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일][12월27일]인생은 도전의 연속!

“반에서 10등 안에 들면 가방 사줄게.” 엄마가 조건을 걸었던 옷, 신발, 가방, 용돈 이 갖고 싶었다. 성적을 올리고 싶기도 했고, 엄마와의 약속을 지켜내는 것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사주기로 약속했던 물건들이 탐났다. 그 것들이 당당하게 내 손에 들어오는 것을 생각하며 공부했다. 시험기간을 2~3주 정도 앞두고 이런 제안을 받곤 했다. 때로는 엄마가 이야기 하실 때가 됐는데 잠잠하면 기다리다가 내가 먼저 이야기하기도 했다. “엄마, 나 시험 잘보면... 000 사줘.” 그런데 내 기억 속에 목표한 등수 또는 점수를 달성해서 당당히 선물을 받은 적이 없다. 늘 아쉽게(?) 목표에 달성하지 못했다. 시험공부를 시작할 당시에는 의지에 불탄다. 어떻게 하면 10등 안에 들 수 있을까? 3등을 올리면 되는데 내 앞에 세명이 누구더라? 계중에 만만한 세명을 찍어놓고, 목표 평균점수를 세운다. 그러려면 과목별로 몇점을 더 받아야하지? 국어는 내가 잘 못하니까 이번에도 점수를 올리기는 어려울 것 같고, 수학은? 이번 시험범위가 어려운 부분인데... 만만한 예체능 과목들을 보며 이것들 몽땅 만점을 받아보기로 한다. 다른 애들도 이 정도는 다 할텐데... 3등을 어떻게 올리지??? 아무래도 이번에 힘들겠는데...? 선물을 받기 위해서는 목표 달성을 해야 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지난번 시험보다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 어떤 전략으로 과목별 점수를 올릴지 지난번과 어떤 차별화를 둘지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약속한 기준 등수에만 열을 올리니 다른 친구들 성적까지 걱정이다. 그 생각으로 이미 불가능을 예상하면서 좌절한다. 시험기간이 가까워질수록 마음만 급하다. 엄마에게 들을 핀잔의 목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는 것 같다. 열심히 해보려고 했던 마음은 이미 식은지 오래고, 얼른 이 상황만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드디어 시험이 끝났다. 엄마는 말은 강하게 하지만 마음은 약한 분이다. 감자튀김에 따라오는 케찹처럼 엄마의 잔소리가 따라오긴 했지만 약속한 것을 대부분 사주셨던 기억이 난다.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에 다음 시험엔 꼭 잘 보겠다는 스스로의 다짐과 약속을 하지만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반복이었다. 학교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담임 선생님은 전체 평균 반 등수로, 과목별 선생님은 해당 과목 평균 점수로 반끼리 경쟁을 시켰다. 공부 잘하는 상위권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씀에 책임감을 느끼고 그렇지 않아도 잘하는데 더욱 불타오른다. 정작 잘 해줘야 하는 아이들은 자신의 이야기와 관계없는 이야기로 무시한다. 학창시절 공부 외에 특별히 해 볼 기회가 없던 나는 도전은 지금 보다 더 좋은 점수/성적을 받기 위해 하는 것 인줄 알았다. 어쨌거나 내리사랑 엄마 덕분에 원하던 물건은 대부분 손에 들어왔지만 잠시 동안의 기쁨이었다. 성공 경험이 낮았기 때문에 도전하는 자체로 결과에 대한 걱정과 염려수준이 컸다. 실패해도 괜찮다, 누구나 실패를 하고, 실패를 하며 배우는 것이다. 라고 이야기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혼자서 두려움의 장벽을 뛰어넘을 만한 내면의 힘도 부족했다. 도전이라는 것은 언제나 부담스럽고 나를 힘들게 했다. 어른이 되면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되니까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시험만 없으면 뭐든지 잘할 수 있다!!!


‘학교 다닐 때가 젤 편하고 좋은 거다.’ 라는 것을 이미 졸업을 한 뒤 느꼈고, ‘애기가 뱃속에 있을 때가 젤 편하고 좋은 거다.’라는 말을 출산하고 온 몸으로 느꼈다. 가능하다면 다시 뱃 속으로 넣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미련하게도 당시에 새겨듣지 않고 상황이 종료되고 나서야 ‘아~ 정말 그렇네’ 하고 깨달았다.‘걷기 전이 편한거야.’,‘말 못할 때가 좋은거지’‘그래도 학교 다니기 전이 편하다?’매번 앞으로 더 힘들 거라는 이야기를 들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지금 힘들다고 생각하지 말고 현재를 즐겨라는 이야기겠지만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답답했고, 뭔가 다른 것을 시도해볼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어차피 더 힘들어질거 뭣하러 애쓰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가만히 있는 성격은 아니라 이것저것 많이 기웃거렸다. 그런데 끝은 짜놓은 시나리오처럼 비슷했다. 시작은 하는데 뭔가 조금 더 나아가야하는 상황이 오면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는 것을 반복했다. 그러던 차 남편의 중국 파견은 어쩔 수 없는 도전을 선택 하게 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첫째 29개월 둘째가 백일 무렵이었는데 남편 혼자 중국으로 파견을 가게 되었으니 대책 마련이 필요했다. 1년 동안 친정에 가있는 건 어떠냐고 남편이 물었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여겨졌다. 유일한 방법 같았다. 친정이 광주라서 멀긴 했지만 무엇보다 안전하고, 내가 덜 힘들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미 머릿속으로 우리 짐 중에 어떤 것을 가지고 가야하나... 아이들 책은 너무 많고 무거운데 어쩌지? 그렇다고 책 보여주는 걸 포기할수도 없고... 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친정집이 주택이라 아이들이 오래 지내기에 환경이 안좋다고 친정 엄마가 걱정을 했다. 남편은 집 근처에 투룸 이라도 구하는게 어떻냐고 했다. 남편 입장에서 최선의 시나리오 였을 거다. 한동안 그 문제로 고민을 했다. 지나고 보니 별일 아니었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인생 최대의 위기였다. 답도 없는 고민을 끝도 없이 하다 보니 두통이 왔다. 무엇이 문제일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천천히 다시 생각해 보았다. 광주로 간다고 한들 결국 두 아이를 책임져야하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애들은 여전히 나를 찾을 테고, 천안에서 10년을 넘게 살았는데 우리 짐이 다 여기 있으니 아무래도 광주생활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가 걱정하는 것 눈치 보지 않아도 되니 천안에 있는게 마음은 훨씬 편할 것은 확실했다. 천안에 있든, 광주에 있든 어차피 내가 내 아이들을 돌보고 책임지는 ‘엄마’ 라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그리고 남편에게 이야기 했다. “여보, 그냥 천안에서 셋이 지낼게!” 남편은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겠어???”어디서 갑자기 자신감이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또박또박 이야기 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그러니 여보도 그 시간 충분히 즐기다 오라고. 절대 후회 남지 않게 미련 없이 즐기다 오고 돌아와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이야기 했다. 그렇게 이야기 할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내가 두 아이를 혼자서 책임지고 천안에 남겠다고 결심한 것이 내 삶에 스스로 한 도전의 시작이었다.


학창시절 어중간한 성적은 어중간한 나의 성격을 더욱 어중간하게 만들었다. 성적이 더 떨어질까 전전긍긍하며 순간의 목표는 있었지만 성적이 떨어지지 않기 위한 하루살이 공부를 했다. 남편이 중국에 가면서 어린 두 아이와 나만 남겨지게 된 상황은 (훨씬 더 힘든 상황에 놓인 사람도 많지만) 온실 속 화초 같던 나에게‘바닥’이었다. 지금까지 평탄했던 인생의 최대 위기 상황이었다. 내려갈게 없다고 여겨지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어쨌든 내가 한 선택이었고, 못해도 본전이었다. 내가 한 선택 하나로 나도 모르게 지난날 한참 떨어져있던 자존감이 한 단계씩 회복되고 있었다. 뭘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4년 12월부터 3개월 동안 주말부부로 지내다가 2015년 3월 출국을 했다. 처음 한 달은 내가 왜 혼자서 해본다고 했을까? 생각이 들만큼 힘들고 외로울 때도 있었다. 한달 반 정도 지나니 적응이 되었다. 남편과 공유를 위해 블로그에 육아일기를 쓰기 시작하고, 2015년 7월 7일 ‘독서천재가 된 홍대리’ 라는 책을 만났다. 제목은 많이 들었던 책인데 적절한 때를 기다리다가 짠~ 하고 나타난 것 처럼 정말 시시적절한 때에 만났고, 그렇게 책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2015년 하반기 50권 책 읽기에 도전을 했다. 결국 50권은 못 채웠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한 2006년부터 그때까지 읽었던 책보다 6개월간 읽은 책이 더 많을 것이다. 책의 매력에 정말 푹 빠졌다. 자투리 시간 스마트폰 대신 책을 읽고, 책을 읽기 위해 잠을 줄였다. 원래의 나는 넘치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일부러 아이들과 함께 일어났었다. 아이들과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어영부영 하다보면 오전 시간은 그냥 지나갔고, 오후 시간도 정신없이 더 잘 가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내가 책 읽을 시간을 내기 위해 잠을 줄이게 된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쌓여가는 생각을 풀어내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생겼고, 앞에서 몇 차례 언급한 온라인 100일 쓰기에 도전 했다. 2015년 8월24일 첫째날을 시작으로 12월1일에 마무리 했다. 읽기와 쓰기의 욕구가 남들보다 늦게 찾아온 만큼 속도가 빨랐다. 국어와 국사가 싫어서 이과를 선택한 나였기에 뭔가를 쓰고, 쓰기를 넘어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2015년, 남편이 없던 1년 사이에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2016년 11월 제대로 된 책쓰기를 시작하기까지 1년 3개월 동안 쓰기의 도전이 이어졌다. 뭔가를 꾸준하게 쓰고 싶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편하게 도전했던 온라인 100일 쓰기였다. 100일 완주는 나에게 성공 이상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100일을 마무리 하고나서 끌어당김의 법칙이었는지 함께 글쓰기를 했던 동기를 통해 인큐에서 주관하는 ‘마이북프로젝트’를 알게 되었다. 50일 동안 나를 돌아보는 글쓰기를 하고, 남은 50일은 자유로운 글을 써서 100일을 완성 시키는 것이다. 할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전에 ‘그래, 이거야!!!’라는 마음으로 카페에 가입하고 마이북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예전 같았으면 이걸 시작하면 끝낼 수 있을지? 달력을 보며 일정을 체크하고, 하루에 얼마만큼의 소요되는지 다른 사람들의 후기는 없는지 하나하나 체크하며 하지 못할 이유를 만들었을 것이다. 나도 놀랄 만큼 나 자신을 믿고 있었다. ‘해봐도 될까?' 가 아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00일 동안 마이북을 진행하는 일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검사하는 사람도 없었고, 내 글을 꾸준히 봐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마음이 헤이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몸이 편한 걸 선택하자니 마음이 너무나 불편했다. 하루 늦춘들 누구하나 뭐라 할 사람도 없었고, 눈치 챌 사람도 없었지만 단 한사람! 내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끝까지 완주하게 했다. 마이북을 진행하고 확실해 진 것은 내가 평생 글을 쓰며 살 것이라는 것이었다. 잘 쓰지는 못하지만 글을 쓸 때 가장 나다움을 느끼고 힘들어도 나 자신에게 온전히 몰입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200일을 완주한 성공과 함께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게된 굉장한 수확이었다. 2015년 12월 3일부터 2016년 3월 14일 까지 100일 더해 200일이 되었다. 그 즈음 되니 매일 무언가를 쓰지 않고서는 허전했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나탈리 골드버그
글쓰기 훈련은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해 마음을 지속적으로 열어 나가게 하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와 스스로에 대해 믿음을 키워 나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옳았을 때만 좋은 글을 얻을 수 있다.
일단 글쓰기에 빠지게 되면, 왜 그토록 오랜 시간을 방황하고 이제야 책상 앞에 앉게 되었는지 의아해질지도 모른다. 글쓰기도 훈련을 통해서만 실력을 쌓을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깊은 자아를 믿게 되면, 이제 그곳에는 글쓰기를 두려워하라는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설 자리가 없어진다.
지금 당장 자리에 앉으라. 지금 당신의 마음이 달려가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그대로 적어 내려가라. 제발 어떤 기준에 의해 글을 조절하지는 말라. 무엇이 다가오더라도 지금 이 순간의 것을 잡아라. 손을 멈추지 말고 계속 쓰기만 하라.


글쓰기 습관을 위한 100일 글쓰기 도전으로 나의 글 쓰는 인생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눈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글쓰기 이다. 아무 생각없이 일단 일어나서 노트를 펴고 의식의 흐름대로 적는다. 졸리면 졸립다고 적는다. 왜 이 시간에 힘들게 글을 쓰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면 그 의문을 적고 답을 적어내려간다. 그 다음 물을 한잔 마시고, 목적이 있는 글쓰기를 한다. 요즘은 매일 책 집필을 위한 글쓰기와 일주일에 한번 [마인드스쿨] 카페에 일주일에 한번 글을 올린다. 매일 새벽 3시간 반 글쓰기를 하고난 후에야 진짜 내가 나임이 느껴진다.


마이북 프로젝트 도전 이후로도 쓰기의 도전은 계속 되었다. 마이북 프로젝트 마지막 날인 3월 14일부터 [뜨겁게 나를 응원한다] 필사 100일을 시작하여 완주했고, 2016년 5월 15일 부터는 위에 언급한 마인드 스쿨 카페에 일주일에 한번 글을 올리고 있다.


<<어둠의 딸, 태양 앞에 서다>> ,조성희
세상은 내가 생각만 하는 것에 대해서는 보상해주지 않는다. 생각과 함께 행동하는 것에 대해서만 보상해줄 뿐이다. 이처럼 단순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인데도 너무나 많은 사람이 정작 행동을 취해야 할 바로 그 순간에도 분석하고 계획을 세우느라 꼼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행동을 취함으로써 당신은 어떻게 하면 더 낫고, 더 효율적이고, 더 빠르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피드백을 얻기 시작할 것이다. 이전에는 애매모호하게 보이던 것들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더 선명해질 것이다. 여러분을 후원해주고 격려해줄 사람들을 끌어당기기 시작할 것이다. 일단 여러분이 행동하기 시작하면 모든 종류의 좋은 것이 여러분에게도 쇄도할 것이다.
자, 이제 명확한 목표를 설정했다면, 바로 지금 저질러야 할 때다.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나서 기회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망설임 없는 도전으로 기회들을 잡아갔다. 더 이상 새로운 도전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실패 속에서도 배울 점이 있다는 것, 실패가 없는 성공은 없다는 것, 실패로 더욱 단단해 질 수 있다는 것을 느끼며 ‘이거다!’ 싶은 것은 바로 도전하게 되었다.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다. 도전하며 성공을 하고 실패도 한다. 이 경험으로 인해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 지고 어제보다 나은 오늘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다. 지금 내가 원하는 것, 할 수 있는 것에 나를 노출시키자. 생각만으로 변하는 것은 단 한 가지도 없다. 오히려 지나친 생각으로 머리만 아플 뿐이다. 내가 행동하지 않는다면 우리 아이도 행동하지 않게 될것이 뻔하다. 행동하지 않는 엄마가 하는 말을 누가 진심으로 받아들일까?


바로 지금 도전하라!


도전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내가 선택하는 삶이 진정 나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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