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글쓰는 이유
“나 글을 써볼래. 책을 쓰고 싶어.” 바다 건너 중국에 있는 남편에게 고백했다. 2014년 11월 마지막 주, 남편의 중국 파견이 최종 확정 되었고, 우리는 1년 3개월 간 이산가족이 되었다. 확정 당시 첫째가 28개월, 둘째가 100일 무렵이었고 나는 육아휴직 중이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나 혼자 1년 3개월 동안 핏덩이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막막했다. 처자식 남겨놓고 해외파견을 자원한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가족을 위해서라는 말이 다 가식 같았다. 어린 아이 둘의 아빠에게 최우선순위가 뭐란 말인가? 이게 아빠와 엄마의 차이일까? 남편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컸고, 그 자리를 어떻게 채워야할지 헤매던 중이었다. 큰 아이 어린이집에 간 사이 둘째 아기띠를 하고 동네 아줌마들과 수다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매일 같이 약속을 만들었다. 약속이 없는 날은 긴 시간이 너무 허전해서 버티기 힘들었다. 남편이 떠나고 난 후 상황을 알게 된 사람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아 말한다. ‘못 가게 하지 그랬어. 나였으면 절대 허락 안했어. 너무 무책임한거 아니야?’ 내 마음 풀어주려고 해 준 이야기였겠지만 사람 마음이 웃긴게 내가 했던 생각들을 다른 사람 입을 통해 들으니 좋지만은 않았다. 내 얼굴에 침 뱉기다. 마음이 불편해져갔다.
매일 약속을 만드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마당발도 아니었고, 매번 만나서 쓰는 돈도 만만치 않았다. 둘째도 점점 커가면서 아기띠에서 탈출을 시도했기 때문에 아이 달래랴 아줌마들과 수다 떠랴 보통일이 아니었다. 자연스레 아줌마들과 만남의 횟수가 줄어들며 그 시간에 블로그에 육아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의 일상을 남편과 공유하기 위함 이기도 했다. 매일 통화로 전달하는 것도 힘들었고, 그 때 그 때 사진과 함께 기록해 두는 것이 의미 있을 것 같았다. 상황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썼다. 신기한 것이 아줌마들과 수다를 떨 때 보다 일기를 쓰고 있을 때 마음이 편했다. 물론 말을 내 뱉는 순간 뻥 뚫리는 시원한 느낌은 덜했지만 내뱉고 난 후 찝찝함이 없었다. 일기를 쓰며 느끼는 채워지는 느낌은 잔잔하게 오래 지속되었다. 아줌마들과 수다 떨때는 방해물이 되었던 아이가 일기를 쓰기 시작하니 글의 소재가 되었다. 글을 쓰기 위해 아이에게 더 집중하게 되었고, 일상적인 것도 의미를 부여하니 글로 재탄생 되었다. 육아일기로 시작한 나의 글쓰기는 나를 찾는 글쓰기로 확장 되었다. 나를 찾고 보니 이제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확장이 됐다. 예전의 나였다면 ‘내가? 무슨 글이야? 나보다 똑똑한 사람이 얼마나 넘치는데...’ 라며 스스로 포기했겠지만 글쓰기로 찾은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대한민국 의무교육인 12년 동안 끝냈어야 했던 고민을 서른이 넘고 시작했다. 두 팔, 두 다리 모든 것이 자유롭고 시간이 넘치다 못해 흘러 주체하지 못할 때는 무슨 생각을 하며 지냈을까? 싶다. 내 몸이 나만의 것이 아니고 혼자만의 시간 따위 사치가 되어버린 엄마가 되고 나서야 꿈을 찾아 헤맸다.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지만 학창시절 꿈을 찾지 못한 이유를 교육 탓으로만 돌리려는 것은 아니다. 분명 누군가는 어렸을 때 꿈을 찾고, 꿈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의 과정을 통해 성공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는 내가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릴 적 끝냈어야하는 고민을 평생하기도 하고, 결국 답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요즘 신세대 엄마들은 무조건 공부만을 고집하지는 않지만 우리 엄마 세대는 무조건 공부 잘하는 게 최고였다. 고등학교까지는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고, 대학 입학 후에는 좋은 기업에 취직하거나 공무원이 되는 것이 최고의 꿈이었다. 공부가 아닌 뭐라도 해볼라 치면 그건 나중에 취업하고 취미생활로 해도 충분하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거스를 수 없는 부모님의 말 이었고, 생각해 보니 아무리 좋아하는 일도 직업이 되면 힘들어 진다는 말이 틀린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단 한 번도 부모님의 말을 거스르지 않았다.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착한 딸, 남들 보기에 괜찮은 딸, 동생들의 본보기가 되는 언니의 삶을 살아왔다. 말 그대로 평범한 삶이었다. 특별히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하루하루였다. 이런 평범한 삶을 꿈꿀 만큼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듣는다면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할 지 모르겠다. 나 또한 내 상황에 감사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뭔가 늘 허전했다. 아무리 밥을 많이 먹어도, 많이 웃어도, 기분 좋게 술에 취해도, 칭찬을 받아도 채워지지 않았다. 자기계발이 필요하다며 어학 공부도 하고, 요가도 꾸준히 하고, 살사댄스 동호회 활동도 해봤다. 몸이 바쁠수록, 마음도 바빠지고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는 것 같은 공허함, 헛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채워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갓 엄마가 되고 나서는 새로운 역할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다가 이제 할 만 하니 같은 고민이었다. 거기에 남편의 빈자리까지 더해지니 빈 공간은 너무나 컸다. 본격적으로 매일 글을 쓰기 시작하며 나도 모르는 사이 허전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제는 위기는 기회라는 말을 100% 신뢰한다. 남편 덕분에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선택이론을 이야기한 정신의학자 윌리엄 글라써 (William Glasser)는 현실치료에서 인간 존재의 핵심에는 유전적인 속성을 따라 지속적으로 충족시켜야만 하는 다섯 가지 기본 욕구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구뇌에서 유발되는 생리적인 욕구인 생존의 욕구와 신뇌에서 유발되는 사랑(소속감), 힘(성취), 자유, 즐거움의 네 가지 심리적 욕구이다. '우리는 왜 행동하는가?'라는 질문에 인간은 '유전적인 속성'에 따라 욕구 충족을 위해 행동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욕구가 없는 삶은 살아있다고 할 수 없다. 즉, 유전인자의 요구를 잘 수행하는 것이 인간 최대의 의무인 셈이다. 사람마다 욕구의 정도는 다르겠지만 모든 욕구의 조화가 잘 이루었을 때 진정 행복을 느낀다. 엄마 사람으로 예를 들어보자.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으니 사랑 욕구는 가족을 통해 충족을 한다. 물론 관계가 늘 좋지는 않겠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더욱 사랑을 느끼고 소속감을 느낀다. 워킹맘 중 삶의 소명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힘(성취)의 욕구도 충족을 할테지만 대부분 생계를 위해 또는 다른 이유로 원하지 않는 일을 육아와 병행 하거나 결국 직장을 포기한다. 힘 욕구를 충족시키기는 커녕 힘이 쭉 빠진다. 내가 왜 이러고 사나, 다른 방법은 정말 없나 항상 갖고 있는 마음이지만 이제와서 진지하게 생각할 여유도 없고, 아줌마를 누가 써주기나 할까 자신감도 떨어진다. 아마 가장 큰 두려움은 변화를 시도했는데 상황이 더 나빠지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일 것이다. 자유와 즐거움의 욕구 또한 행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이지만 대한민국의 엄마가 당당히 요구하기 어렵다.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엄마의 자유와 즐거움은 소수의 특혜인 것 같다. 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사랑 욕구는 결혼 전/후에 큰 어려움 없이 충족할 수 있었다. 자유와 즐거움 욕구 역시 결혼 전에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충족할 수 있었다. 결혼여부와 상관없이 충족되지 않는 욕구가 있었으니 바로 성취 욕구인‘힘’욕구다. 부모님 때문에, 선생님이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한 공부였기에 성적도 그저 그랬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니 성취감 또한 없었다. 성적에 맞춰 들어갔던 대학에서도 얼떨결에 운이 좋아 입사한 대기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그토록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았던 그 무엇은 힘욕구가 충족되어야 했던 그 자리였다. 남편이 중국으로 간 후에는 독박육아로 자유와 즐거움의 욕구까지 충족하기 힘든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이를 통해 느끼는 즐거움 또한 즐거움의 욕구 중 일부겠지만 ‘아이’라는 대상을 통한 즐거움이기 때문에 내면의 즐거움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대한민국에서 엄마로 살면서 다섯 가지 욕구를 쉽고 건전하게 또한 확실하게 충족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글쓰기‘이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글쓰기는 ’나는 누구인가? 왜 나는 육아를 하는가? 내가 좋아하는 것은 진정 무엇인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영영 찾지 못할 것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엄마라는 이름에서 내 이름 석자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다. 나아가 아이의 성장에 발맞춰 진짜 나의 인생을 찾아가는 성장의 도구이다. 글쓰기는 육아와 충분히 병행 할 수 있는 자유로운 행위이다. 노트와 펜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고, 요즘은 스마트 폰으로도 언제 어디서든 쓰기가 가능해졌다. 따로 많은 돈이 들지 않는 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시간은 만들면 생긴다. 어떻게든 만들어야지 마음먹으면 생기는 게 시간이고, 어떻게든 핑계를 만들면 절대 생기지 않는 것이 시간이다. 네이버, TV, 전화통화, SNS 중 하나만 포기해도 글을 쓸 시간은 충분히 나온다. 글을 쓰지 않는 이유는 써보지 않았기 때문에 드는 두려움 때문이다. 글쓰기라고 해서 책을 내자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글쓰기는 일상에 대한 나의 이야기를 술술 이야기 하듯 풀어내는 것이고, 억누르고 감추었던 나를 하나씩 끄집어내는 과정이다. 어떻게? 앞으로 수도 없이 이야기 나눠보자.
위에서 이야기 했던 힘 욕구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면 아이나 남편을 잡을 확률이 크다. 어떤 식으로든 인간은 욕구를 충족해야만 하기에 스스로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편하고도 약한 존재인 우리 아이를 통제해 내 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아이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엄마들이 많다.
엄마들이여~ 속는 셈치고 일단 쓰자!
나를 살리는 일이고, 우리 가족을 살리는 일이다!
누가 아나? 글쓰는 엄마들이 많아질 수록 나라가 발전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