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일][12월1일]꿈을 포기할 수는 없다

‘장래희망이 뭐야?’ 학기 초 새로운 담임선생님마다 학생들에게 묻는다. 선생님, 의사, 간호사, 과학자... ‘나는 꼭 커서 000가 되어야지!’ 했던 꿈은 없었다.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무언가가 될 줄 알았다. 아니, 뭐라도 되는 건 줄 알았다. 커서 뭐하고 싶어? 라는 질문에 역으로 엄마에게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내가 뭐가 됐으면 좋겠어?” 엄마는 20대 중반에 나를 낳았고, 첫 아이였으니 잘 키우고 싶은 욕심이 많았다. 반면 나는 낯가림이 심한 편이었고, 공부에 큰 흥미가 없었다. 유치원 1년도 매일 눈물바람을 하며 힘들게 다닌 기억이 난다. 1학년 때 목포에서 2주 학교를 다니고, 아빠가 발령을 받아 광주로 이사를 왔다. 새로운 학교라 더 낯설었을 텐데 2학기에 선생님이 반장을 시켜줬다. 그 당시 1학년은 선생님의 권리로 임원을 선정했다. 7살에 학교에 갔기 때문에 몸도 외소했고, 야무진 편도 아니라서 엄마의 힘이 아니었다면 반장은 힘들었을 것이다. ‘커서 뭐가 될까? 내 꿈은 뭐지?’ ‘장래희망’ 이라는 단어가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엄마의 대답 중 ‘선생님’ 이 가장 많아서 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6학년 때 교내 방송반 아나운서로 활동을 했다. 담임선생님이 졸업식 때 “대한민국 최고 아나운서가 되라” 고 말씀하신 후로 나의 꿈은 ‘아나운서’ 가 되었다. 어렸을 적 내 꿈은 엄마와 선생님이 결정해 주었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 하루아침에 생긴 꿈, 아나운서! 스스로 생각한 꿈은 아니었지만 아나운서가 된다면? 좋을 것 같았다. TV에도 나오고, 유명해 지기도 하고, 멋있을 것 같았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후, 방송반을 모집한다는 공지가 떴다. 6학년 담임선생님의 한 마디가 아니었다면 아나운서라는 꿈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공지를 보고 고민하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나의 꿈은 어쨌든 ‘아나운서’ 였고,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서는 지원을 해야 했다. 중학교는 초등학교와 달랐다.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해야 했다. 갑자기 엄마의 그늘막이 사라지니 사막 한가운데 덩그라니 혼자 서있는 것 같았다. 자신이 없었다. 그 상태로 치룬 오디션에서 같은 반 친구는 붙고, 나는 떨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방송반이 되기 위해 당시 노력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그 때는 ‘내 길이 아닌가 보구나. 겨우 중학교 방송반도 떨어진 애가 어떻게 커서 아나운서를 할 수 있겠어? 그래, 일찍 포기하는 게 낫지. 내 적성이 아닌가봐. 차라리 잘됐어’ 생각했다. 쉽게 생긴 꿈이었기에 쉽게 포기했다. 이런 나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은 없었다. 담임 선생님이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나에게 미치는 영향이 없었고,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엄마 치마폭에서 자란 착한 아이였기에 사춘기도 남들 보다 조용히 지나갔다. 하지만 나에게 중학교 3년은 암흑 이었다. 좌충우돌 많은 경험을 하며 부딪히고, 깨지고 했었다면 ‘나’ 를 좀 더 알 수 있었을까? 생각이 늘 많은 아이었지만 어떻게? 누구에게? 쏟아내면 되는지 몰랐다. 겉으로는 얌전하고 조용한 아이었지만 안으로는 화산 폭발 전 상황처럼 부글부글 끓었다. 그러나 결국엔 폭발하지 못하고 잠잠해 졌다. 폭발한다면 위험하다는 잠재의식의 힘이 스스로를 잠재웠다. 그렇게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채 성장하고 있었다.


조용하고, 얌전하고 수동적인 아이었다. 스스로가 그렇게 못을 밖았다. 단단한 고정관념을 깰 수 있었던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돌이켜 보면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던 것 같다. 하늘에서 내가 하도 답답해 기회를 준 것 이다. 1학년 때 친구 따라 에어로빅 동호회에 가입을 했다. 바로 윗 선배들 중에는 체대에 에어로빅 특기생으로 준비하는 언니가 있어서 동아리가 운영이 되었는데 3학년으로 진학하며 후배들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우리 중에는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 없었다. 누구라도 회장이 되어 동아리를 이끌어 가려면 따로 배우든 창작을 하든 뭔가 특별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누가 회장해볼래?” 회장 언니가 묻는데 가슴 속에 뭔가가 꿈틀 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밑도 끝도 없이 그냥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특별히 해보고 싶은게 없었다. 그런데 왜 하필 에어로빅에 가슴이 뛴다는 말인가. 그 가슴 뜀을 주체하지 못하고 내가 회장을, 친한 친구가 부회장을 맡게 되었다. 선택의 순간 어디에서 그런 자신감과 베짱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진짜 내 모습이 세상에 나올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뭐라도 걸려봐라~’ 하던 찰나에 에어로빅이 걸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등 떠밀려서가 아닌,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시켜서도 아닌, 친구 따라서도 아닌 나 스스로 회장을 하겠다고 선택했다. 그 때의 선택으로 내가 모르고 있던 또 하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 정규 수업 끝나고 남들 공부할 때 에어로빅 학원에 다녔다. 집근처에 있는 동네 에어로빅 학원에서 아줌마들 틈에 서서 몸을 흔드는 걸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몸치인가 싶을 정도로 잘 못 따라갔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어떻게든 해내야했기에 포기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니 아줌마들만큼 리듬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동아리 운영을 위해 연습장에 안무를 짰다. 좋은 기회가 있어 에어로빅 대회에도 나가 수상도 했다. 2학년 말에는 학교의 꽃 축제에 참가해 그 당시 파격적인 옷을 입고 성공적으로 공연을 이끌었다. 스스로 선택한 일에 몰입하는 나를 발견했다. 진정 즐기고 있었다. 이쯤 되니 공부 보다 에어로빅이 더 좋았다. 그렇게 체대에 가서 계속 에어로빅의 길을 걷고 싶은 꿈이 생겼다. 난생 처음으로 뭔가 하고 싶은 것이 생긴 것이다. 큰 결심을 하고 아빠, 엄마께 말씀을 드렸는데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이제 고3인데, 너무 늦었다. 에어로빅 한다고 해서 나뒀더니 차라리 처음부터 말릴 걸 그랬다. 대학교 가서 취미로 해도 된다. 체대 못가면 어떻게 할거냐. 고생만 한다. 돈 못번다.... ’ 아나운서의 꿈을 접을 때와 사뭇 달랐다. 일주일간의 꿈앓이 끝에 결국 포기를 했다. 에어로빅 하기 전의 바보같은 착한 나로 돌아왔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하는게 좋을까? 부모님 말대로 일단 대학부터 가고 보자.


이렇다 할 꿈이 없었던 이유, 30년 넘게 제대로 된 꿈을 갖지 못했던 나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가슴 뛰는 삶] 의 저자는 비전(꿈)을 갖기 위해 되돌아보고, 들여다보고, 내다보라고 이야기 한다.

‘삶이 진행될 당시에는 우연처럼 보였던 많은 일들이 실은 필연에 의한 산물인 경우가 많다. 과거에 자신이 했던 수많은 선택들을 곰곰이 살펴보면 사람마다 어떤 동일한 패턴을 발견할 수가 있다. 그것이 당신의 가치관이고 또 삶의 방식이다. 비전을 세울 때도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일, 가장 자기다운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만 합당한 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 (...) 되돌아보라. 이제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순간, 당신이 정말로 잘할 수 있는 일과, 당신이 정말로 즐길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내라.’ 꿈을 꾸어 본적도 없는 나였기에 엄마가 된 후에도 꿈에 목말라 있었다. 점점 내가 아이에, 육아에 묻혀 가는 현실에 힘이 들었다.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일, 가장 나다운 방식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정말로 즐길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 이 모든 것을 엄마가 된 후, 백지와 마주하며 하나씩 찾아갔다.


살다보니 꿈을 갖고 있었을 때와 꿈 없이 그냥 살았을 때 마음이 천지 차이다. 꿈을 이루고 못 이루고는 마지막 순간 눈에 보여지는 결과일 뿐 꿈을 가슴에 품고 이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우리의 일상은 꿈을 이뤄가는 과정 중 하루이기 때문이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꿈을 품고 있는것 만으로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된다. 대학교에 진학 한 후, 승무원이라는 멋있어 보이는 막연한 꿈이 있었지만 간절하지 않았던 것을 증명하듯 전혀 다른 분야의 회사에 취직을 했고, 남들과 비슷한 나이에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지금까지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니 에어로빅에 빠져 있었을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 뭘 해도 재미있었고, 다음날 눈 뜨는게 신났다. 학교 가는 것도 재미있었다. 특별히 하고 싶은 꿈이 없었을 때는 하루 하루 시간이 가는 게 큰 의미가 없었다. 꿈의 유무와 상관없이 학교를 다니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육아도 시작한 이상 무를 수 없다. 어떻게든 우리는 내가 낳은 아이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져야하며 아이가 자립할 때까지 엄마로써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어차피시작한 육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분명히 끝나는 육아라면 즐거운 마음을 갖는 것이 서로에게 좋지 않을까? 그걸 누가 모르냐고? 분명 육아란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결론은 엄마도 ‘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엄마도 라기 보다 ‘엄마이기에 꼭!’ 꿈이 있어야 한다. 꿈이 있는 엄마는 육아를 하는 기간 동안 나를 희생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꿈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는 기간으로 삼는다. 글 쓰는 그 자체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남편이 중국에 가 있는 동안 두 아이의 엄마로 살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독서와 글쓰기였다. 글쓰는 그 시간만큼은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고, 오로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에 집중할 수 있었다. 생각을 그대로 글로 옮기며 진정 나를 마주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그 느낌 만으로 글쓰기 자체에 푹 빠졌고, 작가라는 꿈이 생겼다. 겉으로 볼 때 어제와 오늘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작가라는 꿈이 생겼다는 것 뿐이었다. 그 것 만으로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내 마음 가짐이 180도 달라졌던 것이다. 나는 꿈이 있는 엄마였다. 사춘기 소녀처럼 ‘작가’ 라는 꿈으로 설레였다. 에어로빅으로 즐거운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처럼 작가라는 꿈으로 인해 즐거운 육아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가 밝고, 맑고, 몸도 마음도 건강한 아이로 자라기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그런 모습을 가진 엄마가 되어야 한다. 아이는 꿈이 있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다. 엄마가 진정 즐거워야 아이도 행복하다.


육아 때문에 꿈을 포기 한 엄마들이여, 다시 한번 꿈을 꺼내자!

우리가 마음먹는 순간 육아는 꿈을 이루기 위한 기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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