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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둥산 Oct 08. 2021

6. 그깟 머리카락이 뭐라고

젊은 암환자의 항암 일기 1


항암 전 부작용 대비하기


수술 후 항암은 안 해도 된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항암 부작용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전이도 없었고 문제가 됐던 우측 난소를 절제했으니 큰 걱정은 덜었고 기대를 가슴 한 켠에 품었다. 인터넷 카페를 수시로 드나들며 난소암 환우들의 항암 후기들을 읽었다. 나처럼 초기에 해당하고 득과 실을 따졌을 때 항암은 안 했다는 이들의 글을 종종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항암의 유무와 관계없이) 수술을 잘했음에도 재발이 됐다는 글을 볼 때면 무서웠다. 난소암은 재발률이 다른 암에 비해 높다고 하니 걱정이 안 될 수는 없다.


역시나 나의 기대는 내 주치의 선생님에 의해 한 순간에 사라졌다. 얄짤없이 표준 항암 총 6회를 3주 간격으로 받고 있다. 나의 경우 오른쪽 난소에 있던 커다란 근종이 터졌고 조직 검사 결과 암세포가 발견된 케이스다. 그 근종에서 혈액이 다량 흘러나와 복막 내에 가득 찼던 ‘상황’ 때문에 예후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 쉽게 말하자면 혹시나 남아 있을지 모를 ‘미세 잔류암’을 제거하여 재발 방지에 그 목적이 있다.


‘항암 잘 받고 깔끔하게 졸업장 받자!’는 생각으로 견뎌보자 마음먹었다.

하지만 항암 부작용에 대한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또다시 여기저기 찾아보며 항암 공부를 시작했다.


유튜브 의학채널들을 찾아보며 항암의 원리와 왜 이런 부작용들이 초래되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섭렵했다. 암세포는 어떤 세포보다 빠르게 자라나는 특성이 있다. 항암제는 이 특성을 이용해 우리 몸에 빠른 속도로 생성되는 세포들을 제거하는 원리로 작동된다. 약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이 과정에서 정상세포들도 공격받게 되는데 위장 점막 세포, 모발 세포, 골수 세포, 생식 세포 등이 이에 속한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따라오는 부작용으로 오심, 구토, 구내염, 변비, 설사, 탈모, 손발 저림, 호중구 등 혈구 수치 감소에 의한 면역저하, 빈혈, 불임 등 많은 증상들이 수반된다.


인터넷 카페 후기들을 통해 항암 부작용 대비책으로 내가 준비했던 것은 3가지였다.

1. 불임 대비: 난임센터에서 수정란 냉동, 2. 구내염 대비: 치과 스케일링, 3. 탈모 대비: 전동 이발기 구매

탈모 부작용으로 대비하지 못해 가장 후회하는 것은 ‘눈썹 문신’이다. 5회 차인 지금, 온몸의 털은 물론 눈썹이 거의 다 빠져 얼굴이 깐 계란이 되었다.


1번은 이전 에피소드에서도 썼듯이 과정이 녹록지 않다. 하지만 암센터에서 난소 기능 측정이나 불임 치료를 해주는 곳은 아니니 본인처럼 가임력 보존술을 받은 분이라면 항암 전에 난임센터에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2번의 구내염의 경우, 치과 치료 중인 사람이라면 항암을 한 주정도 조금 미루더라도 치료를 모두 완료 후 돌입하는 게 좋다고 한다. 구내염으로 입 안이 헐면 먹는 것이 힘들어지고 혈소판 감소로 인해 출혈 시 고생할 수 있다. 나는 다행히 이전에 충치치료들은 모두 끝냈던 상황이라 스케일링 정도만 받았다.


마지막으로 대망의 탈모 대비로는 전동 이발기 구매를 먼저 해두었다. 항암 전문 가발샵에 가서 쉐이빙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미용실에 간다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나는 그런 외부 장소에서 삭발식을 거행하고 싶지 않았다. 안면 없는 사람들 앞에서 사연 많아 보이는 장면을 보이기 싫었다.

 


피해 갈 수 없는 탈모


첫 항암을 맞는 날에는 유독 긴장이 많이 되었다. 맞으면서 혹시 과민증상을 바로 겪지 않을까 괜히 마음 졸였다. 항암제 배출이 원활하도록 물을 많이 마시면 좋다고 들어서 이온 음료도 여러 병 챙기고 속이 울렁거린다는 후기를 보고서는 입덧 사탕도 가져갔다.


그런데 어느덧 5차를 맞이한 항암은 평범한 생활 루틴 같다. 항암 처음 시작하던 날에 왜 그리 떨려했는지 지금은 어이없을 정도로 별일이란 없다. 매번 아침 일곱 시에 병원에 도착해 채혈부터 한다. 두 시간 넘는 시간 정도 대기 후 외래 진료를 본다. 외래는 보통 삼분 컷이다. 피검사 결과를 체크받고 미리 적어온 궁금점 해소 시간을 가진 후 통합 주사실로 이동해 접수를 한다.


그리고는 항암 투여 30분 전에 먹으라고 처방해주신 구토억제제와 과민증상 방지약을 꿀떡 삼키고 기다린다. 자리는 침대와 리클라이너 의자 2종류가 있는데 자리가 나는 순서대로 배정받는다. 침대 건 의자 건 누울 수 있는 건 동일하지만 나는 침대를 선호하는 편이다. 자버리는 게 속이 편하니까.


그렇게 자리를 잡으면 부작용 방지제부터 주사해주시며 불편한 느낌이 들지 않는지 스스로를 관찰한다. 별 느낌이 없으니 별말 없이 있다 보면 금방 조제되어 나온 항암제가 온다. 나는 카보플라틴과 파클리탁셀이라는 두 가지 조합으로 맞고 있는데 두 항암제 모두 투명한 물처럼 생겼다. 별거 아니게 생겼는데 저게 내 몸에 들어가서 날 힘들게 한다는 게 희한하다. 이때쯤 되면 오전 10시경이 되고 항암제 주사가 시작된다. 약 하나 당 두세 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약 때문인지 어제 늦게 자고 오늘 너무 일찍 일어나서 인지 모르겠지만 항암 하는 동안 매우 졸리고 몽롱하다. 그리고 소변이 무지 자주 마렵다. 자다가 화장실에 들락날락하는 일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그러다 보면 시간은 참 잘 간다. 항암제가 다 들어가면 서너 시가 되고 집에 돌아오면 저녁 먹을 시간이다.


항암이 무서운 이유는 어떤 부작용이 발현될지 몰라서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니 이 사람 증상 다르고 저 사람 증상이 다르다. 나한테는 오지 않겠지 하는 게 올 수도 있고, 오겠지 하는 것이 안 올 수도 있다.


그런데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부작용이 있었으니 ‘탈모’다.

항암을 시작해야 하는 날이 가까워져 올 수록 인터넷 카페에서 항암 후기에 집착했다. 탈모가 오지 않는 항암제도 있긴 하지만 백이면 백. 항암을 시작하고 탈모가 오지 않았다고 한 난소암 환우의 후기는 없었다. 모두들 2주 차가 되면 약속이나 한 듯 두피에서 머리카락들이 나가떨어졌다고 한다.


항암이 끝나면 다시 자란다고 하지만 다시 자라는데 꽤나 긴 시간을 요한다. 치료를 끝내고 민머리에서 단발까지 기른 환우 분의 글에 의하면 꼬박 1년이 걸렸다고.  

 

평소 긴 머리를 고수했던 나는 ‘그래 이번 기회에 나한테 가장 잘 맞는 머리 스타일을 찾을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우울과 걱정을 덜었다. 여기저기 인터넷 검색을 통해 가발을 구경하는 시간을 보냈다. 이런저런 스타일을 여러 가지 써볼 생각에 심지어 설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두려웠던 시간이 다가왔다. 정말 점쟁이가 말해준 것처럼 항암제 투여한 지 정확히 14일이 지나고 나니 머리카락이 베개에, 바닥에 묻어나기 시작한다. 머리를 한번 감고 나면 배수구에 눈에 띄게 쌓인다. 청소가 말도 안 되게 번거로워지기 시작한다.


첫 항암제 투여 후 정확히 2주차에 빠지기 시작한 머리카락


안 밀고 그냥 있어볼까도 생각해봤지만 왜 다들 삭발을 할 수밖에 없는지 이해가 된다. 청소의 불편함은 물론 머리카락이 떨어져 나갈 때마다 슬픔이 더해지기 때문이었다.

  

‘머리 말리는데 시간도 안 들지. 미용실도 안 가도 되지. 샴푸 린스도 필요 없겠네.’

‘아기 때 머리 잘 자라라고 배냇머리를 밀어주는데 항암 끝나고 더 튼튼한 머리가 날 거야.’

온갖 장점들만 생각하며 나 스스로 생각의 시선을 돌렸다.


한 평생 여자로 살면서 삭발을 할 일이 있을까. 비구니가 되어 절에 들어간다면? 부당한 일을 겪어 삭발시위를 하게 된다면? 생을 사는 동안 일어나기 희박한 게 분명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다른 사람들은 쉽게 겪지 못할 특별한 경험이다.


그리하여 임시 이발소가 우리 집 안방에 열렸다. 재활용 비닐을 바닥에 깔고 목에는 수건을 두르고 그위에 비닐에 구멍을 내어 머리 위로 쑤욱 썼다. 남편이 조심스럽게 내 머릴 밀기 시작했다. 징징 이발기 소리 한 번에 후드득 떨어지는 내 머리칼들이 비닐 위에 소복이 쌓였다. 처음에는 그저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내 모습이 웃기기도 했다.


다 자르고 머리를 터는데 그 느낌이 아주 생소하다. 민머리를 만지는 내 손의 허전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또 한 번 소리 죽여 울었다. 그깟 머리카락이 뭐라고 사람 마음이 미어지는지 모르겠다.


무더운 7월의 여름이었는데 어느덧 가을이 왔고 나는 항암 5 차를 채웠다. 이제 몸에 있는 모든 털들은 가을 나무의 낙엽처럼 떨어져 눈썹 조차도  가닥 남지 않았다. 이번 여름은 겨드랑이나 다리털 제모를  필요가 없었다. 아주 간편하게 여름을  기분이다.


다만 항암을 시작하기 전에 눈썹 문신을 하지 못한 게 굉장히 후회가 된다. 머리도 없고 눈썹도 없으니 정말 계란이 따로 없다. 외출할 때마다 열심히 눈썹을 그리고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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