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내편♡
어제 아침 남편의 한 마디가 나의 굿모닝을 빼앗아 갔다. "빨리줘, 먹고 가게." 영 듣기 좋지 않았다. '그렇게 급하면 더 일찍 일어나던지... 아님 자기가 챙겨서 먹지. 아침부터 기분 나쁘게...' 생각하며 한 번 째리고 나름 빨리 챙겨줬다. 아! 다행이 아침밥도 주는 회사에 다니기 때문에 아침마다 챙겨주는 것은 약, 꿀, 물 이다. 그런데 내가 얼마나 늦었다고 재촉하는 것이었다. 웃긴 게 기껏 빨리 차려줬더니 천천히 먹는 것이다. "얼른 먹어! 급하다며." 남편도 내 말에 기분이 좋지 않았겠지... 서로의 기분에 상처를 내고 하루를 시작했다. 그렇게 남편을 보내고 났는데 마음이 너무 불편한 거다. 고민고민 하다가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여보야... 회사 잘 도착했지? 아침에 여보 한마디에 기분이 확 나빠졌네...-_- 아직도 멀었다... 그지? 출근하는 여보 에게 짜증부린 것 같아서 미안해.. 혹시 마음 상했다면 풀고 좋은 하루 시작해요. 나도 아직은 꽁... 한 것 같은데 여보가 답글 주면 풀릴 것 같아. 하하> 5분 후 답장이 왔다 .<회사 잘 도착했어.. 밖에 비 오더만.. 기분좋게 하루 시작하자.> 귀여운 이모티 콘과 함께 온 메시지를 보며 기분이 더 안 좋아졌다. <흠..... 이게 다야?ㅋㅋㅋ> <응? 뭘 더..> <아니야...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거지 뭐..그냥 아까 아침에 나도 마음이 급해서 그렇게 이야기 한 것 같다.. 미안. 이 정도? 바랬던 건데.. 그렇게 생각이 안들었나보지 뭐... 회사 잘 도착해서 다행이고, 밖에 비오는거 알려줘서 고마워. 오늘 집콕 해야겠다. 기분 좋게하루 시작할게요.> 그리고 1분 후, 남편의 메시지... <여보야..내가 그냥 요즘 힘이 없다..> 응?? 예상했던문자가 아닌데? 언제나 늘 그렇듯... 예상하지 못한 일을 마주하면 당황하게 되고 요동치던 감정은 오히려 차분해 진다. 남편의 한 마디에 짜증이 났고, 또 문자 때문에 소중한 새벽시간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한 것 같아 짜증이 점점 오르고 있었는데 남편의 문자하나에 뒤통수를 맞은 것 마냥 멍 했다. <나 때문에 그런거야?> <요즘 힘이 없어서 여보한테 말 이쁘게못하는거 같아. 그냥 그러려니 해 줘라> 몇 차례의 메시지를 더 주고 받았다. 결론은 남편이 뭔가 힘이 드는데 정확히 원인은 모르고, 나도 그 안에 포함이 되어있는데 정리가 되고, 몸이 좀 괜찮아지면이야기 하겠다는 것이다. 10분 후, <여보 나름대로정리하고 있는 과정이었는데 내가 방해를 했던 거 같아. 정리되면, 괜찮아지면 이야기 해줘. 오늘 하루 시작은 이랬지만... 액댐이라 생각하지 뭐.. 차근차근 이야기해줘서 고마워요.> 나도 더 이상 감정을 잡아 놓지 않고 풀기로 마음먹었다. 꽁 해봤자 나만 손해니......
생각해 보니 처음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도 나 편하자고 보낸 문자였다. 내마음 편하자고... 평소에 절대 그렇게 이야기 할 남편이 아닌데...평소와 다른 모습이었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힘이 드는지... 그의 마음을 살피는 게 먼저였다. 그런데 '여보 한마디에 기분이 확 나빠졌네...' 라니... 서로 기분을 다시 풀어보고자 보낸 메시지였는데 다시 읽어보니 '여보때문에 내가 기분이 나빠졌으니 남편 잘못' 이라는 이야기가 된 것이다. 처음엔 남편에게 받은 답장이 너무 성의 없어 짜증이 났는데 남편 입장에서 최대한 좋게 보내려고 노력했다는 게 느껴졌다. 나는 나름대로 마인드와 심리도 조금 공부 하고 있었기에 늘 내가 더 노력을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더 감정 처리도 잘 하고 남편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있다고 여겼는데......아니었다. 남편은 때론 말을 툭툭 내뱉기는 하지만 나보다 훨씬 감정처리를 잘하고 있었다. 배우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2006년, 같은 부서로배치 받은 입사 동기로 만났고 서로 친하게 지내다가 2009년 9월 연애를 시작했다. 3년 6개월을 알고 지내다가 시작한 연애였기 때문에 서로 알만큼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웬걸?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다. 하루라도 안 싸우고 넘어가면 허전할 정도였으니...-_-그 당시 회사도 참 힘들었는데 남편 때문에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결혼을 하고애 낳고 잘 살고 있는 걸 보면 인연은 인연이구나 싶다. 2년 연애를 하고 2011년 9월 결혼을 했다. 연애기간 중 1년을 그렇게 피를 튀겨가며 싸웠다. 대부분의 커플들이 그렇듯이 우리도 정말 사소한 거, 유치한 걸로 시작된 싸움이 산으로 갔다 강으로 갔다 바다로 갔다.... 매일이 전쟁이었다. 그런데 1년 정도가 지나고 나니 이제 더 이상 싸울게 없었다. 1년 간 그렇게 전쟁을 치뤘으니더 이상 싸울 거리도 없었다. 서로에 대해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싸워봤자 귀여운 정도 였다. 예전에 비하면 말이다.
남편의 문자를 받고 곰곰 생각해 보니 남편이 지난 일요일 저녁부터 힘이 없어 보였던 것 같다. 지난 주말은 토요일에 이은대 작가님 글쓰기 수업이 있었고, 일요일에는 어땡쇼가 있었다. 둘 다 서울에서 진행되었기에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어땡쇼는 두 달에 걸쳐 준비해왔던 거였기 때문에 잘 해내야만 했던 것이었다. 나를 배려해주고자 남편은 두 아이를 데리고 1박2일친정에 다녀왔다. 워낙 우리 부모님과도 잘 지내는 남편이라서 걱정하지 않았지만 나 없이 1박2일이 쉽지 않았을테고, 두 아이와 짐을 가지고 왕복 KTX를 타고 이동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토요일에는 해남에 있는 공룡박물관에도 다녀왔단다. 일요일 저녁 10시가 되어서야 가족 상봉을 했는데 그 때는 나도 모든 일정을 마친 후였기 때문에 반갑고, 고맙고, 미안했지만 나 또한 긴장이 풀린 상태라 힘이 없었다. 남편에게 고생했다고, 고맙다고 이야기는 했던 것 같은데 서로의 대화가충분치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나에게 힘들다고 대놓고 이야기 못했던 이유는 아마도 2015년 1년 3개월 동안 중국에 다녀왔던 것 때문일 것이다. 그 기간 동안 남편은 해외에 있었고, 나 혼자서 지금보다 더 어렸던 두 아이를 돌봐야 했었으니까... 차마 나에게 이야기 못하는 거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거라고, 힘들었지만 감사한 시간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리고 그건 사실이지만 솔직히 정말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남편이 애들 보느라 힘들었다고 나에게 툴툴댔다면 "그랬쪄?? 그랬구나~" 하며 토닥토닥은 하겠지만 내가 힘들었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가며 "그러니까 나는 작년에 얼마나 힘들었겠어~"라고 내뱉어 버렸을지도...... 힘들다고 힘들었다고...편히 이야기 하지 못하는 남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니 참 답답할 것 같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혼자서 이해하려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남편이... 물론 이 것 또한 남편의 생각이 아닌 내 생각일 뿐이다.
어제 하루 평소보다 더 남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았다. 아이들이 일어나고 공유할 만한 사진이 있으면 그때그때 공유해 주고 아침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소와 같이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야근을 하고 9시 반이 되어 집에 왔는데, 평소 같았으면 밥은 차려주지 않았을 텐데 낮에 우리가 맛있게 먹은 치킨마요덮밥을 미니 사이즈로 해주었다. 아무래도 배가 불러야 사람이 여유가 생기는 법이니까. 남편은 딱 좋은 체형인데도 몸에 신경을 많이 쓴다. 그렇다고 근육을 만들기 위해 운동을 하는 건 아니지만 살이찌는걸 싫어해서 체중 조절에 신경을 많이 쓴다. 그래서 야근 할 때도 밥을 먹지 않고 일을 하고 집에 와서도 늦은 시간이라고 잘 안 먹는다. 근데 그러면 더 힘이 없는 것 같다. 어제 기분 좋게 늦은 저녁을 먹이고 아이들과 함께 몸놀이도 하고, 책도 읽고 평소와 다름 없는 저녁시간을 보냈다. 아침에 기분 안좋았던 것에 대해 더 이상 서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느꼈다. 더 이상 이야기 할 필요가 없음을... 이 것 또한 그냥 하나의 과정일 뿐이고, 다 지나가는 것임을... 이야기를 해서 풀어야 하는 게 있고, 이렇게 넘어가는 것도 있는 것임을... 말이다. 남편에게 조금 더 정성을 쏟으니 그 마음을 느낀 것 같다. 남편이배려해 주는 것을 작년의 보상으로 생각하며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이 있다면 이런 거다. '여유' , '내려놓음' , '이해'.
답을 꼭 찾아야만 그게 답이 아니라 그냥 두는 것도 괜찮다. 그냥두는 것이 답일 수도 있다. 힘들게 시작했던 어제 아침이었지만 하루의 마무리는 꽤 훈훈했다. 앞으로는 어제보다는 더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또 이렇게 마음이 커가는 거구나...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