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의 눈에 비친 전업 주부인 엄마는 꽤 편해 보였다. 가족들 삼시 세끼만 잘 챙겨주고, 아빠는 출근하고 우리가 학교에 가면 엄마는 쉴 수 있으니까. 하교 후, 엄마가 친구 엄마들과 계모임 하고 있는 걸 보면 정말 걱정이 없어보였다. 나는 학교 끝나고 또 학원에 가야하는데 계속해서 이야기꽃을 피우며 하하 호호 하는 엄마가 여유 있어 보였다. 엄마는 더 이상 공부 하지 않아도 되고, 때에 맞춰 잔소리만 하면 되니까 얼른 엄마가 되고 싶었다. 엄마는 아빠처럼 매일 출근하지 않으니 당연히 집안일을 하는 거라고 생각을 했는지 엄마도 힘들 거라는 생각이 별로 안 들었다. 마음 편한(?) 전업주부가 꿈은 아니었지만 엄마처럼 편해 보이는 위치로 얼른 자라고 싶었다. 철없던 그 땐 엄마가 되면 공부와 잔소리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 살 수 있을 줄 알았지... ‘학교 다닐 때가 제일 행복한 거야!!!’ 어른이 되어보지 않았으니 그 말이 진실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었지만 뒤 따라오는 말이 있었으니, ‘그러니까 공부 열심히 해.’ 이 한마디로 상황 종료다. ‘지금이 제일 행복한 거라고? 주구장창 집-학교-학원인데 뭐가 행복하다는 거야?’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도 전에 ‘결국, 그러니까 공부하라는 잔소리네...’ 로 마무리가 되었다. 역시, 하루 종일 지긋지긋한 공부 속에 사는 것 보다 얼른 어른이 되어 엄마가 되는 게 낫겠어.
40주라는 임신기간, 엄마가 되기 위한 준비기간 이라지만 사실 출산과 동시에 하루아침에 엄마가 된다. 조리원에 있는 동안 ‘육아, 별것 아니구나.. 할만하네.’ 했는데 내가 투자한 돈 만큼 누리는 마지막 혜택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큰 아이 낳고 조리원에 있을 때는 아이가 너무 보고 싶어 자주 방으로 데려와 수유를 하고, 안고 있었다. 너무 신기하고 예뻐서 계속 곁에 놓고 싶었다. 둘째 아이 낳고 조리원에 다시 갔을 때는 한 눈에 첫아이 엄마인지 아닌지 눈에 보였다. 둘째 때에는 수유 콜이 오기 전까지는 먼저 가보지 않았다. 어차피 이 곳에서 나가는 순간 한 몸이 될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무조건 편히 쉬며 체력을 충전했다. ‘엄마’ 라는 역할도 미리 체험을 해 볼 수 있다면 내 안에 환상을 품지는 않았을 텐데... 엄마가 되어보니 머릿속에 내가 만들어 놓은 엄마의 모습과는 180도 달랐다. 진짜 육아는 조리원 퇴실 한 그날부터다. 첫 아이 임신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를 기다리며 책으로 이론공부를 한 것이 무색했다. 역시 이론은 이론일 뿐이었다. 도움이 되는 것도 있었겠지만 급한 상황이 오면 생각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루가 왜 이리 길면서도 짧은지 바쁘고 여유가 없었다. 다행이 남편은 회사에서 아침을 먹었기 때문에 큰 일 하나 덜었지만 나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를 하루 종일 돌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초반에는 산후 우울증도 겪었다. 이유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괜찮다고, 괜찮아야 한다고 나를 다독이지만 시도 때도 없이 우는 아이, 가슴을 조여오는 답답함은 달래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해결되었지만 아이가 돌이 되니 이번에는 회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서 아이만 보는 것도 답답하고, 회사에 복직해서 양쪽 스트레스를 다 받는다고 생각하니 그것도 숨이 턱턱 막힌다. ‘이상하네... 엄마는 편해 보였었는데... 왜? 왜 나만 힘든 거지? 대체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만약, 어린 시절 내 눈에 비친 엄마처럼 살게 된다면 괜찮을까? 램프의 요정 지니나 모래요정 바람돌이가 나타나 소원을 들어준다며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하지? 엄마처럼 살게 해달라고 하면 정말 편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상상 속 램프의 요정이지만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힘들다고, 지긋지긋하다고, 이제 그만 좀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많다. 정작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그 이유가 육아와 집안일에 (워킹맘 이라면) 일 까지 해내야 하는 슈퍼우먼 놀이를 하느라 여유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분명 행복해 지고 싶은데 내가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모른다. 쇼핑? 수다? 커피 한잔? 할 때 행복하다? 스트레스 해소와 인간관계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 그 시간 동안 해방감에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 순간 뿐이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로 돌아온 직 후, 원상 복귀다. 내가 정말 즐거워하는 일, 충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있기나 한걸까? 이런 고민은 한 두번 한다고 해서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찾을 때까지 가슴에 품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한다. 하지만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 혹시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고 옆집 아줌마 혹은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면 ‘팔자 좋네, 요즘 좀 편하나 보지? 원래 삶이란 그런 거야...애나 잘 키워. ' 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쉽게 이야기를 꺼내기도 어렵다. 나는 이런 생각을 늘 머릿속에 담고 있었다. 끝도 답도 없는 생각들로 복잡했고, 정리가 필요했다. 그리고 얼떨결에 시작한 글쓰기로 인해 정리를 시작했다.
평소 유투브를 통해 김미경 강사님의 강연을 즐겨 듣는데 강의 중 이런 말씀을 하셨다. ‘오늘은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로망이다.’ 결혼 생활 지긋지긋 하다고 하지만 혼기가 차니 결혼하기를 원했고, 육아하며 나를 잃어버리는 것 같다고 우울해 하지만 내가 원해서 갖은 아기였다. 그리고 어렸을 적, 내가 그토록 바라던 게 엄마였는데... 엄마가 된 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말은 지금 내가 또 다른 무언가가 좋아 보이고, 행복해 보여서 그 모습이 된다고 해도 지금처럼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른 것을 찾아 헤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차피 한번 뿐인 인생이기에 미리 경험해 보고 선택할 수는 없다. 하지만 좋아 보이고, 행복할 것 같아서 또 다른 무언가를 꿈꾸고 쫓는다면 같은 실수를 반복할 확률이 크다. 최소한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무언가를 꿈꾸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내가 정말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아는 것이다.
결혼 후 12년 동안 전업주부로 생활하며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는 엄마로 유명한「오늘 엄마가 공부하는 이유」책의 저자 샤론코치 이미애 대표님은 대부분 은퇴를 준비하는 40대 후반의 나이에 교육컨설턴트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책 내용 중, ‘20대에는 개인의 의지보다 환경에 따라 직업을 선택했다면 40대, 50대에는 진짜 내 일을 가져야 한다. (...) 지금까지 살아온 삶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30, 40대 여성은 그 긴 시간을 행복하게 잘 살려면 육아기 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인생은 길다.’ 고 엄마가 공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 하신다. 이미애 대표님은 육아기를 10년으로 이야기한다. 이 시간 동안 우리는 진짜 인생을 위한 꿈을 꾸고, 그 꿈을 위한 준비 기간으로 삼아야 한다. 책 내용 중에도 나오는 이야기 이지만 우리는 꿈이 없는게 아니다. 꿈꾸는 방법을 모르는 것 뿐이다. 저자는 끊임없는 공부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고 이야기 한다. ‘파랑새는 결국 내 가까이에 있다. 너무 멀리 있는 것은 내 꿈이 될 수 없다.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게 바로 나의 꿈이다. 자기 몸에 맞고 어울리는 옷을 입어야 아름다운 것처럼 꿈도 내 안에 있는, 자기와 어울리는 것을 찾아야 더욱 빛난다.’ 꿈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존재한다. 단지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글쓰기는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내 안의 그 무언가를 찾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만약, 내 손이 필요한 어린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라면 눈치보지 않고, 당당하게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다. 펜을 들었는데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지 모르겠다면? 오랜만에 펜을 들었는데 무슨 이야기를 써야할지 모르겠다고 써라. 피식 웃음이 나오면 또 그대로 옮겨 적는다. 차근차근 그동안 외면했던 나를, 늘 남편과 아이에게 우선순위를 빼앗겨 뒷전이었던 나를 조심히 달래가며 친해지는 것이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닫아두었던 시간만큼 내 마음을 여는 시간도 필요하다. 하루에 조금씩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늘려간다면 똑같은 엄마로써 24시간이 훨씬 알차게 느껴진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외부로만 맞춰져 있던 초점을 나에게 돌리며 나를 중심에 놓은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나를 중심에 놓는다고 이야기 하니 엄마로써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분명한 것은 나를 중심에 놓아야 육아도, 내조도, 내 일도 편해진다. 결국 내 마음이 편해야 주위를 돌아볼 여유도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