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
지금 내 눈앞에 자고 있는 아이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다. 날개를 잃어버려 다시 올라갈 수 없는 천사. 미성숙한 나를 성숙한 인간으로 만들라는 특명을 받고 하늘에서 보내진 나만의 천사. 세상 참 살만한 곳 이구나 느끼며 살 수 있게 희망의 불씨를 품고 온 천사. 새근새근 편하게 곤히 자고 있는 아이를 지켜보고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어떻게 저 귀여운 생명체가 나에게 와서 이런 행복과 충만함을 주는지 난 참 복 받은 사람이다. 하루 온통 힘들어도 아이가 보여주는 미소, 단 한번의 이쁜짓, 엄청난 노력 끝에 새로 습득한 기술을 보여 줄때면 ‘아 이래서 애를 키우는구나.’ 싶다. 나는 원래 아이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지나가며 환하게 웃는 아이를 보면 나도 따라 웃기는 했지만 거기까지 였다. 식당에 아이들이 시끄럽게 돌아다니면 왜 여기에서 이럴까? 엄마는 뭐하는거지? 하며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었다. 아이들 때문에 피해를 본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되기 전까지 그랬다. 엄마는 내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하며 어른으로 잘 성장하게 하는 역할이 주어진다. 나도 친정 엄마의 힘으로 지금의 내가 있는 것처럼 나 또한 내 아이에게 내리사랑을 준다. 그렇게 나의 모든 것을 아이에게 주는데 좋은 것만 주고, 좋은 엄마의 모습만 보여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아이를 키우며 진정한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모르던 나를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바로 나의 밑바닥을 보는 끔찍한 경험이다.
천사였던 아이가 눈을 뜨는 순간 모든 것은 현실이 된다. 그리고 실전육아가 시작된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아니, 간접육아를 경험 해본 사람도 ‘애들은 잘 때가 젤 이쁘다’라는 말에 격하게 공감할 것이다. 아이는 예쁜 짓 하나하면 내 속을 뒤집어 놓는 짓 열 개 정도 하는 것 같다. 비율적으로 말이다. 최근 육아에 관한 트랜드가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는 감성육아이기에 옛날만큼 화부터 내는 엄마는 없는 줄어든 것 같다. 넘치는 육아서로 대부분 그 정도는 알고 있다. 아이가 쌀 통에서 쌀을 꺼내 흩뿌린다. “우리 애기..놀고 싶은가 보구나... ”공감해 주는 엄마 덕에 아이는 신이 난다. “응!!!” “그렇구나.. 그런데 이건 우리가 먹는 밥이야. 먹는 건 소중히 여겨야 하는거야... “ 세 번 정도 반복 하다보면 마음의 파도가 거세지기 시작한다. 눈동자도 함께 흔들린다. ‘흐음... 제발... 여기까지만 하자.. 선을 넘지 말아줘...’ 나 자신에게, 그리고 아이에게 마음속으로 외쳐보지만 세상은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더 많다. 특히, 육아에서는 완벽히 그런 것 같다. 천사로 보였던 그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이제는 나를 트레이닝 시키러 온 천사의 탈을 쓴 악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님 전생에 지은 죄가 많아 벌을 받고 있는 걸지도... 인내심의 한계가 넘어서는 순간 마음 속 파도는 멀미가 날만큼 심해진다. 배는 뒤집히고, 아이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법한 내가 모르던 나를 만나게 된다.
결국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언성을 높이고야 만다. 적당히 타이르는 정도로 끝냈어야 하는데 1절 넘어 2절... 3절까지 간다. 어렸을 적 그토록 지긋지긋했던 엄마의 잔소리는 어느새 까맣게 잊는다. 왜 엄마는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 거지? 했던 마음이 대체 얘는 누구 닮아서 이러는거야? 왜 엄마 생각은 눈꼽 만큼도 안하는 걸까? 나한테 어떻게 하란 말이야......!!! 감정에 휩싸여 나조차 나를 어쩌지 못한다. 머리는 이제 그만하라고 하는데 마음의 제어장치가 고장이 났는지 아님 그만 두지 못하는 입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아이랑 자존심 싸움이라도 하는듯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언성을 높힌다. 집 밖에서는 화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는 내가 천사 같은 연약한 아이에게 퍼붓고 있다. 쌈닭이 된 것 같다. 처음에는 이런 나의 모습에 나 조차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나한테 이런 면이 있었구나... 놀랍기도 하면서 최악의 나를 인정하고 싶지가 않다. 최절정을 찍고 나면 감정이 가라앉고 혹은 제풀에 지쳐서 몸에서 힘이 빠진다.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온다. 아이에 대한 원망에서 넘어가 나에 대한 자책의 단계다. 나는 왜 감정 조절이 안될까? 왜 자꾸 화를 내는 걸까? 적당히 하지... 왜 자꾸 같은 말을 하면서 아이에게 상처를 입힐까? 내 마음이 이런데 아이는 얼마나 상처가 클까? 후회할꺼면서 왜 자꾸 이러냐고... 혹시 나 우울증인가? 어떻게 내 마음을 다스려야할지 모르겠다.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다... 마지막으로 반성의 단계다.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앞으로 정말 잘하자. 감정을 앞세우지 말자.
꼭 해야지! 하는 일은 시작이 어렵고, 그만 해야지 하는 일은 멈추는게 어렵다. 운동, 독서, 공부, 글쓰기는 누가 봐도 삶에 플러스가 되어주는 것들이다. 새해 계획을 세울 때 늘 빠지지 않는다. 이렇게 꼭 해야지! 하는 것들은 시작이 어렵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에 절로 공감이 된다. 준비물 계획하다가 결국 시작도 못하는 경우도 많다. 흡연, 상습적인 음주운전/절도, 폭식, 폭언, 폭력은 정말 그만해야 하는 것들인데 멈추는게 어렵다. 이 것들을 행하는 그 순간의 쾌감, 흥분, 통쾌, 자유, 즐거움이 그 어떠한 것보다 크기 때문에 머리로는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이미 몸이 반응한다. 아이에게 화를 내고 사랑의 매를 드는 것도 폭언, 폭력이다. 폭언은 폭력만큼이나 어쩌면 그 이상으로 아이에게 상처를 입힌다.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아이에 대한 통제력을 얻기 위해 화를 내고, 이성을 잃고 나의 밑바닥을 만난다. 다 쏟아낸 다음에는 갑자기 미안함 마음이 들어 반성 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 다짐한다. 물론 너무나 훌륭한 엄마들도 많지만 보통의 엄마들은 무한반복이다. 노력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 한다. 우리는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계속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이제 정말 그만할 것인가? 내 마음이 정말 원하는건 뭐지? 진지하게 물어보아야 한다.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매일 반복을 하고 있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나는 어떤 노력을 했을까? 언제까지 후회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지금까지로 충분하다.
2015년 5월 까지는 나도 그런 엄마였다. 특히나 그 당시 혼자 두 아이를 돌봐야 했기 때문에 예민해져 있었다. 남들과 같이 있을 때에는 보는 눈이 있으니 덜 했지만 우리끼리 있을 때는 감정조절이 힘들었다.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 주기 위하여 노력을 했다. 채워 준다기 보다 빈자리가 최대한 느껴지지 않도록 최대한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화를 내지 않기 위해 참았지만 한번 터지면 그 참았던 것 까지 싸그리 쏟아져 나왔다. 아이의 잘못은 100중에 1이라면 지금 내 처지, 상황에 대한 것과 쌓아둔 것이 더해져 100이 된다. 작은 아이는 돌도 안된 아가 였기 때문에 고스란히 첫째가 다 받아내었다. 우연히 책을 읽게 되었고, 감정은 마음에 쌓여가고, 지식은 머릿속에 쌓여가니 뭔가 배출할 것이 필요했다. 배출의 도구로 글쓰기를 선택했다.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아~ 그래서 쓰면서 내가 가벼워 졌구나.’ 느꼈지만 그 당시는 그런 이해 없이 살기 위해 글쓰기를 했다. 쓰는 동안 만큼은 터질 것 같은 머릿속과 답답한 마음이 진정이 되는 듯 했다. 쓸수록 정리가 되어져갔다. 글다운 글을 쓴 건 아니다. 그 당시 숭례문학당에서 진행하는 온라인 100일 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자유롭게 매일 글을 썼다. 형식, 분량 모두 자유다. 함께 하는 동기들을 보니 각자 자기 상황에 맞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100일 중 100일이 나의 이야기로 채워졌다. 남편, 육아, 지금 내 감정, 글쓰며 느끼는 것들 매일 쓰기를 반복하며 습관이 되었다. 100일이 지나고 나니 너무 허전했다. 무엇이라도 계속 써야만 했다. 쓰지 않으면 내 마음이 견디기 힘들었다. 매일 글을 썼던 것은 머리 속의 생각을 적어내려간 것을 넘어 진짜 나를 만나고, 내가 하는 마음의 소리를 들은 것이다. 그래서 뭐라도 쓸 수 밖에 없었다. 실제 이렇게 쓰면서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나를 돌아본 시간 만큼 아이 자체를 보게 되었다. 이제는 아이에게 화를 안내는 엄마가 아니라 정말 좋은 엄마, 따뜻한 엄마가 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그치고 재촉하는 엄마가 아니라 아이 자체를 인정하고 기다려주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부모교육(PET) 공부는 남편이 입국하고 난 후 시작했다. 지금 나의 육아 철학에 PET 의 공도 크지만 PET를 배우며 온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그 전에 글쓰기로 나의 내면을 많이 다져놓았기 때문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런 과정이 없었다면 참 좋은 이론이구나...머리로 이해하는데 그쳤을 지 모른다.
육아는 글쓰기다!? 두 가지의 공통점은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데 있다. 피하고 싶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바닥까지 만나는 경험을 한다.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며 삶의 연속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성장의 맛을 본 후엔 인생의 축복이 된다. 육아와 글쓰기는 공통점이 많은 환상의 콤비다. 둘이 함께 할 때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있다. 육아에 지칠 때 글쓰기를 하면 상황을 문제가 아닌 사실로 바라볼 수 있다. 나의 화, 분노를 아이에게 푸는 대신 백지에 풀어내면 스스로 풀려버린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육아를 글쓰기에 많은 글감을 제공한다. 육아를 하는 엄마라면 글감이 떨어질 일이 없다. 글쓰기가 좋다고 해서 한번 해보려고 하는데 도대체 뭘 써야할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많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워킹맘이라면 아이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모든 것이 글감이 된다. 평생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일상의 육아를 글로 옮긴다는 것은 생명을 불어넣는 일과 같다. 내가 의미를 부여한 순간 더 이상 똑같은 일상이 아니다. 특별한 가치가 있는 일이 된다. 이 것이 모여 나의 인생이 된다. 육아와 글쓰기는 환상의 콤비다. 육아하는 엄마가 글을 써야만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