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은 곧 행복이다
다섯 살 승윤이의 내복이 어느새 딱 맞다. 올 해 초에 너무 큰 사이즈를 선물 받아 몇 년은 입히겠구나 했는데 블록놀이 하는 아이의 팔을 보니 내년 봄엔 새로 사줘야겠다. 매일 붙어 지내서 그런지 평소에는 아이가 크는 걸 실감하지 못하다가 이따금 훌쩍 커버린 것을 알아차린다.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 아이가 기특하기도 하고 너무 빨리 커버리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아이가 노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니 손놀림 또한 예전과 다르다. 마음대로 안되면 짜증부터 내고 나에게 해달라고 매달리던 아이었는데 이리저리 돌려가며 제법 모양을 갖춘 완성품을 만들어낸다. 눈빛이 진지하다. 무작정 만드는게 아니라 먼저 골똘히 생각을 하고 생각이 끝나면 망설임 없는 손놀림으로 빠르게 모양 하나를 완성한다. 꽤 오랜 시간 집중해서 만든 작품을 들고 나에게 다가와‘엄마 이거 뭐 같아?’묻는다. 혹시 틀리거나 못 맞추면 마음 상해 할까봐 긴장하며 대답한다. 확률은 거의 반반이다. 헌데 아이는 내 대답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틀리면 더 즐겁고 기쁘게 “땡~~~!!!” 한다. 한 번에 맞추는 것보다 여러 번 걸쳐 맞춰주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열심히 무언가를 생각하며 만든 걸텐데 못 맞추면 속상해 할 거라는 어른의 생각과 만드는 것을 넘어 맞추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는 아이의 생각에는 큰 차이가 있다. 결과보다 과정 자체를 즐길 줄 아는 것 까지 아이는 나보다 훌륭하다.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진리를 알고 이미 그런 삶을 살고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성인이 되어 책이나 강의를 통해 재 습득하는 이런 것들을 우리는 이미 알고 태어난 게 아닐까? 성장하며 부모님, 어린이집, 학교, 사회에 의해 그들이 요구하는 것에 맞춰 살다 보니 서서히 잊어버리는 것 같다. 아이는 몸도 마음도 생각도 성장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말이다.
승윤이도 대체로 빠른 편이었지만 승연이는 성장속도가 정말 빨랐다. 둘째라 그런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눈에 보였다. 7개월 무렵부터 침대 위에서 혼자 서려는 연습을 했다. 내 손을 잡고 일어섰다가 혼자 중심 잡기를 연습하며 내 손을 놓는다. 처음엔 1초도 서있지 못하고 엉덩방아를 찧는다. 침대라 전혀 아프지 않다. 놀이하듯 넘어져도 즐거워한다. 잠들기 전까지 몇 번이나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일어서 있는 시간을 늘려갔다. 걸음마도 제자리 뛰기도 같은 방법으로 터득했다. 침대에서는 아무리 넘어져도 아프지 않으니 침대에서만 열심히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아침이면 전날 하지 못했던 발달행동을 “짠~” 하고 선물처럼 보여주었다. 태어난 지 8개월 밖에 안되고 옹알이만 하는 아이가 침대에서 넘어지면 아프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 8개월 반에 걷기 시작하고 10개월 때에는 뛰어다녔다. 막 말문이 트이기 시작할 때의 일이다. 아이 침대 옆에는 뽀로로 볼텐트가 있는데 볼텐트에 그려진 캐릭터의 이름을 외우기 시작했다. 뽀로로, 크롱 정도만 알던 아이는 승윤이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듣고 있다가 복습했다. 모르는 이름을 손가락으로 가르치며 나에게 물었다. “포비~” 라고 이야기 해주면 비슷하게 따라한다. 머리에 인식이 될 때까지 수도 없이 같은 질문을 하고 나는 처음 알려주는 것처럼 최대한 상냥하게 대답해 주었다. 잠들기 전까지 뽀로로 친구들의 이름을 대뇌이던 아이는 하루에 하나씩 더 많은 이름을 알아갔다. 승윤이는 어떻게 말을 시작했고 가르쳐 줬는지 기억이 안난다. 아마 연이는 두 번째 이기도 하고, 마음의 여유가 좀 더 생겨서 하나하나 보였던 것 같다. 또래 아이보다 신체 발달은 조금 늦는 편이지만 승윤이 덕분인지 오빠를 따라하다 보니 말하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참 빠르게 성장한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써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참 뿌듯하고 행복하다. 이래서 힘들어도 아이를 키우는 거구나 싶다. 엄마를 포함한 우리 어른은 더 이상 키가 자라지 않는다. 신체적인 성장이 없고, 노화만 진행될 뿐이다. 우리의 마음이나 생각은 어떠한가? 성장하고 있을까? 퇴화되고 있을까? 아이의 성장을 보며 나도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엄마는 아이의 성장을 위한 영양분을 공급할 뿐 엄마도 엄마 성장을 위한 노력을 할 때만이 성장하는 것이다.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은 엄마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아이가 자립할 때까지 몸도 마음도 건강한 성인이 될 수 있도록 지켜봐 주고 지원해 주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은 공부 잘하는 똑똑한 아이, 선생님과 부모님 속 썩이지 않고 말 잘듣는 착한 아이로 성장하여 좋은 대학, 좋은 곳에 취직시키는 것 까지를 의미한다. 그래서 어린 아이일 때부터 좋은 환경을 조성해 주기 위해 매월 백만원이 넘는 놀이학교를 보내고 영어유치원을 보내며 그걸로 부족해 예체능 학원, 동요 과외까지 시킨다. 경제적으로 넉넉해서 그 정도 투자하는데에 전여 문제없다면 본인의 자유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은데 아이 교육만을 생각하며‘너 하나라도 잘 키우자’ 는 심정으로 소일거리라도 하며 돈을 모아야 하는 거라면 백번 다시 생각해야한다. 그 것이 정말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인지 말이다. 아이가 좋은 곳에 취직을 한다고 치자. 그 다음엔? 더 많은 좋은 기회가 올거라고? 엄마 치맛자락에서 놀던 아이가 정보의 홍수 속의 기회를 스스로 알아차리고 잡을 수 있을까? 어찌 됐건 아이의 의사 와는 상관없이 엄마의 육아철학, 교육 계획에 맞춰 아이는 성장한다. 학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교육이 시작되면 아이가 공부에만 집중 할 수 있도록 엄마는 최선을 다한다. 공부 외에 것들을 아이 대신 처리해주며 좋은엄마라 착각한다. 그런 아이가 마음이 탄탄한 아이로 성장할 수 있을까? 아이가 나에게서 독립한 뒤 드디어 육아에서 해방된 나는 “야호!!” 만세를 외치며 홀가분하게 나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을까? 이제부터 시작하는 진짜 나의 인생을 무엇으로 채우며 살아갈 것인가? 뭐든 있지 않겠냐고?? 지금까지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짧은 경험에 비춰봤을 때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과는‘아무것도 없다’.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며 ‘오냐오냐~~ 잘한다~~~’ 할 것만이 아니라 엄마 또한 아이와 함께 성장해야 한다.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 그리고 나의 진짜 인생을 위해서 내가 선택한 것은 ‘글쓰기’였다. 성장하기 위해 글을 쓴 것은 아니다. 답답한 마음에 생각을 끄적이던 것이 시작이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쓰다 보니 내 삶의 소명까지 알게 되었다. 하루아침에 찾아지지는 않는다. 분명한 것은 글쓰기를 통해 매일 조금씩 때론 훌쩍 나도 모르는 사이 성장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성장은 곧 행복이다. 아이의 성장, 그 자체가 엄마 삶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 아이도 때가 되면 자립을 한다. 혼자 설 수 있는 힘은 어렸을 때부터 조금씩 길러나가야 함다.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만 하던 아이가 하루아침에 사회에 나가 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나의 어린 시절만 돌아보아도 객관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부모님의 영향이 컸던 나 역시 대학교 때 갑자기 주어진 자유에 어디에서부터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고 헤맸던 기억이 있다. 그토록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막상 성인이 되니 자유와 책임의 무게가 너무나 컸다. 다시 아이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였다. 우리의 배우자가 부모님의 품을 떠나 독립적인 한 가정을 꾸렸듯이 우리 아이도 언젠가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며 완전히 독립한다. 아이의 성공이 나의 목표가 되어버린 엄마는 결혼 한 아이의 삶에도 간섭하고 싶어 한다.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과가 눈에 뻔하다. 아이가 자신감 넘치고 독립적이고 현명하고 지혜롭고 따뜻한 마음을 갖은 아이로 멋지게 성장하기를 바라는가? 책도 많이 보고 내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하며 그 자체에 재미를 느끼는 자기주도 학습을 하기를 기대하는가? 내가 먼저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자.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면 종이와 펜을 들고 나에 대한 글쓰기를 시작하자. 성장하지 않는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