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일][11월22일]눈물이 많았던 아이

감정이......

나는 참 눈물이 많은 아이였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낯가림이 심했고, 집에서는 엄마 밖에 몰랐고, 겨우 다녔던 유치원 에서는 담임 선생님밖에 모르던 아이였다. 뭐가 그렇게 불안했을까? 감정을 다루는데 있어서 매우 서툴었던 것 같다. 혼날 때, 동생하고 싸울때, 다쳤을 때, 억울 할 때, 짜증날 때, 내 마음대로 안될 때... 한 마디 말보다도 눈물이 앞섰다. 말을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눈물이 먼저 나면 가슴이 먹먹해 지면서 목이 메여오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또 그게 답답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할아버지가 선진이는 그만 울면 다 큰 거라고 이야기 하셨다고 한다. 가끔 만나는 할아버지가 그렇게 말을 할 정도면 말 다했지 뭐..." 울지 말고 말을 해. 왜 이렇게 울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너무 억울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울고 싶어서 우나? 나도 울기 싫지...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거라면 나도 절대 울지않을 거다.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냥 착실했던 나는 대학교 4학년 2학기에 삼성 SDS 에 취업을 했고, 졸업식과 동시에 합숙훈련에 들어갔다. 생일이 빨라서 7살 때 입학을 했으니 최종 합격했을 때 나이가 22살 이었고, 23살에 입사를 한 것이다. 겉 모습은 다 큰 성인이었지만 내면은 아직 덜 성장했던 그 때가 새록새록하다. '울지 말자! 잘할 수 있어!' 얼마나 많은 다짐을 했는지 모른다. 서울에서 교육을 마치고 천안으로 배치를 받았다. 새로운 출발! 나에게는기존의 이미지를 벗고 새롭게 태어날 기회였다. 그런데 감정은 아무리 여러번 외쳐도 다짐만으로 되지 않는다는것을 알았다. 부서배치를 받은 첫날부터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없어졌지만) 삼성에는 1년에 한번 크게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하계수련대회라는 큰행사를 한다. 모든 계열사의 신입사원이 모여 '으쌰으쌰' 하는 행사다. 어렸을 때부터 늘 잿밥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이번에도 행사 TF 로 지원을 했고, 응원단으로 뽑혔다. 나도 몰랐지만 배치 받은 부서의 부서장이 나를 탐탁치 않게 여겼던 것인데 내가 인사하러 간 첫날 예뻐보였을리가없지... 인사를 갔는데 한 테이블에 부서장님, 파트장님 두분이 앉아 계셨고 내가 앉았다. "1분 줄테니 자기소개 한번 해봐." 당황했다. 하지만 이 곳은 직장이니까... 첫 질문에 마음을 굳게 먹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신입사원 박..." "야~ 너 이름이 박.선.진. 이라는 건 여기 앉아있는 사람 다 알거든? 주어진 시간이 1분인데 그것부터 말하고 있냐? 다시 해봐" 그 다음에 내가 뭐라고 대답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뭐라고 이야기 한 것 같긴 하다. 그런데 내가 뭐라고 이야기 했는지 보다 나를 보고 계셨던 분들의 표정이 더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력서를 쭉 훑어보며 "지방대에... 토익 점수도 요즘 애들 똑똑해서 엄청 높던데 별로고... 혹시 아버지가 삼성다니셔?" "아니요......" "그럼 친척 어른 중에 삼성 다니시나?" "아닌데요...." 점점 기분이 나빴다. 이 상황도 기분이 더러웠지만 앞으로 이분들과 지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막막했다. 아무리 신입사원이라지만 나는 자존심도 없나? 갈수록 나는 나의 마음을 꽉 움켜 쥐었다... '울면 안돼.. 절대...절대..........'"앞으로 어떻게 일할꺼야? 어떤 마음가짐으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겠....." "난 열심히 한단 애들 다 싫더라..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잘해야지." 그래... 여기까지 잘 참아왔다.


지나가던 다른 파트장님이 이 상황을 지켜보시며 툭 한마디 던지셨다."에이~ 살살해요. 오늘 처음 타지에왔는데 얼마나 힘들겠어요~ 살살해~~" 너무나 고마웠다. 그런데 지금까지 정말 잘 참아왔던 나는 그 한마디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참아왔던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또 가슴이 쥐어짜듯이 아팠고, 목이 메였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만큼이나 앞에 계신분들도 당황했다. 나중에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부서장님스타일이 원래 그렇다는 것을... 내가 TF로 착출 될 예정인 신입사원이라 마음에 안들어 좀 더 심했던 것도 있지만 원래 말투가 그런 분이셨다. 정말 친한 사람에게는 욕으로 애정표현을 하시는...... 나중에는 그 분과 참 많이 친해졌다. 우리가 만났던 첫날이 너무나 강력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치욕스러웠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지나고 보니 추억이 되었다. 그건 한참 후의 일이고, 아무튼 나는 직장에서까지 '울보' 라는 타이틀을 달고 살았다. '제조' 쪽 으로 업무를 배정받아 함께 일하는 동료분들 그리고 현업도 죄다 남자였다. 23살의 어린 여자아이라고 배려를 많이 해주셨는데 (이것도 지나고 보니 그랬던 것을 느꼈다) 나는 늘 힘들었다. 가슴이 울던지, 눈이 울던지......늘 눈물바다였다.


내 생각에는 엄마가 되고 나서야 좀 나아졌던 것 같다. 어느 순간 '내가 마지막으로 운 게 언제였지?' 생각하는데 그 마지막이 기억이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선진이가 이제 어른이 됐다고 했을 텐데... 할아버지의 기억 속엔 나는 그냥 울보 선진이 였다. 마지막까지도. 난 왜 그렇게 울었을까? 뭐가 그렇게 억울했을까? 왜 자꾸 눈물이 먼저 흘렀을까... 늘 눈물을 탓했다. 의지와 상관없이 아무리 노력해도 조절이 안되는 눈물 때문에... 라고 이야기 했다. 감정이 풍부했던 거라고 이야기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감정 조절을 못했던 것 같다. 감정 조절을 못한다는 이야기는 내 감정을 제대로 보살펴 준 적이 없다는 뜻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내 감정을 보살펴 준다는 거지? 누구 하나 가르쳐주지 않았다. 아마 이런 건 부모님이 나를 먹이고 입히고 재워주면서 몸이 잘 자라는 것처럼 그래서 내가 따로 배우지 않아도 알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자라는 것도 마찬가지 이지 않을까? 누가 가르쳐 주는게 아니라 감정도 보살핌 받으면서 마음이 잘 자라면 그 경험으로 나 스스로 감정을 보살피고, 또 타인의 감정도 보살필 수 있게 되는게 아닐까?


'울지마' '울면 바보야' '왜울어' '언니가 되가지고...' 울 때마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왜 우는지? 마음이 왜 아픈지... 억울한지, 속상한지, 화가 나는지...... 그런 나의 감정을 다독여 줬어야 했는데... 나의 감정은 어렸을 적부터 인정받고, 치유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 '속상했겠네...' '억울했겠네...' '화가 많이 났겠네...' 라고 이야기 해줬다면 일단 이해를 받은 나의 마음은 편해졌을거다. 그랬으면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을텐데... 늘 울고 있는 나 스스로 에게도 다독여 주기 보다 '울면 안돼!' 라고 강하게 이야기 해왔던 것이다. '얼마나 내 마음이 힘들었을지......'부모 교육과 현실치료를 공부하고, 마인드에 대한 공부를 하며 마음의 원리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정말 거짓말처럼 눈물이 앞서는 일은 없다. 감정이 메말라서가 아니라 감정을 제대로 읽어주기 때문이다. 눈물이 흐른다는 것은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지 않고 무시하기 때문에 억울하고 답답해서 나오는 현상이다.


신기하다. 오늘 뭘 쓸까? 하다가 '눈물이 많았던 나' 에 대해 써야지! 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내가 왜!? 부모교육(PET) 과 현실치료(RT/CT), 마인드에 그토록 매력을 느꼈는지 앞으로 나의 남은 인생을 그 것에 미쳐보려 하는지에 대해 깨닫게 된다. 내면이 약했던 나를 변화하게한 것, 탄탄한 내면을 쌓고 그로 인해 삶의 많은 부분이 변화되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 것에 대해 알았으면 좋겠다. 특히, 육아를 하는 엄마들의 내면,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엄마들을 대상으로 힘을 주고 그녀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도움을주고 싶다.


(이렇게 쓰다 보니 정리가 되는구나...글쓰기의 참 매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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