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일][12월20일]나를 위한 공부

진짜 공부

(4월 11일)

학원을 갔다가 집에 와보니 엄마가 안계셨다. 그래서 보희네 집에 갔다. 보희 할머니가 엄마는 시내에 갔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보희네 집에서 놀기로 했다. 엄마랑 보희 엄마가 3만원 짜리 인형을 보여주시면서 보희와 선진이 중에서 시험을 올백 맞으면 3만원 짜리 인형을 주신다 했다. 너무 놀랐다! 나는 그 인형을 갖고 싶었다. 그렇지만 안된다. 그 이유는 올백 나온 사람이 가져야하기 때문이다.


(5월 1일)

오늘은 할머니네집에 갔다. 갔다와서 어디선가 전화가 왔다. 보희 엄마였다. 보희 엄마가 빨리 와보라고 하였다. 엄마는 나랑 함께 갔다. 가보니 시험지가 있었다. 그걸 해보라고 하였다. 그러면 몇 개 틀렸는지 안다고 하셨다. 그런데 5~6개 틀린 것 같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일기다. 어렸을 적 일을 모두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확실한 것이 있다. 공부를 하며 재미있다, 즐겁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 선생님과 부모님은 ‘너를 위해서’하는 소리라면서 기승전‘공부’였다. 분명히 좋은 분위기로 시작했는데 끝은 ‘공부 열심히 해. 다 너를 위한거야.’ 였다. 참 이상하다. 어떤 말로 시작해도 같은 결론이니 말이다. ‘나도 잔소리 하기 싫은데... 다 너를 위해서 하는 이야기야. 엄마라고 잔소리 하고 싶겠니...’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하기 싫으면 안하면 되지... 왜 괜히 잔소리 하면서 힘들게 할까?’ 생각했다. 지나친 관심과 기대가 공부에 대한 흥미를 갖기도 전에 큰 부담으로 와 닿았던 것이다. 또 하나 기억나는 일은 시험을 앞두고 학습지를 풀때 였다. 시간 계산하는 시계문제였는데 유난히 헷갈렸다. 같은 문제를 연이어 틀리는 나를 보며 엄마도 많이 참았을 것이다. 내가 제대로 이해할 때까지 엄마는 그 문제에 매달렸다. 지금도 생각나는 건 그 문제를 제대로 알아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데 문제에 집중하려고 하면 그게 잘 안됬다. 나를 쳐다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지고, 또 틀리면 어떻게 되겠구나 상상이 되었다. 그 생각에 집중이 되어서 제대로 알고 넘어가자는 생각보다 어떻게 하면 이 순간을 모면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눈칫밥으로 상황을 해결했다. 그렇게 눈치력 (눈치보는 실력) 은 커졌다. 동일한 수학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같은 문제를 계속해서 틀리니까 엄마가 시험보는 날 아침까지도 주의를 주었던 기억이 난다. ‘이 문제는 00 가 아니고 000 게 해야 하는거야.’밥을 먹으면서도 가슴이 먹먹했다. ‘대체 엄마는 나를 왜 못믿는걸까? 내가 그렇게 못미덥나?’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등교하는 내가 염려스러워 잊어버리지 말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를 하셨다. 그런데, 나는 결국 그 문제를 틀리고야 말았다. 엄마가 화를 내실게 분명했다. 나 스스로도 큰 실망을 했다. 왜 나를 못믿지? 생각했는데 나도 나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왜 이럴까?’

책 읽기도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큰 마음 먹고 사준 84권짜리 과학앨범을 사주셨다. 나름 거금을 투자해 들이셨을테니 나와 동생이 잘 읽어주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독서습관이 잡혀있지 않던 나에게 흥미를 북돋아 주기에는 부족한 책이었다. 읽지 않으면 엄마한테 혼날까봐 눈치껏 읽었다. 딱 혼나지 않을 만큼만. 어렸을 적 나는 똑똑하지는 않았지만 눈치가 없는 아이는 아니었다. 눈치는 있는 착한 아이었다. 아직도 친정집에 꽂혀 있는데 외갓집에 놀러가면 다섯 살인 아들은 재미삼아 책을 빼온다. 읽어달라고 해서 읽어주기도 하지만 책 자체를 가지고 놀기도 한다. 승연이는 오빠 따라서 책에 그림을 보며 논다. 지금 읽으면 재미있으려나? 하고 나도 몇 장을 읽어보는데 여전히 딱딱하고, 손이가지 않는다. 공부에 별로 욕심이 없었다. 진정 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직도 내면은 어린아이였지만 시간은 흐르고 흘러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다. 육아 초반 너무도 헤매던 때에 아이를 잘 키워보자며 육아서를 읽기 시작했다. 미리 읽어뒀으면 좋았겠다며 뒤늦은 후회를 했다. 마음이 급했다. 얼른 읽어서 아이에게 적용을 하고 싶었는데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의지는 불탔으나 육아를 하면서 습관이 안 잡힌 책을 읽기도 어려웠지만 아이가 책대로 정석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이지...’ 라는 당연한 것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다. 조급한 마음에 짜증이 늘어갔다. 현실의 도피처로 스스로 선택한 육아였는데 점점 피해의식이 들었다. 나만 고생하는 것 같아 억울했다. 너(아이)를 위해 내가 노력하고 애쓰고 있는데 전혀 몰라주는 아이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아이가, 남편이, 이 상황이 원망스러웠다. 엄마가 된 후에도 여전히 나를 위한 것이 아닌 ‘너를 위한다’ 는 관점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다. 생각도 습관이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뿌리 내린 깊은 나쁜 습관으로 힘들었다. 아이가 얼른 크는 수밖에 없나? 아이가 좀 크면 그땐 괜찮을까?


어렸을 적에는 당장 잔소리가 듣기 싫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눈칫밥 공부를 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힘들었을 때도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고, 당장 현실이 싫어 임신을 선택했다. 엄마가 된 후에는 육아에 발을 담근 이상 뺄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짓눌렀다. 왜 스스로 무덤을 파고 들어갔는지 나를 원망하며 이 시간이 지나기를 바랬다. 성장단계에 따라 각기 달라 보이는 문제로 힘들어했지만 결국 나의 문제는 어떤 상황에 부딪혔을 때 그 것을 해결하기 위해 근본적으로 차근차근 생각해 보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학교다닐 때 시험을 본 후에는 꼭 오답노트를 작성하게 한다. 문제를 맞고 틀린게 중요한게 아니라 진짜 나의 것으로 소화시키기 위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풀고 써보게 하는 것이다. 만약 또 틀렸다면 다시 한번 손으로 쓰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완벽하게 내 것으로 소화시킬 때까지 반복하면 결국 내 것이 되는 것이다. 나는 틀린 문제를 또 틀리는 것이 창피했고, 숨기고 싶었다. 정말 내가 몰라서 틀린 것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한번 틀려 정리한 문제를 또 틀렸을 경우에는 실수라고 생각하며 오답정리를 건너 뛰었다. 시간낭비라고 생각해서 문제만 써놓고 빈칸으로 비워놓기도 했다. 그게 쌓이고 쌓여 결국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문제가 훨씬 많게 되었다. 승윤이를 낳고 육아서를 읽을 때도 그랬다. 마음이 급해 눈으로 스캔하듯 책을 읽었다. 읽을 때는 다 이해하는 것 같고 나도 원래 알고 있는 거라고 우습게 넘기곤 했다. 격하게 공감을 하는 문구도 읽을 때 뿐이었다. 책을 덮는 순간 흐릿해져갔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이지성 저자의 ‘독서천재가 된 홍대리’를 읽게 되었다. 진짜 독서를 시작하게 된 책이다. 책을 읽으며 지금까지 굉장히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책을 옮겨 적는 부분 필사를 하며 내용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왠지 나의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독서천재가 된 홍대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남과의 비교가 아니라 나 자신의 실력을 키우는 일이었다. 그러나 하루에 수만 번을 다짐해도 쉽게 되는 일은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항상 열등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

삶의 변화를 바라는 진정한 열망을 지니고 살았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고등학생때는 대학에 가는 것이 꿈이었고, 대학을 다닐 때는 취직하는 것이 꿈이었다. 취직을 하고 난 후에는 때 되면 승진을 하고 능력 있고 예쁜 여자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집을 장만하고 사는 게 꿈이라고 생각했다. 모두 막연한 꿈이었을 뿐이었지 무언가게 대한 열망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열망’이라는 것을 가져본 적이 있었나? 생각해 보았다. 진정한 꿈이라고 할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공을 원하는 사람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뭐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요. 회사에 매인 직장인 마인드가 아니라 경영자 마인드를 지녀야 해요. 진정한 리더의 자질을 키워야 하고요. 그러려면 독서를 통해서 자신을 바꾸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내 삶에 성공이란 단어는 잊혀진지 오래였다. 나에게 닥친 상황이 힘들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책을 읽으며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렸다. 아직도 그런 마음이 남아있다는 것에 설렜다. 지금까지 나의 사고방식을 바꾸고 싶었다. 이지성 작가의 말처럼 ‘책 속에 길이 있다’ 는 것을 믿어보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책을 소중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며 읽기 시작했다. 눈으로만 스캔하던 내가 공부하듯 책에 밑줄을 긋고 정리를 하며 읽었다. 그리고 나서 발췌하여 필사를 하고 내 생각을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공유하고 싶은 것은 블로그에 올렸다. 확실히 예전과는 다른 독서였다.


<<생각하는 인문학 중>>


『대학』은 격물치지를 한 사람만이 입지를 진실하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는 성의정심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고, 성의정심을 이룬 사람만이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할 수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당신에게 권하고 싶다. 오늘부터 스스로의 마음을 끝까지 파고드는 시간을 가져라. 그리고 당신의 본질을 깨닫기 위한 치열한 노력을 경주하라. 내가 왜 태어났는지, 나는 누구인지, 내가 진실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인생은 어떤 것인지, 나는 세상에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지 등에 대해 뜨거운 질문을 던지고, 전쟁 같은 독서와 사색을 하라.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황홀한 깨달음이 찾아올 것이다. 바로 격물치지가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그렇게 나 자신에 관한 앎을 이루었다면 마음을 진실하게 하고 바르게 하는 성의정심으로 나아가라. 그리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시작하라. 당신은 할 수 있다.


그 당시 이지성 작가의 책에 빠져 있었는데 <<생각하는 인문학>> 을 읽고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고 블로그에 기록을 했다.


나도 내가 원하는게 뭔지 모르겠어...

라는 말을 자주 쓰며 살아왔던것 같다.

살아왔다기 보다는 살아졌다... 라는게 맞겠지.


앞으로 혼자만이 아닌 나의 인생.

사랑하는 남편, 그리고 두 아이들과 어떻게 채워가야할지...

어떻게 살아야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을지...

항상 뭔가 하나 빠진것 같고 아쉽고 행복함을 찾아야 행복하다고 느끼는게 아니라 삶 자체가 의미가 있고 마음이 꽉차게 살 수 있을지...

그만 미루고 생각하고 실천해야 겠다.


처음으로 나에 대해 진지하게 물음표를 던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삶의 태도에 대해 돌아보고 인정하고 반성했다. 앞으로 이런 뜨거운 질문을 나에게 던지고 전쟁 같은 독서와 사색을 하리라고 다짐했다.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자투리 시간을 적극 활용하여 진지하게 책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공부하듯 읽고, 쓰며 나에 대해 알아가고, 열망을 갖고 꿈을 찾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주변 사람들이 나를 보며 놀랐다.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밤잠, 새벽잠을 줄여가며 책을 읽고, 쓰고 있었다. 진짜 나를 위한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일기는 나를 알아가는 공부 였고, 감사일기는 충만한 마음을 살찌우는 공부 였다. 독후활동은 나의 내면의 내공을 쌓고, 지식을 채우는 공부였고, 육아일기는 아이의 성장을 기록하며 나를 되돌아 보고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공부였다. 무엇이든 글로 쓰며 지금까지의 사고를 바꾸고 나를 확장시켜갔다. 정말로 나를 대하는 태도, 삶의 마주하는 태도, 관점이 바뀌었다. 이것이 진짜 공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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