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일][11월24일]엄마가 글을 써야하는 이유

글쓰기는 모두를 살리는 일이다.

매일 아침 이은대 작가님이 내주신 글쓰기 숙제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이 4일째다. 은대 작가님 글쓰기 수업은 서울에서 총 3주간 진행되는데 지난주 토요일이 첫 번째 시간이었다. 첫 주 글쓰기 숙제는 나의 이야기를 아무런 형식, 제약 없이 일단 쓰는 것이다. 매일 꾸준히 쓴다는 것이 포인트다. 감사 일기든, 어땡이든, 100일 글쓰기든 나는 원래 매일 뭔가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 부분은 자신이 있었다. 양이 작았으면 작았지 숙제 제출을 안 할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수업을 듣는 내내 믿음과 확신을 주는 작가님 덕분에 마음이 든든했다. 그냥 나는 글만 쓰면 내 이야기만 쭉쭉 쓰다 보면 책이 완성될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염려도 되었다. 하나의 메세지를 250페이지 되는 분량의 책에 나의 이야기로 다 채울 수 있을지 말이다. 이 부분도 작가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실제로 수업 중에는 전혀 걱정 되지 않았다. 그런데 숙제를 시작하면서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아직 명확한 주제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내가 과연 오로지 나의 이야기로 책 한 권 분량을 채울 수 있을까?


참 신기한 것은 일단 쓰기 시작하면 어떻게든 이어진다는 거다. 그리고 다 써놓고 다시 읽어보며 놀랄 때도 있다. '이거 진짜 내가 쓴 거 맞아?' 내가 모르던 나를 글을 통해 발견 했을 때, 그리고 생각보다 글이 잘 써졌을 때이다. 문제는 어떤 이야기로 글 쓰기를 시작하는가 이다. 어떤 날은 쓰는 것 자체가 너무 재미있고, 타자의 속도보다 머리 속 생각이 더 빠를 때가 있다. 손가락이 춤추 듯 키보드 위에서 움직인다. 즐겁다. 어느새 목표했던 분량이 넘어선다. 간혹 그런 날이 있다. 하지만 어떤 날은 영 속도가 안 나는 날이 있다. 첫째 날과 둘째 날 숙제를 제출하고 나니 작가님은 너무 이쁘게 쓰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며 그냥 넋두리를 한다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말하듯 쓰라고 하셨다. 단체메일이었기 때문에 나를 두고 한 이야기는 아닐 수 있으나 찔렸다.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수업시간에 배운 것을 적용해 보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토지를 쓸 실력이나 짬밥이 되지 않는데, 흉내 내보려고 노력한 것과 같다. 그런데 나는 평소 글을 쓸 때 성장일지, 감사일기, 육아일기, 서평 같은 개인적인 글이 대부분이지만 블로그나 브런치같은 다른 사람이 언제든 볼 수 있는 공간에 올리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쁘게 쓰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비속어까지는 아니지만 술술 느낌 대로 썼다가 읽는 사람 입장을 고려하며 다시 수정하기도 한다. 글을 좀 더 완성시키고 싶은 마음이지만 같은 의미로 '잘 썼다' 고 보여지고 싶기도 하다. 만약 내가 개인 노트에 혼자 쓰는 글이라면 정말 넋두리 하듯 자연스럽게 말하듯 내 생각이나 감정을 써내려 갔을 텐데 말이다.


특히, 지난 10월 나의 글로 누군가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더욱 그랬던 것 같다. 평소 나의 일상을 감사하며 쓴 감사일기를 보고 죽고 싶을 만큼 힘이 든다는 것이다.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 감사일기를 서로이웃으로 제한을 두는 것이었다. 글도 글이지만 나라는 사람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어떠한 글을 쓰고, 어떤 노력을 해도 소용없는 거라는 것을 알기에... 적어도 '서로이웃' 이라면 나를 좋게 보는 사람일테지... 생각이 들어 내린 조치였다. 많은 사람들과 감사일기를 공유하며 내 글로 인해 긍정의 에너지를 얻고 그들의 삶에도 감사가 가득하기를 바라던 마음이 전부였다. 감사일기를 쓰면서는 정말 늘 진심이었다.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실제로 감사한 일들이 많이 생겼고, 누군가 내 글을 읽는다면 그 사람도 감사로 가득한 하루가 되기를 바랬다. 그마음 뿐이었는데...... 모든 일이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욕심을 버렸다.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 것 또한 욕심이었음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올리기 전 최소 두 번은 다시 읽어 보는 습관이 몸에 베어있었다. 내가 의도한 대로 의미가 잘 전달되는 것 같은지 검토하는 것이다. 작가님이 첫 수업시간에 그랬다. 모든 사람이 나의 글을 좋아할 수는 없다고.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첫 책을 내고 어마어마한 안 좋은 말들을 들었었다고. 하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독자의 입장에서 해석하여 의미를 찾고 그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힘을 줄 수 있다면 그래서 변화할 수 있다면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단 한 사람이라도 말이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메시지가 잘 전달 되도록 나의 글을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고 100번을 고쳐도 내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10명의 사람이 다 다른 사연을 안고 살아가기 때문에 내 글은 10가지로 해석이 될 것이다. 그 중에 어떤 글은 많은 사람이, 때로 어떤 글은 정말 단 한 명만이 나의 글에서 에너지를 받아갈 수도 있겠지... 그 것은 내 영역이 아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컨트롤 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내가 쓴 글을 예쁘게 포장할 시간에 나의 이야기를 하나 더 쓰는 편이 효율적이다. 글을 쓰는 내 마음도 편할테고... 말이다. 글쓰기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왜 쓰는지... 누구를 위해 쓰는지... 말이다. 결국 나를 위해 쓰는 것이다.


글쓰기는 힘들고 어렵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특히 글을 쓸 필요가 없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전업주부라면? 글을 쓸 기회도 없고, 여유도 없다. 애 키우고, 집안일 하기도 바쁜데 글을 쓴다고 하면 팔자 좋다고 할 것이다. 간혹 그냥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라도 어떻게 써야 할지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막막하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어느 순간 쓰기는 '나' 가 되어 버렸다. 남편이 없었던 시간을 잘 버티게 해준 것도 생각해 보면 글쓰기 덕분이다. 아이들과의 일상을 매번 통화로 공유하기 힘들어 육아일기로 매일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책을 읽고 쓰는 서평으로 또 내가 중심이 되는 성장일지로 이어졌다. 나중에는 나를 찾아가는 '마이북'이라는 글쓰기를 100일 동안 하기도 했다. 그리고 글쓰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아이들이 중심이 되는 육아일기를 쓰면서도 나는 나의 생각이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A 라는 고약하고 힘든 일이었는데 지나고 나서 내 생각을 정리하니 B 라는 일로 재해석이 되었다. 그러면서 고약한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 배우기도 하고 그 안에서 감사함이 찾아지기도 했다. 만약 쓰지 않았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글쓰기에서 그랬다. 쓰면서 아이에게 분노했던 나를 이해했다. 사건 당시에는 아이에게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쓰고 보니 아이가 아닌 다른 것에 내가 분노했던 것이다. 그 것들이 정리가 될 수록 마음도 편해졌다. 이유 없이 무기력해 지고, 화를 내고, 억울한 감정으로 힘이 들때에도 글을 쓰다 보면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이유를 꼭 찾지 못했더라도 결론은 항상 "괜찮아..." 였다. 그 한마디가 나에게는 큰 위안이었다.


말 그대로 치유다. 나를 치유하면 아이에게도 관대해 진다. 여유가 있어 진다. 그 힘들던 육아에서도 감사함을 발견하고 성장포인트를 찾을 수 있다. 그런 의미로 엄마의 글쓰기는 필수다. 나를 위한 일이고, 아이를 위한 일이고, 남편을 위한 일이다.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일이다. 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글을 썼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훨씬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다. 서로 배려하고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적어도 지금 보다는 말이다. 그 중에서도 엄마의 글쓰기는 필수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라의 미래인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엄마이고, 동시에 현시대를 이끌어 가는 남편을 보필해야 하는 사람이기 엄마 즉 아내 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사회생활 하는 워킹맘이 많다. 그렇다면 더더욱 글쓰기는 필수다. 너무나 바쁘기 때문에 나를 제대로 돌보아줄 수 있는 시간이 오직 글을 쓰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쓰다 보니 또 정리가 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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