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퐁.당.육.아

마인드 파워 육아 시크릿 (신념) - 나만의 육아 철학! 을 끝까지 믿

#. 나의 육아 철학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여기며 아이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


마음이 따뜻하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아이.

도전정신이 투철하고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는 아이.


이런 아이로 키우기 위해 내가 먼저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육아에 대한 나만의 철학이 생기고,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기를 선택하니 육아가 한결 편해졌다.

나의 철학을 100%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지만 나만의 리듬이 생기고 아이도 나도 서로에게 적응을 해갔다. 딱 좋을 때 즈음, '적응다 했니? 그럼 이제 회사로 돌아오렴~' 이야기하듯 복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복직하지 말까? 육아에 전념할까?'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 당시 특별한 '나의 꿈' 이 없었기에 물 흘러가듯 나의 자리로 돌아갔다.


아이를 두고 회사로 복직하는 엄마들은 모두 같은 마음일 것 같다.

나와 잘 떨어지는 아이를 보면서도 짠하고, 울고 불고 매달려도 짠하고...


'하아... 그냥 모든 것에 마음이 아프다.'

'대체 뭘 얼마나 더 벌겠다고 , 더 잘 살아보겠다고 고생을 하는 건지... '


'복직이냐, 퇴직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새로운 부서로 복직을 하고, 4개월 만에 둘째가 생겼다. 부서에 민폐인 건 사실이었지만 '새로운 생명' 두고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내 앞에선. 그렇게 복직을 하고 정확히 1년 근무한 뒤, 두 번째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그렇게 나는 두 아이의 엄마, 첫째는 25개월에 오빠가 되었다.




아이가 하나인 것과 둘 인 것은 2배가 아닌 10배 힘들다고 흔히 이야기한다. 나의 경험상 둘째가 돌 정도까지 조금 뻥튀기해서 10배 힘들었고, 어느 정도 크니 둘이라서 좋은 점이 훨씬 많았다.


첫째의 성격이 어릴 적 나를 꼭 빼닮았다. 숫기도 없고,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데 엄청 난 시간이 걸린다. 눈물도 많고 마음도 여리고 목소리도 작다. 때리면 맞고, 아프면 참는다. 돌 때부터 어린이집을 다녔고 큰 문제가 없었기에 어린이집 생활에 대한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마냥 잘 다니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 첫째가 36개월 (둘째 11개월) 무렵 유난히 어린이집 다니기를 힘들어했다. 매일 '월요병'처럼 잠자리에 들기를 두려워했다. 눈뜨면 어린이집에 가야 하는 게 싫다고 했다. 안 자려고 하는 아이를 재우는 것도 스트레스, 아침마다 깨우는 것도, 어린이집 버스 시간에 맞춰 나가는 것도, 울면서 어린이집 버스 타고 가는 아이를 보는 것도...... 물론 아이는 나보다 더 힘들었겠지만 아이의 마음을 생각하며 바라보는 내 마음도 찢어졌다.


'어떻게든 적응을 시키는 것이 맞느냐, 아이의 마음을 품어주는 게 맞느냐...?'

이번에는 이 것이 문제였다.


2015년 7월. 남편도 중국에 가서 없었던 때였다. 만약 어린이집을 그만두게 한다면 평일, 주말 관계없이 두 아이를 아빠 없이 내가 다 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도 문제였지만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자신에 대한 문제이기도 했다. 문제를 삼을 수록 모든 것이 문제인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빠른 결정이 필요했다. 결정을 해야 처방을 내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본질로 돌아가 '나의 육아 철학'을 써보았다.

그리고 나의 아이가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 모습을 상상했다.


#. 나의 육아 철학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여기며 아이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


#. 내가 바라는 아이의 미래

마음이 따뜻하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아이.
도전정신이 투철하고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는 아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런 아이로 키우기 위해 내가 먼저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음이 따뜻한 엄마, 아이를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엄마.

현실에 대한 두려움보다 도전하는 엄마,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는 엄마.


'어릴 적 나'와 같은 성향의 아이가 돌 때부터 어린이집을 다니느라 얼마나 애썼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을 하니 더 이상 고민이 필요 없었다. 정말 빠른 판단을 내렸다.


어린이집을 그만두게 하자 주위의 많은 우려의 말과 눈초리가 있었다.

'원래 애들이 다 힘들어하면서 다니는 건데... 그걸 극복해야지... 36개월인데.. 쯧쯧...'

'이렇데 다 들어주면 나중에 더 어려운 일은 어떻게 해쳐가려고 벌써 이래...'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닌 '해방' 된 '자유의 몸'이었기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하고 넘겼다.


2015년 8월.

퇴원 절차를 모두 밟고 9월부터 세 식구 그렇게 24시간 함께 뒹굴었다.

본격적으로 육.아.에.퐁.당 하는 퐁.당.육.아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에게 정해진 규칙은 없었다. 지쳐 쓰러져 잠들 만큼 실컷 놀고, 푹 잤다. 배가 고프면 먹고, 하루 종일 집 밖에 나가지 않은 날도 많았다. 그야말로 육아에 나를 맡겼다.


그러자 주변에서 먼저 느낄 정도로 승윤이는 변화했다.

목소리도 커지고, 웃음도 더 많아졌다. 여전히 때리면 맞고, 아픈 건 잘 참는 아이지만 할 말은 반드시 한다.


내 인생에 가장 잘~ 한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선택이었다.


이것이 지금 내가 5살 승윤이(51개월), 3살 승연이(25개월)와 아직도! 여전히!

함께 집에서 뒹구는 이유다.




육아를 하다 보면 아이의 성향, 나의 상황, 주변의 여러 상황에 따라 예기치 못한 일들이 생기고, 여러 선택 중 최선의 것을 따른다 해도 만족보다는 후회가 남는다. 나보다는 잘 살기를 바라는 '내 자식'에 관한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누구보다 나의 철학, 나의 내면의 소리를 따라 가자.

그것이 가장 후외없는, 만족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고 내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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