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일][12월2일]텅 빈 나를 글쓰기가 채운다

뭔가 개운하다. 평소였다면 “지이이이이이이잉” 새벽 5시 나를 깨우는 핸드폰을 손에 쥐고 ‘그래! 일어나야지!’ 마음을 다잡으며 이불을 차고 나오는 것이 순서다. 저절로 떠진 눈. 너무 개운한 느낌에 등골이 오싹하다. 설마 하고 시계를 본다. 잘못 본거라고 시계를 의심해 본다. 바램일 뿐이다. 8시! “아아아아아아아악!!!” 오랜만에 제대로 된 늦잠을 잤다. 할 게 얼마나 많은데... 늦잠이라니. 자책할 겨를도 잠시 부스럭부스럭 소리와 함께 큰 아이가 뒤척인다. 나는 숨을 멈추고 자는 척을 한다. 지금이 8시니까 애들이 9시에 일어나주면 1시간이라도 확보할 수 있다. 그럼 글쓰기를 1/3 정도는 할 수 있을 텐데... 제발 조금만 더 자줘. 마음속으로 외치며 자는 척을 해 본다. 많은 걸 바라지는 않아. 늦잠을 잔 내 탓이니까. 딱 1시간이면 돼. 제발... 부탁이야. 응? 조용하다. 다시 잠들었나? 성공인가? 휴... 역시 하늘이 나를 돕는구나. 머릿속으로 나가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을 그려본다. 괜찮아! 아직 늦지 않았어. 조금이라도 가서 쓰자! 서둘러!!


살며시 눈을 뜨며 두 번째로 등골이 오싹 했다. 눈을 동그랗게 뜬 큰 아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헉! 오늘 아침은 이대로 끝이구나. 나는 어쩌자고 늦잠을 잔 것이란 말이냐!!! 짧은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머릿 속이 복잡했다. 어떻게 하지? 계획해 놓은 많은(?) 일들은 언제 다하지? 망했다... 오늘 할 일 정말 많은데, 휴우. 이런 생각들이 내 눈빛에 스며들었는지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이 슬퍼 보인다. 어?? ‘쿠웅...‘ 머릿 속 크게 부풀어 오른 생각 덩어리가 저 높이 치솟았다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철렁 가슴이 내려앉는다. 그리고 아이를 꼬옥 안아주었다. 그래... 내가 중요한 걸 잠시 잊고 있었구나. ’미안해 승윤아. 엄마가 또 욕심 부렸어...‘ 혼자만의 시간에 하려고 했던 일의 대부분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닌 나 스스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투정을 부릴 생각도 없지만 말할 명분도 없다. ’그러게, 누가 하래? 애 보고 집안일 하는 것도 힘든데... 애나 제대로 봐... 글쓰기는 나중에 해도 되잖아!!!‘ 라고 말할 것이 분명하다.


공부하는 때, 글쓰는 때가 따로 있을까? 그 때란 언제일까? 지금보다 좀 여유가 생기면? 시간이 여유가 되면 마음이 준비가 안 되었고, 이제 좀 써보려고 마음먹으면 상황이 안 따라 준다. 꼭 일은 그렇게 돌아간다. 누군가 그랬다. 죽기 1주일 전에 생기는 게 여유라고. 그때는 ‘지금은 정말 너무 늦었어... ’ 라며 후회하지 않을까? 공부나 글쓰기는 미래를 위한 준비이기도 하지만 현재의 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지금 내가 나답게 잘 살기 위한 가장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방법이 글쓰기다. 최소한 30분 투자해서 23시간 30분 진정한 나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면 이만큼 남는 장사가 어디 있을까? 안한 사람만 손해다. 아이와 온종일 함께 하는 시간 안에서 나를 잃지 않기 위해 30분 나를 채우는 글쓰기는 하루일과 중 최우선 순위이다.


일찍 일어나기 위해서는 일찍 자야한다.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온종일 아이와 함께하는 엄마로써 나만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두 아이가 동시에 낮잠이라도 자주면 좋으련만 그런 행운이란 아이가 클수록 로또 당첨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이렇게 본의 아니게 오늘처럼 부족한 잠을 충전한다. 그런 것까지 고려하지 않는 나의 일정은 늦잠을 자는 날이면 꼬이게 되고, 조급해진 마음은 아이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이가 쉬를 하러간 사이, 짧게나마 글을 쓴다. 이 상황에 대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일기’다. 마음이 조급할 때,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때, 컨디션이 안 좋을 때 효과 최고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해야 할 일이 많았지만 잠을 푹 잔 덕분에 개운한 몸 상태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아이가 더 자주었으면 바라는 마음이 컸지만 아이의 맑은 눈동자와 미소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아이 덕분에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감사합니다. 낮 시간동안 시간 분배를 잘 하여 하려던 일을 잘 마칠 수 있어서 미리 감사합니다. 늦게 시작한 하루지만 더 알찬 하루일 것에 감사합니다. 시간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아침에 감사합니다. 이렇게 짧게나마 글을 쓰며 마음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어 감사합니다. 조급한 마음에 불만이 가득한 하루를 시작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것이 많은 것을 깨닫고 현재 나의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감사한 일들이 더 많이 생길 것입니다. 나는 내가 참 좋습니다.”


늦잠은 하나의 가벼운 예 일뿐 살다보면 많은 예상치 못한 상황들로 계획했던 하루가 뒤틀리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럴 때 마다 상황에 흔들릴 것인가? 나를 채우는 글쓰기로 급속 충전을 할 것인가?


줄리아 카메론 [아티스트 웨이] 에서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의식의 흐름을 세 쪽 정도 적어가는 것을 제안한다. 책 에서는 ‘모닝페이지’ 라고 한다. 모닝 페이지에는 어떤 내용이라도, 아주 사소하거나 바보 같고 엉뚱한 내용이라도 모두 적을 수 있다.


‘모닝 페이지는 우리의 내부를 그려낸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의 꿈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에 남아 있을 것이다. 내 꿈도 그랬으니까. 모닝 페이지를 씀으로써 통찰력의 빛은 변화의 힘과 하나가 된다. 그렇게 되면 상황에 불평만 하기보다는 건설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모닝 페이지는 우리를 절망에서 벗어나게 하고,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해결책으로 안내해준다. (...)

모닝 페이지를 충시하게 쓰면 누구든지 자신의 내부에 있는 지혜의 샘에 닿을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나 문제에 빠질 때면 나는 모닝 페이지가 나를 인도해주기를 바란다.‘


[아티스트 웨이]는 총 12주 동안 창조성 회복을 위한 워크숍으로 매 주 과제, 미션이 포함되어 있다. 그 중 모닝 페이지는 시작하는 날부터 빠짐없이 매일 수행해야하는 숙제다. 저자도 이야기 하지만 잘 쓰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쓰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매일 나와 마주하는 글을 쓰며 불필요한 감정, 생각을 흘려보내는 동시에 진정한 나의 내면과 만나게 된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하루의 시작을 글쓰기로 하지 않으면 종일 텅 비어있는 느낌이 든다. 빈 껍데기로 사는 느낌. 내가 아닌 느낌이다. 작가도 아니면서 오버한다고 이야기 할 지 모른다. 그럼 지금까지 글쓰기를 하지 않았던 인생은 뭔데? 내 인생이 아니었냐고? 빈 껍데기냐고?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온 것도 당연 나이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소고기 맛을 보기 전에는 그 맛이 어떤지 절대 알 수가 없다. 먼저 먹어본 사람이 어떤 맛이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직접 먹어보기 전에는 알 길이 없다. 소고기를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다. 하지만 먹어본 사람은 계속 먹고 싶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쓰기를 몰랐던 때에는 쓰지 않고도 잘 살았지만 글쓰기 맛을 알아버린 이상 안 먹고는 살 수 없게 되었다. 육아 중 글쓰기를 시작했으니 육아를 대하는 태도만 봐도 확연히 달라졌다. 아이를 원해서 임신을 했지만 한편으로 힘들었던 직장생활에 대한 도피처이기도 했다. 그래서 인지 육아를 하면서도 불만이 쌓였다. ‘뭐야, 회사보다 나을 줄 알았더니 더 힘들잖아.. 하.. 대체 세상이 쉬운 일이 없네. 이렇게 힘든 인생. 우리는 왜 열심히 사는 걸까? 아이는 왜 또 하루 종일 우는거야... 나를 힘들게 하려고 태어났나? 나 지금 벌 받고 있는 거 같아... 오늘 하루 지나고 내일이 오면 뭐해? 특별할 것도 없는데 뭐... ’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와 마주한 후로는 같은 하루가 참 의미 있었다. 분산 되어 있던 것들을 한데 모아 내 안을 채우며 어떻게 살고 싶은지 정리를 하니 같은 하루가 아니었다. 삶 속에서 조금씩 배우며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하루였다. 엄마의 글쓰기는 나를 채워주는 동시에 아이와 함께 성장하게 해주는 아주 훌륭한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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