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일][12월16일]진짜 엄마로 거듭나는 글쓰기

글쓰기의 힘

마음이 편해지길 바랬다. 직장생활을 할 때 금요일 퇴근하면서 월요일을 걱정할 정도로 마음이 힘들어서 선택한 육아였다. 엄마가 되면 아이를 바라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평화롭고 TV 광고에서 나오듯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온화하고 편안한 미소가 지어질 줄 알았다. 처음 엄마가 되고 나서 갈대처럼 마음이 흔들리다가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한달에 한권도 제대로 안읽고 있었다. 서형숙 선생님의 <<엄마학교>> 라는 책을 보며 육아의 교과서라고 생각을 했다. 박혜란 선생님의 책들을 보며 글로써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서형숙 선생님의 <<엄마학교>> 의 머리말에는 좋은 아이를 만들려면 먼저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현실에서 가장 안되는 것 중 하나이다. 동생에게 배려하는 오빠가 되길 큰 아이에게 바라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먼저 배려하는 사람인가? 인사성 밝은 아이이길 바라며 나는 얼마나 인사를 잘하는 사람인가? 생각해 보면 느낌이 온다. <<엄마학교>>를 읽다보면 서형숙 선생님은 원래 아이를 예뻐했고, 나와 다른 성향을 가진 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대가를 치렀다는 문장을 읽으며 육아의 힘든 부분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는 아이 기르는 대가를 치렀다. 아이는 예쁘고 사랑스럽고 자고 나도 시들지 않는, 이 세상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아름다운 꽃이다. 아이와 함께 산다는 것은 최고의 축복이다. 아이는 엄마 품에 안겨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는다. 엄마를 온전히 믿는다. 우리가 살면서 이렇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경우가 얼마나 있는가. 내가 아이를 낳아주었기에 그 아이도 나를 이렇게 믿어주는 것이다. 그런 아이와 함께 사는데 힘든 것도 좀 감내해야지 하고 나는 마음먹었다. 손수건 하나를 사도 값을 치르는데 아이의 이런 사랑을 받으면서 대가를 치르지 않을 수는 없었다.”


가수 이적의 엄마이기도 한 박혜란 선생님의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에 보면 좋은 엄마의 조건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한다.


“어떻게 아이를 키울 것인가는 결국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와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내 인생관이 곧 내 자녀관이요, 내 교육관일 수밖에 없다. 남들이 어떻게 아이를 키우고 있는가는 참고사항일 뿐 그것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내 마음을 다 꿰뚫고 있는 듯한 육아서들을 접하며 위안을 삼았다. 육아서에서 공통적으로 하고 있는 이야기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는 것이었다. 아이가 중심이 아닌 내가 중심인 육아가 답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밑줄을 치고 다짐을 해도 그 마음이 오래가지 않았다. 책을 읽으며 자고 있는 아이를 내려다보면 천사가 따로 없다. 낮에 아이에게 안된다고 했던 것들... 별거 아니었는데 왜 허용하지 못했을까 생각하며 내일은 좀 더 허용하는 엄마가 되자고 다짐해본다. 공룡놀이 하자고 집안일 하는 내 바지자락을 잡고 늘어질 때 왜 함께 해주지 못했을까 우선순위를 잘못 설정한 것에 미안해 하며 내일은 좀 더 아이와 함께 하는 엄마가 되어야지!!! 편안한 마음으로 잠이 들고 다음날 아침이 되어 아이가 일어나면 새로운 다짐을 하며 아이의 얼굴을 보고 미소지어준다. 내가 기분이 좋으니 아이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 보인다. 아이는 그 기세를 몰아 어제와 같은 행동을 한다. 몇 번은 긍정파워로 이겨내지만 시간이 흐르며 내 몸은 피곤해 진다. 반면 아이의 에너지는 지칠 줄 모른다. 우리 아이들은 나를 닮았는지 잠이 별로 없어서 낮잠도 안잔다. 결국 예민해진 나는 육아서를 읽을 때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버럭하고 야 만다. ‘그래... 그분들은 대단한 분들이니까.. 나는 지금까지 공부한 것도 없고 전공도 아닌데 책 몇권 읽었다고 무슨 기대를 한거야!! 다 똑같은걸......’화, 분노, 후회, 독서, 반성, 다짐 또 다시 화, 분노... 악순환이다. 책을 보지 않는 엄마보다야 낫겠지만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내가 답답했다. 매번 같은 일을 되풀이 하며 뭔가 다른 근본 해결책의 필요성을 느꼈다.


사람은 모두 각자의 삶이 있다. 하루 종일 같은 어린이집에서 생활하고 하원 버스를 타고 엄마 품으로 돌아온 아이일 지라도 엄마 손을 잡고 집에 가는 길에 들른 빵집에서 나누는 대화, 고르는 빵, 집에까지 가는 길은 모두 다르다. 같은 대화에서 느끼는 감정도 제각각이다. 내가 자라온 환경, 평소 습관의 경험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각자 경험에 의해 현재 나의 행동이 결정되어진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육아서도 마찬가지다. 한줄 한줄이 주옥같은 이야기 이지만 그분들의 삶을 토대로 경험에 맞춰 써 놓은 것이지 그 책을 읽는다고 해서 서형숙 선생님처럼 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런건 무시하고, 그냥 책속의 그분과 같은 삶을 살고 싶었다. 그것도 명확한 목표나 계획 없이 막연하게 말이다. 진통제를 먹고 몇 시간이 지나면 약발이 떨어져 다시 먹어야 하는 것처럼 육아서를 찾아 읽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 졌다. 책을 읽으며 좋은 엄마로 성장하고 있다기 보다 읽는 동안 내 마음을 위로 받고 위안을 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의 육아를 진정 받아들이고 매일 일어나는 감정들을 내 것으로 소화하면서 마음이 성장해야 아이도 편해 질텐데 그게 맘처럼 되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다는게 가장 큰 문제였다. 애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당시 독서 말고는 없었다. 답을 얻고자 책을 읽은 건 아니었지만 책을 읽다보니 책 속에 길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책을 공부하듯이 읽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내가 책 읽는 모습을 본다면 공부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문제집을 풀 때처럼 한손에 펜을 들고 밑줄을 그어가며 여백에 계속 적어가며 읽고 또 읽는다. 직접 내 손으로 기록을 해야 만이 내 것이 된다. 책을 읽고 나서도 머리로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손으로 직접 쓰며 내 것으로 소화시켜야 한다. 그래야 진정 내 것이다.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을 글로 쓰며 내 것으로 소화시킨다. 지금까지 내 행동에 대한 반성의 글쓰기, 책 속의 내용에 대한 깨달음의 글쓰기, 앞으로 내 삶에 어떻게 적용시키면 좋겠다는 포인트를 짚어가는 글쓰기... 책 서평을 넘어 나만의 쓰기가 필요하다. 서평에 나의 의견도 포함되지만 결국 책을 평가하고 누군가에게 추천하는 글이다. 하지만 나의 글쓰기에 책을 녹이는 것은 책의 평가가 아닌 내 삶에 적용이다. 이렇게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유난히 나의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책 속에 소개된 책을 연결하여 읽다 보면 어느새 육아서를 넘어 다른 분야의 책을 접하게 된다.


“아무리 정부가 나서서 보육정책에 돈을 쏟아붓는다 하더라도 아직은 일과 가정의 양립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어떻게든 일과 가정을 함께 꾸려 가려고 안달복달하다가 결국엔 육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접을 수 밖에 없는 엄마들이 너무나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왕 이렇게 된 바엔 자신의 인생을 죽을 때까지 엄마역할에 묶겠노라고 다짐하는 건 너무 성급한 결정이다. (...)

어쩌면 오로지 주부라는 직업에 몰두해야 했던 이 시기는 젊은 엄마들이 차분하게 자신의 적성과 능력을 점검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될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맞는 분야를 찾아내어 최소 1만시간만 투자한다면 무슨 일을 못해 내랴. 새로운 도전과 투자 없이 그저 엄마 이전의 경력만 내세우면서 사회가 나를 쉽게 받아주겠냐면서 미리 주저앉아 버리는 그런 바보짓은 그만두자. 아이를 억지로 키우려 하지 말자. 엄마가 크면 아이도 따라 큰다.”


그래! 공부!! 육아서를 읽으며 육아를 잘해 좋은 엄마가 되려고 애쓰는데 그치지 않고 육아를 넘어 나 자신을 위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뒷 장에서(글쓰기로 공부하는 엄마) 더 자세히 이야기 하겠지만 엄마도 공부해야한다는 것, 공부를 통해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자체만으로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엄마를 넘어 나의 인생에 초점을 맞추며 성장의 궤도에 올랐다. 육아의 틀 안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생각 했다. 앞으로의 내 인생을 위해 어떤 공부를 할 것인지 즐거운 마음으로 찾기 시작했다. 방법은 알았으니 무엇을 공부하여 어떤 삶을 살아갈지를 염두에 두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왜?’ 하려고 하는지도 함께 생각했다. 외면이 달라진 건 없었다. 나는 여전이 두 아이의 엄마였고,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휴직 중인 전업주부였다. 하지만 나의 내면은 점점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읽고, 쓰며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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