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결핍'에서 시작된 '꿈'

'어린 나'가 바라본 엄마, 그리고 엄마가 된 '나' - ②

어릴 적 내가 바라고 원했던 엄마의 모습.

그리고... 지금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나의 모습.


두 번째 이야기...




나의 20대.

남들은 어렵게 들어간다는 S 기업에 아무런 생각 없이 운 좋게 들어갔던 것이 오히려 악(惡) 이 었다.

마른걸레의 물을 짜듯, 나의 온 에너지를 뽑아간 직장에서 성취감 zero, 미래 비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나에게 '임신' 은 지긋지긋한 내 삶에서 합리적으로 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희망'이었다.


'육아? 힘들어봤자... 회사보다 힘들겠어? 그래도 내 새끼인데... 직장보다 훨씬 낫겠지. 마음의 여유도 좀 생기고... 까짓것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니야?'


2012년 7월 22일 오후 5시 25분.

그렇게 엄마가 되었다.






따뜻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현명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대범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용기를 주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여하튼 우리 엄마와 다른 엄마가 되고 싶었다.

나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조리원에서 나오는 그 순간 진짜 육아가 시작되었다.

말 그대로 실. 전. 육. 아. 가 시작된 것이다.


내 아이만 이런 건가?

내가 뭘 잘못한 건가?


잠잘 시간이 되면 아이는 귀신같이 알아채고 울기 시작한다.

어르고 달래다가 화를 냈다가.. 내가 더 엉엉 울었다가 다시 정신 차렸다가 마음속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가 또 '엄마' 이기에 마음을 다잡았다가 반복의 하루였다. 끝이 없을 것 같은 그 막막함.

마치 내가 정신병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능하다면 다시 아이를 뱃속으로 집어넣고 싶었다.

아니,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절대 임신 같은 것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남편에게 이렇게 물었다.

"여보 지금 행복해? 나는... 지금 행복하지 않아. 임신했을 때가 훨씬 행복했던 것 같아... 너무 힘들다..."


나는 그렇게 엄마가 되어버렸지만 전쟁터에 나가는 줄도 모르고 대열에 낀 병사와 같은 아직 준비되지 않은 한 명의 '여자'였다.

누구나 그렇게 엄마가 된다는 사실.

우리 엄마도 그렇게 '여자'에서 어느 날 '엄마' 가 되었다는 사실을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런 나를 곁에서 지켜보던 엄마가 육아의 달인 고모에게 이야기를 했는지 어느 날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선진아, 괜찮아. 누구나 다 그래. 그러면서 엄마가 되는 거야.

아기는 원래 울면서 커.. 항상 해결해 주면 좋겠지만 다 그렇게 하지는 못해. 우니까 아기지. 울지 않으면 그게 애니??

애가 우는 것에 그렇게 신경을 곤두세우지 마. 너만 힘들다? 네가 힘들면 아기도 힘든 거야. 그냥 안아주고 어르고 달래는 수밖에 없어... 다 그렇게 키우는 거야. 네가 잘 못한 게 아니라 아이가 크는 과정일 뿐이야... 조금만 더 커봐라. 얼마나 이쁜 짓을 하는지... 지금 후회하고 있는 걸 후회할걸? 지금 충분히 잘 해가고 있어."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렇게 요동치던 내 마음이 순간 잔잔해졌다.

무거운 돌 덩어리 하나가 툭 하고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한결 가벼워졌다.


어릴 적부터 '좋은 엄마가 되어야지'라는 생각이 무의식에 뿌리내려 있었기에

나는 처음부터 '좋은 엄마, 완벽한 엄마' 가 되고 싶었나보다.


신생아에게 좋은 엄마란 아이를 울리지 않고 늘 편하게 해 주는 엄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아이가 우는 것을 달래주지 못한 나 자신의 모습이 나를 더욱 힘들게했다.


'그래... 내가 무슨 천재도 아니고 처음 해보는 엄마 노릇인데 힘든 게 당연한 거지...'

'자궁 속에서 40주 동안 편히 헤엄치다가 나온 아이가 세상에 나와서 적응하느라 저도 얼마나 힘들까?'

'나는 지금 잘 하고 있는 거야. 나만 힘든 게 아니라 당연히 힘든 거야.. 하루아침에 엄마가 되었는데 서로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한 거지...'

'아가야... 우리 잘 지내보자. 엄마가 더 노력할게...'


밉고, 원망스러웠던 아기가 순간 안쓰럽고 애처롭게 느껴졌다.

그냥 그렇게 우는 아이를 부둥켜안고 눈으로 가슴으로 울었다.


그리고, 달라진 것 하나 없이 아이는 여느 때처럼 울고불고했지만 나는 조금씩 엄마가 되어갔다.

그러면서 아이도 그렇게 세상에 조금씩 적응을 해 나갔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고모의 이 말은 둘째를 낳고 나서야 100% 이해했다.

이래서 둘째는 거저 키운다는 말이 나오나 보다.






'엄마' 가 되었음을 머리와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내 곁에서 함께 몸조리를 해주는 '엄마'를 '어린 나' 가 아닌 한 아이 '엄마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우리 엄마.

아빠와 오랜 연애 끝에 1983년, 엄마 나이 24살에 혼전 임신으로 결혼을 한 엄마.

아빠의 강원도 강릉 발령으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나만 바라보며 나를 키웠던 엄마.

제대로 된 직장 생활 한번 해보지 못하고 오로지 남편 내조와 자식 뒷바라지를 했던 엄마.


'그러고 보니 우리 엄마도 참...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살아보지 못했구나...'

'엄마에게는 아빠가, 그리고 내가 엄마의 전부였겠네...'

'엄마도 힘들 때 누군가에게 힘을 얻었더라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더라면 나에게 집착하지 않고 엄마의 인생을 좀 더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타지에서 혼자서 많이 외롭고 힘들었을 텐데 지금까지 잘 버텼네... 그리고 이렇게 나를 잘 키워냈구나...'


'엄마'는 언제나 어른이고 강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도 '여자'였고, 지금의 나처럼 처음으로 해보는 '엄마 역할'에 많이 헤맸을 거라 생각하니 그간 엄마의 모든 것들이 이해가 되었다.

지금까지 미움과 원망의 감정을 갖고 있었던 것에 대해 미안했고, 이렇게 잘 키워준 것 만으로도 감사했다.


엄마도 어떻게 하는 것이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인지, 아이를 진정으로 위한 것인지 몰랐던 것이다.

엄마도 그 당시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나도, 엄마도 처음에 보는 '엄마'역할에 최선을 다하려는 그 마음은 늘 같다.


엄마와 나 사이에 쌓아두었던 벽을 나 스스로 그렇게 허물며 엄마를 용서했다.


'육아' 만큼,

내 뜻대로 안 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할 때 더욱 멀어지는 게 '육아'다.

내려놓는 만큼 내 마음이 편해지고, 딱 그만큼 육아도 편해진다.


엄마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어린 나' 가 늘 엄마에게 바라왔던 것.

엄마의 따뜻한 사랑, 신뢰를 받지 못했다는 '결핍'이 있었기에 '좋은 엄마가 될 것이라는 꿈'이 생겼다.


엄마가 되고 나서야 그것들이 사랑을 표현하는 엄마만의 최선의 방법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제는 엄마가 된 내가 생각하는 '좋은 엄마' , '건강한 사랑' 이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을 했다.


그렇게 지금 나의 꿈은 '어린 나'의 결핍에서 시작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1.'어린 나'의 결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