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일][12월19일]똑똑한 엄마, 지혜로운 엄마

지혜로운 엄마가 똑똑한 엄마

고등학교 2학년 때 영어 선생님은 참 재미있었다. 영어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선생님과 함께 하는 수업시간이 좋았다. 수업 내내 많이 웃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1교시면 50분밖에 안되는데 그 짧은 시간에 안부인사하고, 농담하고, 숙제검사하고, 단어 쪽지시험도 보고... 실제 교과서 내용을 공부할 시간이 얼마나 됬었는지 모르겠다. 공부를 열심히 했던 기억보다 선생님과 웃고 장난친 기억이 더 많이 남는 시간이다. 그렇다고 영어 선생님이 달랐던 반보다 공부를 못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성적이 더 좋았던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더 신나고 재미있었다. 영어선생님과 함께 하는 수업시간이 좋아서 영어를 잘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핑계에 불과하지만 계속 함께 할 수 없었던 관계로 선생님과 인연을 끝으로 영어는 조금씩 멀어져갔다. 반면 1학년 때 영어 선생님은 말 그대로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이었다. 중학교에서 막 올라와 적응하는데 쉽지 않았는데 수업까지 재미없었다. 분위기를 모르니 고등학교는 원래 그런 곳이라고 생각했다. 1학년 영어선생님은 수업시간 내내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싶어 하셨다. 그 당시에도 선생님은 아는게 참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2학년 때 선생님은 지방대 출신이셨고, 1학년 때 선생님은 엘리트 코스를 밟으신 분이었다. 선생님,엄마들 사이에서는 1학년 때 선생님이 단연 인정을 받았다. 어쩌면 ‘선생님 = 가르치는 사람’으로 봤을 때 1학년 때 영어선생님이 더 훌륭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선생님은 본인이 알고 있는 지식을 단순히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다.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수업내용을 얼마만큼 소화시켜 진짜 학생들의 지식이 될 수 있는지 고려해야한다. 선생님 중심이 아닌 학생 중심의 수업을 만들어내야 한다. 아는 것이 많고, 똑똑하다고 해서 다 좋은 선생님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슷한 예로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이면 모르는 것을 물어보느라 공부 잘하는 애들 주위에 친구들이 몰리곤 하는데 전교 1등이라고 해서 다 잘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똑똑하다고 해서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원래 똑똑한 사람일 경우 이 부분은 당연히 알겠지... 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다. ‘어떻게 저렇게 잘 가르쳐주지?’ 하는 사람들은 원래 똑똑해서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별로 없는 사람 보다 본인이 어렵게 터득한 지혜를 알려주는 경우다.


나는 남을 가르치는 것에 부담을 느껴왔다. 그래서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그랬던 나였지만 내 아이가 생기니 똑똑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내 아이만큼은 잘 가르쳐서 나보다 나은 아이로 키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늘 그런 마음이 있었지만 어떻게 하는게 잘 가르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첫째 였고, 친한 친구들 중에서 결혼도, 출산도 가장 빨랐기 때문에 자문을 구할 곳도 없었다. 그래서 육아서를 읽기 시작했다. 육아서마다 주장하는 게 달랐다. A 육아서는 아이가 울면 바로 안아주지 말고, 1분, 3분, 5분 간격을 두라고 이야기 했다. 수면법도 마찬가지로 아이가 울면 안아줬다가 내려놓기를 반복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시도를 해보았는데 책처럼 되지 않았다. 물론 계속 시도를 했다면 성공하고야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울고불고 하는 아이를 보고 있는 내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또 다른 육아서는 그냥 실~~컷 안아주라고 했다. 영유아기때 형성된 애착이 평생간다며 아이가 원하는 욕구를 바로바로 충족시켜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 했다. 이 책을 보면 이말이 맞는 것 같고 저책을 보면 저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냥 닥치는대로 내 마음에 와닿는 대로 적용했다. 그러면서 이게 맞나? 하는 의심의 마음이 들었다. 똑똑한 엄마와는 거리가 멀어져 가는 느낌에 힘들었다. 최고의 방법 보다는 나와 내 아이에게 맞는 최적의 방법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 2016년 1월 부모역할훈련(P.E.T)이라는 심리상담연구소에서 주관하는 강의를 알게 되었다. 대충 들어보니 내가 생각하는 육아와 같은 방향이었다. 그래서 정규과정을 들어보기로 하고 24시간 교육을 수강했다. 아이와의 문제가 생겼을 때 대처하는 방법, 누가 소유한 문제인지 아는 것부터 아이가 문제인 경우, 부모가 문제인 경우, 둘 다 문제인 경우 등... 꽤 체계적으로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부모역할을 할 수 있을지 알려주었다. 듣기만 했는데 똑똑해 지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하면 진짜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지 한줄기의 빛이 느껴졌다. 수업을 들은 다음날 끼니 때가 되어 밥을 차리고 놀고 있는 아이를 불렀다. 대답이 없다. 몇차례 불렀는데 역시나 같은 반응이다. “조승윤!! 밥 먹으라고 엄마가 말했지!!!” 큰 소리로 이야기 하니 그제서야 빼꼼 쳐다본다. “너, 엄마가 몇 번이나 불렀는지 알아? 엄마말 들은거야! 못들은거야!!” (머뭇거리며)“들었어!!!” 순수한 솔직함이 나를 더 화나게 할 때가 있다. “뭐야? 엄마가 부르는 걸 들었는데 대답도 안했단 말이야? 지금 엄마말 무시한거야?”아이의 주눅든 표정을 보니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어제까지 배운 내용이 그제서야 생각났다. 분명 배울 때는 내일부터 바로 적용해야지! 했었는데 얼마나 됬다고 금세 잊어버린 것이다. 바보 같았다. 24시간 동안 뭘 한건지... 자책을 하고 아이에게 죄책감도 들었다. 배우면서 열심히 적었던 메모들을 노트에 다시 한번 쓰며 정리했다. 두루뭉실하게 알았던 이론드이 어느정도 체계가 잡히는 것 같았다. 엄청 많은 내용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리하면서 나의 경험들에 대입해 생각해 예시를 만들어보니 정해진 틀이 몇 개 없었다. 노트에 나만의 방법으로 정리를 하며 진짜 내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혼자만 아는 것, 머리로만 아는 것은 진짜 나의 지식이 아니다. 나만 이해하고 남에게 잘 알려주지 못하는 선생님과 육아를 책이나 강의를 통해 이론으로만 알고 아이에게 적용하지 못하는 엄마는 동일하다. PET 를 공부하며 머릿속에 이론은 차곡차곡 들어왔지만 나만의 것으로 정리해 우리 아이에게 적용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혜(智慧)’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인 능력을 말한다. 학생들에게는 똑똑한 선생님보다 지혜로운 선생님이 필요하고

아이들에게는 똑똑한 엄마보다 지혜로운 엄마가 필요하다. 엄마는 머리로 공부하는 육아의 지식보다 아이와 나와의 관계, 시시 때때로 일어나는 상황을 빨리 파악하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인 능력이 필요하다.


<<엄마학교 중>>


꽃을 기르면서 모든 식물은 햇볕을 좋아한다고 믿고 다 볕 아래 둔다면 타 죽는 것들이 생긴다. 음지 식물에 대해서도 이해를 하고 그 식물이 습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도 각각 살펴야 한다. 네가 진정 무엇을 좋아하는지, 상대방의 상태를 알아야 한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진정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건 사육하지 않는 것, 아이의 타고난 성품을 존중하고 키워주는 것, 아이 자체를 인정하는 것, 아이의 입장을 충분히 배려하는 것이리라.


세상일이 다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생각지도 않은 일이 찾아와 애를 태우기도 한다. 하지만 급박한 일이 아니라면 내용을 잘 들여다보고 천천히 풀어내면 풀어진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제자리로 돌아온다. 서두르지 않으면 그 과정도 견딜 만하고 결과는 너무도 달콤할 것이다. 마치 오래 뜸 잘 들인 밥이 맛있듯이. 아이 기르는 것도 그 순간을 음미하며 차분히 기다리면 찰진 밥처럼 맛깔스러워진다.


예전에 육아서를 읽으면 100% 이해하고 나도 그런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역할훈련을 공부하며 내 경험에 맞춰 적용을 하며 내 것으로 소화시키며 기록하다보니 지금껏 머리로만 알고 있었다는 것을 느낀다. 다시 읽는 육아서는 훨씬 더 많은 지혜를 나에게 알려준다.


부모교육을 공부하고, 아이에게 적용하며 나만의 것으로 만들면서 블로그에 부모역할훈련일지라는 것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기록이야말로 내 것으로 만드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온전한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부모역할훈련일지는 성공사례 뿐 아니라 실폐사례도 포함된다. 쓰면서 느끼는 것은 그 당시 나의 감정 때문에 볼 수 없었던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잘 한 경우는 내 몸에 굳히기로, 실수한 경우는 반성하며 앞으로 더 잘해나갈 것으로 삼는다. 시간이 갈수록 PET 는 나의 사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지금은 PET 강사를 목표로 꾸준히 공부하고 적용하고 기록을 한다. 아직 살날이 더 많이 남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느끼는 것은 머리가 좋다고 똑똑하고 잘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얼마나 그 상황을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거창하게 부모역할훈련일지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나 나름대로 나의 기록에 가치를 부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우리가 하는 많은 노력들... 육아서를 읽고 강의를 듣고, 지인을 통한 배움들을 머리로 아는 것에 그치기 않고 손으로 쓰면서 내 것으로 소화시켜야 한다. 나의 작은 기록은 나의 삶이 된다. 혹시, 어쩌면 역사에 남을 기록이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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