶은 가방을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너무나도 설렜다.


가벼우면서도, 운동가방으로 쓸 만큼 크고, 심플한 가방이면 됐다.


시중의 운동가방들은 크기는 하나 기능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어 무겁고 거추장스러웠다. 짐만으로도 무거운데 가방까지 무거우니 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만든 내 첫 미싱작품


첫 작품이라 손잡이 부분도 비틀리고 봉제도 튿어졌지만 꽤 오래 사용했을만큼 만족스러웠다.

역시 내 손으로 만드니 뭔가 부족했지만 내가 원하는 가방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대량생산하기엔 디자인도 썩 맘에 들지 않고 고급스럽지도 않은 데다 많이 아쉬웠다.


다음으로는 브라탑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집에 50장이 넘는 스포츠 브라가 있지만 그중에서 내 욕심을 충족하는 브라가 단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 단 하나도 없을까 싶지만 그만큼 나는 아주 까다로운 사람이다.


"가슴라인은 적당히 가려주지만 더울 만큼 올라오면 안 되고 밴딩이 너무 단단해서 입고 벗기 불편한 건 딱 질색인 데다 단독으로 입고 운동할 수 있을 만큼 스포츠브라의 느낌이 나야 하고 나의 자랑인 등근육을 가리지 않게 탁 트인 등 라인을 가져야 한다."


이게 내가 원하는 브라의 조건이었지만 시중에 이런 옷은 정말 단 하나도 없었다.


옛날 같으면 그저 원하는 브라가 없다고 그런 브라를 찾기 위해 쇼핑에 시간을 쏟았겠지만 이제 나는 미싱이 있다 무엇이 두려울까!!!


그렇게 브라 원단을 찾기 시작하는 것에서 나의 사업은 시작되었다.



원하는 브라를 갖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스포츠 의류 사업


처음에는 중국 사이트를 뒤졌다. 알리에서 스포츠브라를 10개 정도, 내가 원하는 디자인을 가진 옷들을 구입해서 괜찮은 게 있으면 떼다 팔 생각이었다.


그런데 왜 전부 2%, 아니 10%가 부족한 걸까?


봉제가 허접하거나 밴드가 불편하거나 가슴이 너무 파였거나.. 내가 원하는 옷은 아무리 찾아도 단 한 개도 없었다.


미싱을 구입하면서 생긴 마음의 변화는

"없으면 만들면 되지!"였다.


세상에 없는 건 만들면 된다. 미싱이 있으면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내게는 스포츠 의류를 봉제할 실력이 없다.


그럼 대신 제작해 줄 사람을 찾아보자!


그렇게 공장을 수소문하면서 나의 사업이 시작되게 되었다.


처음엔 브라탑 하나만 만들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구름처럼 부드러운 원단으로 만든 8.5부 레깅스, 5부 레깅스, 3부 레깅스, 부츠컷 레깅스, 그리고 비슷한 원단으로 만든 일자팬츠, 크롭탑, 양말... 등등 내가 머릿속으로 상상만 하고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제품들을 하나씩 만들어 가는 중이다.


이제는 운동하는 주요 연령대도 30-40대, 즉 나와 비슷한 나이대이다.


더 이상 20대가 소비를 이끌어가고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세상이 아니란 말이다.


그러니 결국 내가 원하는 것들이 지금 우리 세상이 원하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갖고 싶었던 것들을 만들어 나가면 세상의 누군가는 나와 같은 것을 갖고 싶어 하지 않을까?


외로움을 소거하니 진짜 내가 이끄는 내 삶이 찾아왔다.


앞으로도 나처럼 자존감 낮지만 이를 이기려 고군분투하는  여자들, 여성으로서 보호받기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늘리려 노력하고 운동하는 여자들을 응원하며 그들을 위한 많은 공헌 활동을 하는 게 나의 목표가 되었다.


한국의 1등 운동복/용품 브랜드로 거듭날 그날을 기대하며.


chipmunk는 우리가 흔히 아는 다람쥐이고, squirrel 이라 불리는 다람쥐는 청설모에 가까운 종을 부르는 단어이다.
왼쪽이 chipmunk 오른쪽이 squirrel

다람쥐 같은 자유로움을 얻겠다는 다짐.

All you need to do is find nuts!


부록. 외로움의 상대성

코로나블루가 한창 판을 치던 시절, 오히려 나는 코로나라는 상황에 위안을 받기도 했다.


원래도 아무 데도 나가고 싶지 않고 만나고 싶지도 않은데 때마침 강제로 만나지 말라고 하니

"내가 우울해서 안 만나는 게 아니라 모두들 아무도 안 만나는 상황인 거니까 괜찮아!"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혼자 있는 게 당연시 여겨지면 외롭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 나 빼고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짝이 있다느니 친구가 많다느니 하는 등의 생각이 나를 외롭게 한다는 거다.


모든 절망은 '비교'에서 시작된다.


그러니 당신도 자신의 처지, 상황 등을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가 잘하는 부분에 집중한다면 어떤 부분에서는 세상 어느 누구보다 뛰어나다는 걸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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