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엄마! 우아하게 스트레스풀자!
내가 먼저 잘못한 것은 인정한다. 그래서 진심으로 죄송했고, 수차례 사과했다. 그런데 먹히지를 않는다. 이 상황에서 내가 뭘 더 할 수 있었을까? 결국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 이상 나이로 보였던 어르신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경우가 생겼다. 퇴근한 남편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열변을 토하며 이야기 하니 아저씨가 좀 심하긴 하셨다며 내편을 들어준다. 응어리가 쑤욱 쓸려 내려간다. ‘그래... 내 잘못이 아니야. 나도 할만큼 한 거라구!!!’ 응? 그런데 아직 뭔가 남아있나보다. 아직 마음 한구석이 편치가 않다. 체한 것 같다.
모두가 잠든 밤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았다. 할 일이 참 많았던 월요일 이었다. 혼자라면 일도 아니었을 어렵지 않은 일들이다. 하지만 나는 양쪽에 혹이 하나씩 달려있어 내 몸까지 세 몸을 챙겨야 하는 엄마다. 문득 육아는 회사 업무와 같단 생각이 든다. 할만하다 여겨지면 사고가 한번씩 터지거나 더 큰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죽을 만큼 힘들어서 도저히 못 하겠다 생각들이 들어 포기하고 싶어지면 그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상황이 조금 편해지기도 한다. 오늘은 후자에 해당하는 날이었다. 큰 짐 2개를 택배 보낼 게 있어서 우체국에 가야했었고, 아이들 감기로 병원에도 가야했다. 수요일 전에 도착해야만 하는 책 주문, 둘째 아이 치과 검진, 글쓰기 숙제, 친구에게 재능기부 해 주기로 한 mini lecture 강의 아이디어 생각, 틈틈이 독서, 감사편지 한통... To-do 리스트를 보며 ‘즐기자!!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내가 너무 좋다!!!!!!’ 를 외치며 시작한 하루다. 가장 먼저 급하게 해야 했던 일은 우체국 택배 보내기였다. 특히 3~4세 어린 아이가 있는 엄마는 안다. 3~4세는 유아기의 사춘기다. 집에만 있는 것도, 나가서 놀리는 것도, 외출 준비를 시키는 것도 전쟁이라는 것을. 차라리 아주 어린아기면 엄마가 해주는 대로 가만히 있기나 하지... 특히 세 살 인 둘째는 양말 한짝도 혼자 신어야 한다. “내가, 연이가, 내꺼, 연이꺼야!, 안돼!, 만지지마! 혼자할꺼야! ...” 27개월 딸 아이가 가장 많이 하는 말들이다.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이고, 혼자 해보려는 그 마음이 너무 기특하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나 스스로 조심한다. 폭탄과 불이 만나면 빵 하고 터질테니... 그런 일이 생기기 전에 나부터 마음 단도리를 해본다. 한번 나갈 때 최대한 많은 일처리를 해야지! 생각하고 짐을 챙겼다. 우체국 주차장에 들어서는데 마침 차 한 대가 빠진다. “아싸!!!” 역시 하늘이 나를 도와주는구나. 이미 조금 지친 상태였지만 긍정하며 트렁크의 큰 짐은 양 손으로 감싸 안고, 두 아이는 입으로 챙기며 무사히 우체국 안으로 들어갔다. 박스 구입, 주소를 쓰고, 테이프를 붙이고 손은 일을 하고 눈은 아이들을 주시했다. 연말이 다가오고 있어서 우체국엔 사람이 꽤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 다 해서 11,680원. 생각보다 싸네? 카드로 할까 현금으로 할까... 하고 있는데 등골이 오싹해 진다. ‘설마.......’ 는 현실이 된다. 지갑이 없다. 우체국 직원과 모든 방법을 짜내어 보는데 답이 없다. 겨우 일 하나 끝내나 싶었는데...... 온몸에 힘이 쭉 빠진다. 다행이 직원분의 배려로 집에 가서 전화를 주면 전화로 결재 처리를 도와주겠다고 한다.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 아이들을 다시 태우고 집으로 향하는데 분식집에서 떡꼬치를 먹고 싶다는 아들... 어차피 점심도 먹였어야 했으니 분식집에 가기로 한다. 엘리베이터를 잡아놓고 나 혼자 뛰어들어가 지갑만 들고 나왔다. 분식집에 가서 전화해야지... 분식집은 2차선 도로에 있어서 주차가 문제다. 금방 빠질꺼니까 학교 근처에 세워두었다. 특정 의자에 앉겠다는 둘째와 잠깐 실갱이를 하고, 주문을 하고, 우체국에 전화를 하려는데 지갑에 카드가 없다. ‘하아..... 뭐지???’ 평소 잘 안쓰는 카드가 하나 눈에 띈다. 스마트뱅킹으로 2만원만 그 계좌로 이체해 놓고 전화를 걸었다. 카드 번호와 유효기간을 알려주고 끊었다. 마침 음식이 나와 아이들을 챙겼다. 최대한 소스가 옷에 묻지 않도록... 나에게 묻히지 않도록 조심조심 했다. 우체국에서 전화가 온다. 다 된줄 알았더니 카드가 안된다며 다른 카드 없냐고 묻는다. 우체국에서 나를 배려해 준 거니까 매우 감사한 일인데 이쯤 되니 머리가 아파온다. 계좌이체 되냐고 물었더니 된단다. ‘처음부터 계좌이체로 할껄...‘ 어쨌거나 이로서 우체국 택배 일처리는 끝났다.
아이들과 외식은 이제 꽤 익숙해 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한참 멀었다. 코로 먹는지 입으로 먹는지... 모르겠지만 배를 채우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가 뜬다. 전화를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가‘힘내자!!!’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xxxx 차주시죠?”“네...”“이보세요!!! 차를 여기에 대놓으면 어떻해요! 초등학교 앞에 횡단보도에다가 딱 해놓으면 어떻합니까? 생각을 좀 하면서 차를 대야지! 당장 빼세요.”(아차.... 내가 차를 댄 곳이 횡단보도였구나... 몰랐지만 내 잘못이다.) “아, 죄송합니다. 횡단보도인 줄 몰랐습니다.”“아니, 사람이 횡단보도에 차를 대면 어떻게, 당장빼요.”“정말 죄송합니다. 지금 근처인데 최대한 빨리 뺄게요...”“최대한 빨 리가 아니고 지금 빼라고”(...) 인정한다. 일부러 그런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횡단보도에 차를 댄거니까 내 잘못이다. 두 아이만 놓고 차를 빼러 갈 수도 없고, 절반 이상 먹은 상황에서 포장을 해달라고 한들 치과 예약시간이 있어서 집에 다시 들어가기 애매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차에 갔다가 어딘가에 주차를 하고 다시 분식집으로 오는 것도 생각만으로 숨이 막힌다. 그 순간 최대한 빨리 먹고 나가는게 최선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아저씨에게는 죄송했지만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빨리 먹으라고 재촉하는 아이들에게도 미안했다.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지? 휴우......’ 큰 일을 하고 있는것도 아닌데 이런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차로 갔는데 교통옷을 입으신 할아버지 두 분이 계신다. 한 분이 나를 노려보시기에 먼저 선수를 쳤다. “죄송합니다. 횡단보도인 줄 몰랐어요.. 불편하셨죠? 얼른 뺄게요...”“아니, 횡단보도가 안보여요? 학교 앞에 이렇게 차를 대는 사람이 어딨어~!”“죄송해요... 횡단보도인줄 알았으면 안댔을 거에요.. 오늘 알았으니 앞으로 안대겠습니다. 불편드려 죄송합니다.”“아니, 사람이 이렇게 차를 댔으면 죄송한줄 알아야지! 법으로 한번 고소해볼까? 이런데 차를 대는 사람이 어딨어?” ......... 처음에는 정말 죄송한 마음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나의 마음을 1%도 받아주지 않았다. 왜 내말은 전혀 듣지 않고, 자기말만 퍼붓는 거지? 안그래도 힘을 충전해야할 만큼 빠져있는 상태였는데 왜 계속 건드리는거야... 왜왜왜!!!!!! 나도 이 정도면 참을 만큼 참았다. 일단 아이들을 차에 타게 하고 숨을 크게 한번 내쉬고 최대한 언성을 높이지 않고 이야기 했다. “이보세요.. 아저씨.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화만 내시면 어떻게 합니까? 제가 어떻게 해야하나요?” “하긴 뭘 어떻게 해! 당신이 잘못해놓고 뭘!” “아저씨? 그래서 제가 지금 잘못했다고.. 다시는 안그러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한 100번 이야기 하면 화가 좀 풀리시겠어요?” 나도 점점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아니 이 사람이!! 법으로 고소한번 해볼까?” “아저씨! 제가 처음부터 화냈나요? 제가 잘못한거 인정했고, 그래서 정말 죄송한 마음이었고, 사과를 몇 번이나 드렸는데 계속해서 화만 내시면 제가 뭘 할 수 있죠? 앞으로 안하겠다고 말씀드리는데 계속 화만 내시잖아요!!”“지금 뭘 잘했다고 큰소리야? 고소 해볼까”“제가 처음부터 큰소리 냈나요? 아저씨야말로 원하시는게 뭐에요? 고소해서 마음이 편하시겠으면 그렇게 하세요! 고소 하시라구요!!” 옆에서 보고 있던 다른 아저씨가 말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루 종일 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아침부터 힘들었던 게 보태져서 퍼붓고 있었다. 왜 오늘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거야!!!!!! 마지막으로 “제 전화번호랑 차 번호 아시니까 고소하세요! 법대로 하죠!” 하고 치과 예약시간이 있어서 자리를 떴다. 차에 탔는데 심장이 벌렁 거리고 흥분이 가시지를 않는다. 방금 고래고래 소리 지른게 나 맞아? 큰 아이가 “엄마... 왜 저 쭈글쭈글 할아버지는 엄마 말은 안듣고 계속 화만 내? 참 이상한 사람이다...” 한다. 잘잘못을 떠나 내 마음을 달래주려고 노력하는 큰 아이의 마음에 내 마음이 녹는다. 그리고 한껏 차올랐던 화가 조금씩 내려간다. 운전하고있는게 아니었다면 큰 아이를 부둥켜 안고 펑펑 울었을 지 모른다. 이쯤 되니 뭐가 억울하고 힘든지 조차 모르겠다. 그냥 힘이 빠지고, 마음이 천천히 가라앉는다. 다 놓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엄마니까..
여지껏 살면서 이 정도 어르신 분께 화를 내 본적이 없다. 사실 그럴 만한 일이 없었다. 나보다 훨씬 많이 사신 분이고, 젊은 사람이 어른에게 같이 맞서서 화를 낸 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2년 후면 정년퇴직을 앞둔 아빠 생각도 나고 해서 좋게 지나가고 싶었다. 추운 날 초등학교 아이들을 위해 교통하느라 애쓰시고 있는거 아니까... 아저씨는 무엇 때문에 내 말은 안중에도 없고 화만 내셨을까? 오전에 다른 힘든 일이 있으셨던 걸까? 아니면 내가 너무 감정적이었을까? 내 감정에 문제가 있었을까? 생각해 보니 나도 아침부터 여유가 없었다. 마음이 급하니 실수도 있었다. 만약 좋은 컨디션 이었다면 이렇게 화를 내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아저씨 때문에’ 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고 생각을 했는데 어쩌면 ‘아저씨 덕분에’오전 내내 쌓여있던 감정을 내뱉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어쩌면 아저씨가 똥 밟은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상황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아이들 앞에 두고 이렇게 까지 열을 올릴 것도 아니었다. 아저씨께도 괜히 죄송스럽다. 다음에 이와 같은 상황이 다시 닥친다면 이 것 보다는 좀 더 현명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글로 옮기다 보니 조금 남아 있던 앙금까지 다 떨어져 나간다. 다시 차분해 진다.
스트레스는 그날 바로 풀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엉뚱한 곳으로 불똥이 튀지 않는다. 무조건 참는다고 쌓아두면 언젠가 곪아 터진다. 나도 아이도 주변도 모두 힘들어 진다. 글쓰기로 스트레스가 풀리냐고? 더욱 쌓이는거 아니냐고? 엄마의 글쓰기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예쁘게 화장한 그런 글쓰기가 아니다. 만약 그런 글을 매일 같이 쓴다면 육아에 글쓰기 스트레스까지 더해져 역효과가 일어날 것이다. 노력한다해도 매일 하기란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글쓰기는 오늘 나에게 일어났던 일을 그대로 백지 위에 옮기는 글쓰기다. 나만의 문제에서 객관화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백지위에 올려 놓는 글쓰기다. 오늘 있었던 일을 글로 옮기는 순간 마법처럼 문제 상황이 아닌 단순한 현상이 된다. 글쓰기가 최선의 방법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나조차 이와 같은 일이 있기 때문에 설득력이 확 떨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그리고 육아를 하는 우리는 엄마이기에 이런 나도 인정하고 조금씩 성장하면 된다. 하루 아침에 성공은 불가능하지만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오늘을 기대해 볼 수는 있다. 매일 반복하다보면 어느새 놀라보게 성장한 엄마가 되어있지 않을까? ‘에잇! 오늘 똥 밟았네, 기분 더럽다. 퉤!’하고 순간을 넘어간다면 또 이런 일이 일어날 경우 똑같이 대처할 수밖에 없다. 아마 경험이 더해질수록 레벨업된 싸움닭이 되지 않을까? 아이들이 이런 나를 보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아마 아이에게 같은 상황이 온다면 싸움닭 엄마를 기억하며 똑같이 행동하지 않을까? 내가 한 것은 정당하고, 아이가 한 것은 버릇없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육아! 매일 같은 일상에 지치는 것 정상이다. 하루에 수많은 이벤트가 발생하고 어떤 날은 영화를 찍어도 될 만큼 다이나믹 하기도하다. 세상을 다 가진 것 마냥 행복하다가도 한강에 뛰어들고 싶을 만큼 힘들기도 하고, 배꼽잡고 웃다가도 다 내려놓고 엉엉 울고 싶은 날도 있다. 애 다 키워놓은 엄마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젊은 시절을 책으로 쓰면 10권은 나올걸?’ ‘내 히스토리는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거야...’ 그렇게 이야기 하는 분들은 정말 특별한 삶을 산걸까? 책을 쓰기 위한 글쓰기는 아니지만 나의 일상을 쓰다보면 책 10권은 거뜬히 나오지 않을까? 이미 발을 담군 육아라면 현명하고 우아하게 스트레스를 풀자. 책 출판은 보너스다.
현명한 엄마는 우아하게 글쓰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아이는 그런 엄마를 보며 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