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하는 마음은 백해무익하다
동생이 천안에 놀러 왔다. 우리 집은 딸만 셋인데 나는 맏이이고, 놀러 온 동생은 둘째다. 막내는 지난주 수능을 봤다. 둘째와 셋째는 띠 동갑이고, 나와는 무려 열네 살 차이가 난다. 셋째는 너무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조카 같은 느낌이다. 승윤이와열네 살 차이니 뭐... 마냥 어린애 같고 함께 무엇인가를 한다기보다 그냥 다 품어줘야 할 것 같다. 둘째는 나와 두 살 차이다. 내가 세 살(25개월) 때 태어났는데25개월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들을 함께했다. 나의 어린 시절, 가족 문제, 이런저런 소소한 것들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동생이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물론 자라면서 참 많이 다퉜다. 그래서동생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여자 아이들이었지만 분에 못 이겨 몸싸움으로 번진 적도많다. 대부분 옷, 학용품,먹을 것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동거 동락하며 자랐지만 우리는 참 많이 다르다. 지금도둘이 같이 다니면 아무도 친 자매로 보지 않는다. 주변에 보면 언니,동생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닮은 애들이 많은데 우리는 친 자매라고 이야기해도 잘 안 믿는다. 나는아빠를 닮았고, 동생은 엄마를 닮았다. 셋째는 아빠를 더닮기는 했지만 그래도 엄마가 조금 섞여있다. 동생은 다른 겉모습만큼이나 성격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다. 신기할 만큼 다른 점이 훨씬 많다
나는 눈치를 많이 보고, 무서운 것이 많은 아이였다. 동생과 싸우고 매를 맞을 때도 나는 매 맞기 전부터 울고불고하며 잘못했다고 이야기를 했고, 동생은 매를 맞는 순간에도 눈 하나 꿈쩍 하지 않았다. 내가 엄마나아빠에게 원하는 게 있으면 직접 이야기하지 못하고 동생을 시켰다. 나는 몰래 저 뒤에 숨어서 동생이하는 걸 지켜봤다. 지금 돌이켜 보면 동생이 나보다 어렸지만 참 대담했구나 생각이 들지만 그 당시에는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걸 보고 어린아이는 역시 순수해.라고할 수 있을만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동생이 나보다 잘하는 것들에 대해 질투를 느끼거나 나 스스로를 나무라지 않았다.그냥 동생은 매를 맞는 것도 부모님께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도 당당한 것을 인정했고, 나보다동생이 하는 것이 모든 면에서 효율적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나 대신 동생을 시켰던 것이다. 복잡하게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나에게 있어서 당연했던 것 같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나서는 조금 달라졌다. 동생이나보다 욕심이 많아서 공부도 더 잘했는데 고3 때 이런저런 상황이 맞지 않아 3년제 전문대학에 들어갔다. 물리치료가 전공이었다. 나는 동생이 대학교 2학년 때 삼성에 취직을 했다. 그 당시 아무런준비 없이 대기업에 취직을 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부모님은 맏언니인 내가 첫 테이프를 잘 끊어주었으니동생들도 잘 보고 배울 것이라고 더욱 좋아하셨다. 어렸을 적부터 맏이에 대한 부담감을 안고 자라왔기에그렇게 이야기하는 게 지긋지긋했으면서도 이제 제대로 언니 다운 언니 노릇을 하는 것 같아서 뿌듯했다. 사회생활을 먼저 시작하며 경제적으로 동생 위에 있으니 우리는 정말 싸울 일이 없었다. 동생에게 용돈을 줄위치가 되자 동생이 온순해(?) 졌다. 그런 것을 나는 은근히즐겼던 것 같다. 회사가 나를 힘들게 했지만 그 이상으로 나는 전에 없던 통제력을 얻었다. 그 힘으로 버텼다.
동생은 물리치료를 졸업하고 안산에 있는 정형외과에서 딱 1년 근무를하고 그만뒀다. 나도 동생도 승무원이 되고 싶었다. 나는삼성에 입사한 동시에 나의 꿈을 고이 접었고, 동생 또한 마찬가지였다.그런데 동생이 다시 도전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몇 차례 도전을 했는데 결국 포기를 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6개월간 빡쎄게 하더니 그것도 아니라며 편입공부를 하고 간호학과에 다시 입학을 했다. 일반 과들은 편입하고 2년이면졸업인데 간호학과 같은 특수한 과는 3년을 더 다녀야 졸업이다. 동생은총 6년을 학교에 다닌 셈이다. 그리고 스물아홉에 삼성병원에입사를 했다. 나는 결혼을 하고 승윤이는 낳았을 나이에 동생은 제대로 된 입사를 한 것이다.
첫째 콤플렉스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만약 동생처럼 돌아 돌아왔다면 엄청난 눈치를 받았을 것 같다. 워낙 남의 이목에 신경을 썼기 때문에 나 스스로 그렇게 만든다.그런데 동생이었기에 부모님도 그다지 큰 일처럼 여기지 않으셨다. 물론 사실은 이와 다를수도 있지만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어쨌든 나는 동생이 입사할 당시7년 차 직장인이었다. 그것에 나는 동생보다 위라고 생각했다. 동생에게 티는 안 냈지만 알게 모르게 비교를 해왔고, 그것에 스트레스를받았다. 언니이기에 늘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들어왔던 말이 어느새 나 스스로 주문처럼 외우고 있었던것이다.
동생은 지난달 결혼을 했다. 서른 하나의 나이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결코 늦은 것은 아니다. 제부와 여덟 살 차이가 난다. 제부는올해 서른아홉이다. 우리 신랑보다 나이가 많다. 처음엔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부모님이 탐탁지 않아하셨지만 그 외에 모든 것들이 괜찮았다. 시댁 상황도 괜찮고, 제부가 나이가 있었으니 이뤄 놓은 것들이 많았다. 차도 외제차에집도 송도 센트럴파크 큰 대로변에 있는 아파트고 평수도 넓다. 동생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한 것도 진심이었지만부러워하는 마음도 내 마음이었다.
나의 20대. 매우 평범하게흘러간 시간이다. 평범한 게 가장 좋은 거라는 부모님의 말씀대로 나는 평범하게 자라왔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남편과 함께 내 집 마련을 하고 두 아이를 낳고 네 가족이 되었다. 동생의 20대. 대학교두 번에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며 여행도 많이 다녔다. 20대 막차에 입사를 하고 나보다 모아 놓은돈 없이 30대 초에 결혼을 했는데 집도 차도 나의 상황보다 좋다. 나는시아버지가 안 계시는데 동생은 시아버지의 사랑도 듬뿍 받는다. 이것저것 해주신 것도 참 많다. 동생의 결혼을 축하하면서 동시에 불편하기도 했다. 불편해하는 나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나? 늘동생보다 위이고 싶은 거야? 너 너무 욕심 아니니?' 나도이런 마음을 갖듯이 동생도 자라오며 이런 생각들을 했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그렇게느끼며, 또 자극을 받고, 성장해왔다.
아직 동생은 아이가 없지만 유부녀가 된 우리는 또 서로 다른 모습을 갖고 다른 생각을 한다. 나는 마냥 편안 삶에서 벗어나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찾고, 그것을 이뤄나가고 있다.매일 글을 쓰고, 내가 가고자 하는 학문을 공부하고, 책을읽고, 새로운 것을 도전한다. 내가 진짜 중요시하는 가치가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이제야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고 나와 마주하게 되었다. 동생은삼성병원에서 2년 3개월가량 근무를 하며 많이 지쳐서 인지편안 삶을 원하고 있다. 한 달 후면 직장을 그만두고 건강관리 공단 쪽으로 공부를 시작할 예정이다. 앞으로 우리가 또 어떻게 변화하며 성장해 나갈지 모르지만 우리 둘은 참 다르다.
어제 오랜만에 동생과 함께 했다. 집에서 쉬기도 바쁠 텐데 조카들보고 싶다고 인천에서 아침 일찍 천안에 왔다. 어쩌면 동생은 나보다 훨씬 순수한 것 같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자매란 본능적으로경쟁의 마음이 있다. 어린아이는 사랑을 먹고 자라는데 부모님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 어쩔수 없는 것이다. 또 부모님은 그것을 이용하여 일부러 경쟁 구도에 올려놓기도 한다. 태생이 그리고 자라온 가정환경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은 부모님의 사랑을 얻고자 경쟁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나도 조금은의식이 성장해서 '비교' 하는 마음은 백해무익하다는 것을안다. 비교하는 순간 모든 것은 힘들어진다. 나뿐만 아니라주변 모든 것이 힘들어진다. 나는 오로지 나로서의 무한한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기에 비교하는데 허비하는에너지를 '나'의 가치에 집중하는 것이 모든 면에서 낫다. 다행히 지금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 평생 먹고 살 일을 찾으며나의 가치를 발견했다. 비교하려는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면 얼른 나의 가치에 집중해 본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편안해진다.
나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 내가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것은 인생에 가장 큰 숙제이다. 이 숙제를 해결하기만 한다면 나에 집중할 수 있고, 마음이 훨씬 편해진다. 불필요한 감정싸움을 피할 수 있다. 어떻게 숙제를 풀어야 할까? 내 경험상 가장 효과가 좋은 방법은그리고 돈이 없어도 준비물이 없어도 언제나 바로 시작이 가능한 유일한 방법은 '글쓰기'이다. 개인마다 시간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진지한마음으로 마주한다면 언젠가 꼭 나와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