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일][11월28일] 삶의 균형

이 또한 이유가 있겠지...

오랜만에 큰소리가 오갔다. 그것도 아이 앞에서. 남편이 일주일 전 요즘 힘이 없다고 이야기 한 후로 눈치를 봐가며 잘해오고 있었다. 물론 '잘한다'는 기준이 상대적인 거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에는 사소한 일이 싸움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조심했다. 원래도 원하는 대부분을 허용하는 나였지만 지난 주는 더욱 열린 마음으로 남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러고 보니 어땡쇼 준비다 뭐다 해서 가족에게 특히, 남편에게 소홀했었던 것 같기도 하여 미안했다. 그리고 큰 투정 없이 지원해주고 있는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결국 어젯밤에는 불씨가 터져버렸다. 두 사람 사이의 문제에서 아무리 한 사람이 노력한들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서로 문제없이 잘 지내고자 노력한 반면 남편은 나의 행동에서 꼬투리 잡을 것에 집중을 하고 있었다.


남편이 중국에 파견 가게 되며 떨어져 지낸 시간이 1년 3개월이다. 어린 두 아이와 함께 평일/주말/남편 없는 450일의 시간의 허전함을 책과 글쓰기로 채웠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그쪽으로 관심 분야가 생기고, 심리 쪽으로 확대되어 남편이 최종 입국한 지난 3월부터는 교육도 듣고, 스터디도 시작할 수 있었다. 방향을 정해놓고 가다 보니 간혹 어땡쇼나 사례발표와 같은 스피치를 할 기회도 생긴다. 남편이 없는 동안 매우 건전한 방법으로 그 시간을 잘 보냈다는 것과 그로 인해 우리 가족이 더욱 잘 지내고 있다고 믿었기에 늘 잠이 부족해 힘들기도 하지만 그것 따위 문제도 되지 않았다.


첫눈 오는 날. 운전하는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야~ 첫눈 오니까 소원 빌어~" 망설임 없이 이야기한다. "와이프 집에 있는 거!" 장난 섞인 이야기였지만 진심이 담겨있는 말이었다. 깜짝 놀랐다. 당장 생각나는 소원이 없어 최근 마음에 품고 있었던 이야기가 나온 것이겠지만 그만큼 힘들었나? 생각이 들었다. 이쯤이면 나도 억울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1년 3개월 실컷 돌아다녀놓고 이 정도도 이해 못해? 나가기 전에는 평생 봉사하며 산다더니 볼일 다 보니까 마음이 바뀌나 보지?'생각이 무서운 게 이런 방향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평소에 분명 괜찮던 것도 다 불만이 되고 지난 15개월 나만 죽도록 고생한 것처럼 느껴진다. 괜히 소원 빌라고 해서 내 마음만 상했다. 물어본 내 잘못이지... 내 마음 편하자고 이렇게 넘겼다.


어젯밤에는 사소한 걸로 나를 마음에 안 들어했다. 그냥 넘길 수 있었지만 또 캐물은 내 잘못일 수도 있겠다. 남편의 표정을 보아하니 은근히 불만을 표현하면서 내 마음 을불 편하게 한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상황에 자꾸 이런 상황이 오니 내 인내심도 한계가 왔다. "뭐가 문제야? 이야기해봐~ 담아놓지 말고. 알아야 고치든지 할 거 아니야.. " "데이터를 좀 더 수집해 보고..." 뭔지 모르겠지만 평소보다 내가 못하고 있었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집안 청소, 빨래, 밥하기 등... 예전보다 아이 둘 키우며 남편까지 입국한 지금 내가 더 도맡아 하고 있다. 남편의 번개 약속, 주말에 남자들끼리 1박 2일 여행, 평일에 골프 연습 이 모든 것을 가족 행사와 겹치지 않는 한 허용한다. 그것도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남편의 마음이 편해야 나한테도 그리고 아이들한테도 더 잘할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도 남편이 매일 집에서 아이들과 나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지만 본인의 취미생활도 즐기며 스트레스도 풀고 집에서는 또 우리에게 집중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게 좋다. 그런데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걸까?


첫눈 오던 날 남편은 내가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들 키워놓고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 안 되냐고 말했다. 공부를 하기 때문에, 글을 쓰기 때문에 남편과 아이들에게 더 잘할 수 있는 거다. 그건 확실하다. 만약 육아에만 매달렸다면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남편에게 향했을 텐데 그 걸 모르나 보다. 공부든 뭐든 가정에게 피해가 간다면 스스로 그만둘 것이다. 그런데 남편이 이야기하는 것은 본인의 욕심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아이 앞에서 우리 둘의 언성이 높아지자 큰 아이가 싸우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개의치 않고 몇 차례 더 주고받았더니 화내듯이 이야기한다. "싸우지 말라고!!! 그만 해!!!" 너무 미안해서 바로 아이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먹던 밥을 중단하고 입을 닫았다. 내가 확고하자 남편은 안 되겠는지 기분을 풀고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주기 시작했다. 그것은 고마웠지만 지금까지 내가 차곡차곡 쌓아왔다고 생각했던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내 마음속 단단했던 성이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성이 말이다. 남편과의 관계에서 삐걱 거리니 전체가 흔들렸다.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균형'은 필수다. 깨진 균형은 이 글을 쓰는 오늘 아침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어젯밤 나의 생각을 정리한 장문의 편지를 남편에게 쓰고 지갑 위에 두었다. 지금 내가 이런 일을 겪는 것 또한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해 본다. 예전 같았으면 이제 좀 뭔가 해보려는데 또 이렇게 남편이 안도와 준다고 투덜대고 불만을 가졌을 것이다. 지금 이 상황 속에서 배울 점을 찾으려는 마음 또한 공부와 글쓰기 덕분이라는 것을 남편은 모르는 것 같다. 이 또한 내 삶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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