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일][12월14일] 상황을 살 것인가? 아니면..

삶을 살 것인가?

누군가 내 몸을 올라타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긴다. 딱딱한 무언가가 나의 몸을 강타한다. 세상에 이것보다 더 무거운게 있을까? 눈꺼풀의 무게를 간신히 견뎌내며 빛을 담아본다. 나의 몸을 강타한건 무시무시하게 생긴 공룡이었다. 또 아침인가보다. 나를 내려다보는 아이의 모습이 사랑스럽기도 하지만 가슴 속 깊이 답답함에 한숨이 나온다. 이렇게 아이의 기상과 동시에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 영유아기 엄마의 하루는 모든 중심이 아이로 맞춰져 있다. 나보다 먼저 일어난 아이는 배가 고파 칭얼댄다. 이유식 또는 아침밥을 챙겨주기 위해 부엌으로 가서 뭔가를 할라치면 안아달라고, 놀아달라고 내 다리에 매달리기 시작한다. ‘승윤아... 엄마가 승윤이 맘마 해줄게. 배고프지? 조금만 기다려~~’분명 내 말을 이해하는 것 같은데 하는 것에 변함은 없다. 이제 겨우 하루 시작인데 힘들다. ‘벌써 지치면 안되는데...’생각하니 더욱 지친다. 겨우 아침밥을 준비하고 먹인다. 나는 빵으로 우유로 씨리얼로 과일로 눈에 보이는 걸로 대충 허기를 채운다. 먹은걸 정리하고 나면 쌓여있는 집안일이 눈에 쏙쏙 들어온다. 지금 당장 해야 할 것 같다. 마음이 불편하다. 나만 바라보고 있는 아이와 쌓여있는 집안일... 한 손으로 아이를 놀아주며 한 손으로 집안일을 한다. 둘 다 제대로 될 리가 없지... 그래도 어느 하나 포기할 수는 없다. 나는 엄마니까... 내가 집안일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몰랐다. 평소에 방청소 안하다가 꼭 시험기간에 책상 앞에 앉으면 책상정리부터 해야 할 것 같았던 때가 생각난다. 결국 이도저도 제대로 못했던 어린 아이였던 나. 생각해 보니 지금과 다를 것이 없다. 신체적으로 성장했다 뿐이다. 어른이 되면 다를 줄 알았는데 엄마가 되어서도 똑같은 내가 답답하다. 그런데 더 답답한 건 어떻게 하면 변화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자기계발서도 읽고 실천도 해봤다. 작심삼일을 반복한다. 어려운 상황을 극복한 성공스토리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지금 터널을 지나고 있는 거라면 끝은 있겠지? 그런데 끝은 어디일까? 이 상황이 끝나면 행복할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제대로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지금 배울 수 있는 시간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TV시청, 스마트폰으로 하는 SNS, 동네 아줌마들과 수다 떨 시간은 만들어낸다. 소통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남편이 중국에 있던 어느 날 광주에서 친정 엄마와 아이들과 함께 대형마트에 갔다. 발렌타인데이를 앞둔 때였는데 사람이 정말 많았다. 한참 이것저것 구경을 하다가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는데 승윤이가 보이질 않는다. 이런 촉은 왜 이렇게 잘 맞는지... 당장 눈앞에 안보여도 근처 어딘가에 있겠지... 초콜렛 쌓여있는 매대에 있을 거라고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빠르게 둘러보는데 안보인다. 과자 라인에도 없다.“승윤아~ 승윤아~~” 목소리가 커진다. 아무런 대답이 없다. 자기 일 아니라는 듯 멀뚱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먼저 마트 측에 알려야 하나? 친정 엄마에게 둘째를 맡기고 앞만 보며 달리다 보니 저 끝에서 울고 있는 승윤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가슴이 철렁한다. 나를 보고 더욱 크게 서럽게 우는 아이를 한참 안아줬다. 다행이 실내였고, 잃어버린지 얼마 안되어 알아차렸기 때문에 금세 찾을 수 있었다. 누구나 한번쯤 있었을 법한 일이고, 아직 걷지 못하는 아이의 엄마라면 앞으로 한번 쯤 있을 법한 일이다. 아이 덕분에 구급차를 타보기도 하고, 극한체험을 하기도 하며, 내 몸통만한 가방을 등에 매고 아이는 앞으로 안고 아가씨 때엔 상상할 수 없는 외출을 한다.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이 이어지는 날이면 특별한 일 없나? 하다가도 이런 저런 사건사고 상황이 닥치면 조용히 살고 싶다며 평범한 하루를 그리워한다. 결국 매 순간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순간을 대처하는 삶의 태도의 문제인 것이다.


각자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모두의 삶이 다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전업주부인 엄마의 삶, 워킹맘들의 삶,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으로 어깨가 무거운 아빠의 삶, 직장인의 삶, 사업가의 삶 등 각자의 삶 속에서 매일 비슷한 일들이 반복된다. 아이를 임신하기 전에는 임신한 선배들, 그리고 집에서 육아휴직하며 애 키우는 선배들이 참 좋아보였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보고서를 퇴짜 맞을 때, 업무 지시도 정확히 안 해놓고 이렇게 밖에 못하냐며 핀잔을 줄 때, 결국 자기 마음대로 할거면서 창의성을 발휘해 보라며 일을 넘길 때 이런 걱정 안하고 아기만 보면 되는 선배들이 부러웠다. 합법적으로 야근하지 않고 당당히 퇴근하는 임산부들이 부러웠다. 내가 처한 상황에 불만을 품으며 그 순간이 어서 지나기를 바랬다. 어찌해서 그 순간을 지나면 어김없이 또 다른 상황이 찾아오는데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매 순간 그 다음을 생각하며 버텼다. 그토록 바라던 육아휴직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말도 안 통하는 아이와 온 종일 함께 하며 아이 뒤치다꺼리에 지쳤다. 잃어버린 나의 꿈을 생각하고 한탄하며 한숨 쉬었다. 나에게 주어진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상황 속에서 진짜 나의 삶을 만들어 보려는 신중하고 깊은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뭔가 시도해 보기 위해 마음이 꿈틀거릴수록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은 더욱 나를 힘들게 할 뿐이었다. 닥치는 대로 사는 것이 내가 상황을 버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격언련벽> 에는 “곤욕이 근심이 아니라 곤욕을 괴로워하는 것이 근심이나 영화가 즐거운 것이 아니라 그 영화를 잊어버리는 것이 진정한 즐거움이다.” 라고 실려 있다. 어떠한 상황에 놓여있을지라도 상항에 지배받지 않고 그 상황을 누리며 사는 삶이 지혜롭다는 뜻이다. 육아가 괴로운 것이 아니라 육아를 괴로워하는 것이 근심이다. 워킹맘의 삶이 근심이 아니라 워킹맘의 삶을 괴로워하는 것이 근심인 것이다. 지금의 나는 이 말을 조금 이해할 수 있다.


매일 글쓰기를 시작한지 1년 3개월 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있다. 항상 자아성찰을 위한 글만 썼던 것은 아니다. 성장일기, 서평, 감사편지, 현재에 감사하는 감사일기, 미리 감사하는 미래감사일기, 화내고 난 후 아이에게 쓴 반성문, 눈물을 훔치며 쓴 고백, 미래의 나에게 그리고 과거의 어린 나에게 보내는 편지 등 종류가 다양하다. 중요한 것은 매일 꾸준히 써 오고 있다는 것이다. 신기한 것은 매일 쓰는데도 또 쓸 게 있다는 거다. 단조로운 삶, 특별할 것 없는 인생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내면의 나는 할 말이 많았나보다. 쓰고 나서 ‘정말? 내가?’하며 의아한 경우도 많았다. 정말 할 말이 없는 날도 있는데 그런 날도 열린 마음으로 노트북 앞에 앉으면 어떻게든 한 편의 글이 완성된다. 오히려 그런 날에 내가 모르던 나의 모습을 만나기도 한다. 최근 나의 글쓰기 현황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의식의 흐름 대로 40분 정도 3 페이지의 글을 쓴다. 이것은 글이라기 보다는 그냥 끄적거림인데 손으로 직접 쓴다. 의식적이고 규칙적인 행위로 매일 쌓이는 부정적인 생각을 백지에 흘려보낸다. 그리고 나서 감사일기를 쓴다. 어제를 되돌아보며 그냥 흘려 보낸 것은 없는지 되내어 본다. 큰 꼭지를 잡고 다시 한번 감사하며 기록한다. 또 오늘 하루 있을 일을 상상하며 미리 감사한다. 마지막으로 미래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감사한다. 쓰다보면 정말 그런 모습이 될 거라는 믿음에 1%의 의심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그렇게 시작하는 하루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은 하루가 아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하루를 맞이하는 삶의 태도가 바뀐다. 조금씩 성장해 가는 나를 느낄 수 있다.


개인 마다 자아성찰을 위한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 명상, 요가, 수행, 기도, 기타 자기계발 등으로 내면의 나를 만나는 시간을 갖는다. 글쓰기를 만나기 전의 나처럼 아직 자신만의 방법을 찾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글쓰기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 책의 여백에 시작해도 좋다. 책을 읽으며 깨달은 점, 나에게 적용해 볼 포인트를 생각해 보며 조금씩 뻗어나가는 글쓰기도 좋다. 결국 나로 향하는 글쓰기로 마무리 될 것이다. 똑같은 일도 글로 옮기며 나만의 가치를 부여하게 된다. 가치 있는 상황이 모여 의미있는 하루가 된다. 오로지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 뿐이다. 마음의 준비만 되면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은 글쓰기가 최고다. 상황을 살지 말고 나만의 삶을 만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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