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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둥산 Dec 01. 2022

8. 뷰티 인사이드

젊은 암환자의 신혼생활

(작년 겨울이 되기 전 회사로의 이른 복직을 하는 바람에 정신없이 1년이 지나버렸네요. 그동안 마음 한편에 투병일기를 마무리짓지 못한 짐이 쌓여있었는데, 다시 기억을 더듬어 이야기를 써 내려가 봅니다.)


나는 결혼한 지 1년 만에 난소암 1기 진단을 받았다. 하루아침에 암 환자가 되었지만 내 남편 또한 아무런 예고 없이 암 환자의 보호자가 되었다. 신혼 생활 1년 만에 시작된 남편의 병수발 라이프.


투병 생활은 환자인 나 보다 보호자가 고된 일이 많다. 생업과 더불어 환자를 챙겨야 하니 그렇다. 2번의 수술과 6번의 항암을 거치는 동안 새벽같이 병원을 데려다주고 데리고 왔다. 불편한 보호자 의자(등받이 없는 간이의자)에 반나절 내내 앉아 항암약이 잘 들어가는지 체크하고, 내가 혈관통으로 아프다 하면 온찜질을 대주었다. 


매끼 내 밥을 챙기고 부작용 때문에 몸져누워 있으면 약을 챙겨 먹인다. 체력 올려야 한다고 바깥에 걷기 운동이라도 할라치면 늘 옆에 따라나서 준다. 내 마음이 힘들어 보이면 근교로 데리고 나가 맛있는 것을 사맥였다. 


항암 3차쯤 했을 때 너무 힘들어 나머지 횟수를 못하겠다고 눈물지으며 떼를 쓰자, 목걸이 선물을 사다 주며 조금만 힘 내보라 응원해주었다. 묵묵하게 내 옆을 지켜주는 유일한 사람인 내 남편에게 고맙고 미안해서라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다 생각이 든다.



못생겨짐의 정점을 찍다


내가 먼저 질문하지 않으면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사람이라 한 번씩 그에게 물어본다. 

 "요즘 힘든 거 없어?"

 "고민거리는 없어?" 

그때마다 그저 내가 건강하기를 바랄 뿐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다. 


예상은 했지만 항암을 하면서 내 고민거리만 늘어갔다. 바로 내 외모의 변화.


무더운 여름이었던 7월, 항암 부작용으로 탈모가 오기 시작했고 결국 삭발을 했다. 그깟 머리카락 기다리면 다시 자라는 거지 하고 스스로를 위로했건만, 그 이후로 내 외모는 아주 빠르게 하향길을 걷기 시작했다.


온몸의 털이란 털은 다 빠졌다. 이제 눈썹도 마지막 잎새처럼 처량하게 매달려있다. 환절기가 되니 비염이 심해져 쉴 새 없이 콧물을 만들어 내는데, 코털이 없다 보니 콧물이 막을 새도 없이 주르륵 흐른다. 거울 안의 나를 가만히 들여다 생김새는 동네 바보가 따로 없다. 내가 어디까지 못생겨질 수 있나 시험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항암 하는 동안 바깥 활동을 거의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피부가 조금이라도 하얘지려나 했는데 그런 기대는 고이 접어 주머니 속에 넣어야 했다. 왜 인지 얼굴빛은 점점 어두워지는 듯하고 거기에 건조함이 더해져 푸석했다. 눈썹도 없어져 마치 맥반석 깐 계란 같은 모습이 되었다. 


"나 진짜 다른 사람 같다. 못생김이 인생 최고치 경신이야."

잔뜩 우울한 표정으로 얘길 하니 계란에 내 얼굴을 그려서는 나랑 똑같지 않냐며 초등학생처럼 놀려댔다. 그도 이런 내 모습이 생경할만할 텐데도 우울할 틈을 안 주려하는 그이에게 고마웠다.  



대머리인 채로는 좀 곤란해


떨어진 외모 자신감과 비례해서 내 성욕은 바닥을 뚫고 저기 지하 밑으로 들어갔다. 


항암 투여 첫째 날에 병원에서는 가이드북을 하나 주시는데, 그 안에는 항암 시 나타나는 증상에 대한 대응법이나 여러 가지 주의사항 전달해주는 내용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놀랍게도 부부관계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항암 중에도 관계는 당연히 가능하나 세균 감염에 약할 수 있으니 그런 부분을 조심하라던가, 필요시에는 담당 선생님과 상담해서 윤활제 같은 것을 처방받을 수도 있다는 내용은 참 신기했다.


의학 전문 유튜브 채널에서도 부부관계에 대한 고민상담을 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어떤 유방암 환자의 남편이 처음에는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말을 꺼내지 않았으나, 항암 기간이 5년가량으로 길어지니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 되어갔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환자라는 사실과 치료 중에는 몸과 마음이 메말라 있는 느낌에서 벗어나기는 힘든 게 사실이다. 나는 겨우 몇 개월 간의 항암 치료를 하면서도 굉장히 심적으로 힘들었는데, 몇 년 간의 장기간 치료는 상상하기 싫을 정도니까. 


거울 속의 내 못생긴 모습을 보면 남편이 이런 내 모습도 사랑스럽게 보일까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낮아진 외모 자존감은 어쩔 수 없이 성욕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이야기를 부부간에 솔직하게 털어놓고 서로 이해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말하지 않으면 오해가 생긴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치료기간 동안은 안식년이라 생각하며 이 시기가 언젠가는 지나가리라 서로를 위로했다. 투병하는 동안 힘들고 눈물짓는 신혼 생활이 되었지만,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사랑해주는 남편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남편은 우리 결혼식 날 축가로 다행히 다를 불러줬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사랑 표현으로 충분해


연인이나 부부 고민상담 방송에서 부부관계가 주제인 걸 종종 볼 수 있다. 부부 사이에 육체적 관계가 있어야 사랑하고 있다는 유일한 증거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경우라던지, 섹스리스는 부정적으로만 비치기도 한다. 만약 필자처럼 젊은 나이에 암을 겪게 된 독자가 있다면, 신혼이기에 성생활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을 수도 있다. 물론 투병만으로도 충분한 명분이 되지만 내가 성생활을 쉬어가고 싶다는 것이 자칫 남편에게 오해가 되진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중요한 건 서로 간에 얼마나 솔직하고 충분한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지가 아닐까. 가벼운 스킨십이나 따뜻한 대화 만으로도 충분히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다. 아픔을 겪고 나니 소소한 사랑 표현들은 평생 해도 모자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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