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일][11월26일] 감정 표현에 서툰 아이

치유와 공감

지난주 금요일 저녁 시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 내일 친정 간다며? 오늘 고구마 보냈으니까 내일 도착할거여.. 밖에 다가 박스 두면 고구마 다 얼어버리니께 늦게 출발하더라도 꼭 고구마 받아서 안에 넣고 가야 혀~ ""네, 어머님. 꼭 그럴게요. 고구마 잘 먹을게요." 몇 차례 같은 당부의 말씀을 하시고 끊으셨다. 직접 농사지은 고구마를 해년마다 보내주신다. 올해 도두 박스를 보내셨다. 한 박스는 우리 먹으라고, 또 한 박스는 친정 엄마 드리라고.


어머님은 나도 같이 광주에 가는 줄 아시는 것 같았다. 친정이니 당연히 나도 함께 간다고 생각하셨겠지. 그런데 사실은 토, 일 스케줄이 있는 나 때문에 남편이 아이들만 데리고 광주에 가서 1박 2일 있다가 오는 일정이었다. 토요일은 이은대 작가님 글쓰기 수업이, 일요일은 지난 두 달간 준비했던 어땡쇼가 있는 날이다. 두 가지다 너무나 중요한 일정이었기에 남편이 배려 차원에서 집을 비워주었다. 나 마음 편히 잘 하라고... 어머님과 통화하며 그런 이야기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어머님의 당부 말씀은 이해했지만 나는 수업시간이 있었고, 남편은 기차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고구마를 기다릴 수는 없었다. 결국 고구마를 받지 못한 채 우리 가족은 집을 나섰다. 이은대 작가님 수업을 듣는 중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느낌이 택배 아저씨였다. 수업 끝나고 문자를 확인해 보니 택배보관실에 갖다 두었다고 한다. 다행이다. 그곳은 따뜻하니까 고구마가 얼 염려는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고구마는 천안으로 잘 도착을 했다. 저녁 늦게 집에 도착한 데다가 혼자 고구마 두 박스를 가져올 수 없어서 일단 택배보관실에 두었다. 그리고 일요일, 월요일엔 고구마가 택배보관실에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다가 화요일 밤이 되어서야 남편이 찾아왔다. 상자를 열어보니 너무나 맛있어 보이는 햇 고구마였다. 올해도 이렇게 고는구먼 걱정은 없구나. 연신 고구마 걱정을 하시던 어머님 생각이 났다.


아차! 고구마 잘 받았다는 전화를 안 드렸다. 그렇게 고구마 걱정을 하신 어머님이셨으니 분명히 잘 받았는지 상태는 괜찮은지 궁금하셨을 텐데 전화할 타이밍을 놓쳐 버린 것이다. 지난 토요일에는 나 혼자 천안에 있었으니 어머님이 통화 중에 남편이나 아이들 바꿔달라고 할까 봐 염려되어 전화를 못했다. 남편에게 전화드리라고 하고 싶었지만 두 아이와 우리 아빠, 엄마 상대해 드리느라 정신없을 남편에게 어머니께 전화드리라고 하는 게 너무 미안해서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토요일을 넘기니 일요일, 월요일은 그냥 지나쳐 버린 것이다. 사실 그런 타이밍은 애초에 정해져 있지 않다. 화요일 저녁에라도전화를 드리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나는 늘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다가 결국 연락을 안 드렸다.


보통의 시어머니였다면 먼저 전화하셨을 것이다. 만약 친정 엄마가 시어머니였다면 먼저 전화를 했거나 남편을 통해 잔소리를 하셨을 거다. "받았으면 받았다고 연락을 해야지. 그렇게 걱정을 했는데 연락도 안 하냐? 조금만 신경 쓰면 되는 걸 왜 안 하는 거야? 기다리는 사람은 생각 안 해?" 그리고 엄청 서운해하셨을 테고, 또 그게 며칠 가셨을 거다. 그게 우리 엄마 스타일이다.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대신 모두 표현을 하신다. 아! 모든 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서운하신 것, 마음에 안 드는 것을 특히 표현하신다. 어쩌면 엄마 가이 글을 본다면 억울해 할 수도 있겠다. 엄마는 나름대로 많이 걸러서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으니 말이다. 생각하는 기준은 모두 다른 거니까.


우리 시어머니는 보통의 시어머니와는 조금 다르다. 물론 느끼는 감정은 같겠지만 그 정도가 다르거나 아님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거나 둘 중 하나다. 평소 말 수가 매우 적으시고, 결혼하고 5년이 넘었는데 지금껏 싫은 소리를 한 번도 하지 않으셨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말씀을 안 하신 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일 텐데 늘 한결같으시다. 술도 전혀 입에 대지 않으시기 때문에 실수하신 적도 없다. 시골분이시라 일찍 주무시고, 일찍 일어나신다. 남편이 늦둥이 막내아들이라 어머님 눈에는 막내아들의 며느리이기에 마냥 애 같이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래서인지 아직까지 시댁에서 음식을 해본 적이 없다. 물론 설거지 정도는 자주 하고, 명절 때 전은 부치지만 그 외의 것은 시키지 않으신다. 형님이 나와 15살 이상 차이가 나니 그분들의 눈엔 마냥 어린애 같겠지. 첫째 로자란 나는 이런 대우가 너무나 신선하고 좋다. 처음에는 마음이 불편했는데 지금은 완벽 적응이다. 반면 막내인 남편은 우리 집에서 맏사위 노릇 하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남편 입장에서도 못 느껴본 책임감이라 즐기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이렇게 시어머니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면 내가 먼저 연락도 드리고 더 잘해드려야 하는 게 맞는데 그래서 더욱 시댁 식구들에게 신경을 덜 쓰는 경향이 있다. 같은 상황에 대상이 친정이라면 문제 상황으로 번지기 전에 연락할 일이 있으면 바로 하게 되는데 말이다. 왜 지금 이 시점에 '강자한테 약하고, 약자한테 강하다.'라는 문구가 생각이 나는지...... 머리로는 잘 알고 있고, 마음도 이렇게 정리가 되는데 행동이 안 따르는 건 표현하는 습관이 안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사랑한다, 감사하다, 죄송하다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너무 어색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 아빠에게 감정 표현을 잘 못했다. 유일한 감정 표현이 우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별명이 울보였다. 억울하거나 속상할 때 말보다 눈물이 먼저 앞섰다. 어릴 적 일기를 들춰보니 '나는 언니니까 울면 안 된다.' '울면 바보다.' '절대 안 울 것이다.'라는 문장이 많다. 아마 울 때마다 엄마에게 그런 말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자꾸 우니까 엄마 입장에선 속상하고, 좀 더 씩씩한 아이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그렇게 이야기하셨겠지. 우는 것을 받아주면 더 울 거라고 생각을 하셨던 거다. 하지만 감정을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 어린 나는 눈물을 삼키는 것이 억울하고 속상한 감정을 내 가슴에 묻는 것이 당연시되어버렸다. 그러면서 다른 감정들을 표현하는 것도 서툴게 되었다.


작년 나에 대한 글을 조금씩 쓰고, 올해 초 감사일기를 매일 쓰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개선되었다. 내가 감정 표현에 서툴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고, 어렸을 때 인정받지 못했던 감정은 나 스스로 글로써 치유를 했다. '괜찮아.. 그럴 수 있지.' 하고 다독이고,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는 없는 거라고 이야기해 주며 한 때 유행했던 미움받을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나의 내면의 소리보다 남의 이목에 신경을 쓰던 나였는데 점차 중심이 타인에서 나에게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내 감정을 글로, 말로, 편지로 표현을 했다.


핑계 아닌 핑계지만 만약 어머님이 핸드폰을 잘 사용하실 수 있었다면 뒤늦게라도 문자로 연락을 드렸을지도 모른다. 고구마 잘 받았다고, 상태 매우 괜찮다고. 정말 감사하다고. 잘 먹겠다고...

요즘은 너무나 쉽게 SNS을 통해 감정을 표출하여 문제로 번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말 대신 문자로 나의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하지만 뭔가 말할 타이밍을 놓쳤을 때 아무런 연락도 취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이렇게라도 연락을 이어 가야 다음 타이밍을 놓치지 않을 확률이 더 커질 테니.


늦은 때란 없다. 이렇게 잘 알고 있으면서 고구마를 받고 결국 연락을 안 드리게 되어버린 것은 신경을 덜 쓴 내 탓이다.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늦었지만 연락을 드릴수 있는 상황이었다. 정말 더 늦기 전에 말로 표현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글로써 충분히 연습을 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신경을 쓴다면 말로도 편해질 날이 오겠지. 모든 것을 담는 어머님의 모습이 참 푸근하게 느껴진다. 나의 미성숙한 습관을 우리 아이들에게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차근차근 고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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