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일][12월9일]소통하는 엄마의 글쓰기

눈이 펑펑 오던 겨울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새하얀 눈송이가 평화로워 보인다. 운치 있다. 하지만 그 풍경을 바라보는 나는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멈춰있는 사람 같다. 만감이 교차한다. 펑펑 내리는 눈을 아이와 함께 바라보며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기도 하면서 애써 영화의 한 장면을 흉내내어본다. 이해하든 못하든 대화할 사람이 아이 뿐이니 쉴새 없이 혼자 이야기 한다. 아이는 마냥 내 품에 안겨있다. 평소 같았으면 추운 겨울 집에만 있어 답답하지만 눈 오는 날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감사 했을 것이다. 이런 날씨, 직장 다닐 때 육아휴직중인 선배들이 젤 부러웠다.‘얼마나 좋을까? 이런 날 밖에 안 나가도 되고... 사랑하는 아이와 온종일 집에서 마음 편히 쉴 수 있다니... 천국이 따로 없네... 나도 나중에 엄마가 되면 눈 오는 날 편히 집에서 눈 구경을 하며 자유를 만끽해야지~’ 육아는 어떠한 육체적, 정신적 노동보다 힘들다는 사실을 엄마가 되고 조리원에서 나오는 날 바로 깨달았다. 아이와 함께 집에 있는 것을 쉬는 것으로 생각하고 선배들에게 사랑하는 아이와 온 종일 함께 할 수 있는게 너무 부럽다고 이야기 했던 것을 후회했다. 그때 어정쩡하게 웃던 선배 엄마들의 표정이 생각난다. 오늘 따라 이 날씨가 나를 더욱 답답하게 한다.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내 품에 안겨 있는 아이를 보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내 마음. 하필 눈이 펑펑 오는 오늘은 일주일에 한 번 베이비 마사지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문화센터? 다음 주에 가면 되지... 눈 많이 오는데 집에서 푹 쉬어~’ 남편은 별일 아닌 듯 대수롭게 이야기 한다. ‘하아... 내가 일주일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는 매일이 전쟁 이다. 온종일 집에 있어야 한다는 답답함 보다는 매일 빵빵 터지는 새로운 이벤트를 처리하는데만도 정신이 없었다. 어떤 노력을 해도 우는 아이를 볼 때면 내가 너무 무능한 엄마 같았다. 육아만큼 뜻대로 안돼는 일도 없겠다 싶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자책도 했다. 나 같은 미숙한 엄마를 만나서 고생하는 아이를 보면 안쓰러운 마음도 든다. 그 마음도 잠시, 내 마음을 몰라주는 아이가 야속하기도 하고 애는 나 혼자 낳았나? 남편은 여전히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질투도 났다. 승윤이가 5개월 즈음 되니 조금 적응이 됐었나보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만큼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답답하다고 생각하니 하루가 너무 길었다.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것이 베이비마사지였다. 그 날 펑펑 내리는 눈을 보고 있자니 울컥 했다. 아이가 없을 적엔 이렇게 눈 오는 날엔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영화도 보고,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지... 하며 옛날 생각이 났다. 갑자기 이 답답함이 모두 아이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며 한없이 가라 앉는다. 쓴웃음을 짓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어......?’ 눈물이 날만큼 답답한 건 아니었는데 하염없이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느끼며 외로워진다. 가슴이 메여온다. 목이 막힌다.‘무엇이 이토록 나를 답답하게 하는 걸까?‘ 나만 하는 육아도 아니고, 더 힘든 상황에 있는 엄마들도 많을텐데 ... 정확한 원인을 모르는 답답함이 들어 무릎에 얼굴을 묻는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문득 아이 생각이 났다. 고개를 들어보니 승윤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아마도 처음부터 나를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아이의 눈빛이 그리고 표정이 애처롭다. 아이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느끼기라도 한 듯 나에게 미안해 하는 눈빛이다. 갑자기 정신이 번뜩 들었다. 가슴이 쿵쾅쿵쾅 거린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었던 거야...’눈물을 닦고 아이에게 손을 뻗었더니 얼른 내 품에 안긴다. 미안함과 고마움에 더욱 꽉 껴안아주었다. 아이의 콩콩 거리는 심장 소리가 느껴진다. 안심이 된다. 나는 엄마다. 혼자가 아니다. 그 사실을 자꾸만 잊어버린다.


개인적으로 돌 이전의 문화센터는 아이에게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아이를 위하는 마음에 등록을 하지만 이날 따라 유난히 아이의 낮잠시간이 겹치기도 하고, 낯선 환경에 수업 내내 컨디션이 좋지 않아 고생만 하고 오기도 한다. 한 아이가 울면 나머지 아이들이 따라 울고, 수업은 못 따라하고 서서 아이를 달래는 일도 허다하다. 절반이라도 출석하고 제대로 하면 성공이다. 이 시간이 끝나면 엄마는 파김치가 되고, 아이도 편치 않다. 어린 아이의 짐은 또 얼마나 많은지... 잠깐의 외출이지만 두고갈 수 있는게 없다. 1박 2일 짐이나 잠깐 외출 할 때 짐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등에는 기저귀 가방, 앞으로는 아기띠... 어디에서 이런 힘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이쯤 되면 누구를 위한 시간인지... 객관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린 아이에게는 전문적인 베이비 마사지 기술도 좋겠지만 익숙한 우리집과 따뜻한 엄마 품이 최고다. 미숙하더래도 엄마,아빠가 집에서 두 손으로 주물주물 안마해 주는게 낯선 곳에 누워있는 것보다 나을 것 같다. 엄마에게도 육체적, 경제적(나가면 돈을 쓰게 되어있다)으로 집을 나서지 않는 편이 훨씬 이득이다. 이러한 비논리적인 상황을 엄마가 아닌 이상 이해할 수 있을까? 내 몸이 부서질 것 처럼 힘들고 지쳐도 일주일에 한번 이 시간을 기다리고 짐을 바리바리 싸서 나서는 이유는 엄마인 내가 바깥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유일한 돌파구였다.


힘들게 다녀온 외출이지만 집에서 나왔다는 것 만으로도 잠깐의 자유를 느낀다. 흘러간 시간만큼은 세상과 접촉을 했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는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는 순간 또 다시 현실이다. 투자대비 효과가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후를 기대한다. 아이가 딸린 엄마가 세상과 소통하고 나와 소통하는데 더 나은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육아라는 상황 때문에 답답하고 세상과 단절되었다면 남편이 중국에 가고, 나 혼자 두 아이를 돌보았을 때 더 답답하고, 외로웠어야 했다. 2015년은 남편이 없었고, 두 아이와 온종일 집에서 뒹굴었던 한 해였다. 그 때는 큰애가 어느 정도 커서 어린이집에 다녔는데 초반에는 승윤이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어린 둘째는 아기띠를 하고 점심 마다 친구들을 만났다. 그 중에는 나와 같이 둘째를 안고 만나는 엄마도 있었고, 아직 둘째가 없어 자유의 몸인 엄마도 있었다. 육아에 힘든 아줌마들은 서로의 눈빛만 봐도 안다. 그리고 서로를 끌어당긴다. 같은 아파트 라인에 비슷한 처지의 아줌마들과 서로의 집에서 만나는 일도 생겼다. 아이가 하나이고 어렸을 때 소통의 창구가 문화센터 였다면 조금 크고 나서는 동네 아줌마들이 되었다. 그런데 이것 또한 한계가 있다. 집에 돌아오는 순간 현실이다. 남편이 없는 긴 밤... 아이들을 재우는 것도 힘들었고, 아침에 눈 뜨는 것도 큰 의미가 없이 느껴졌다. 그러던 중 시작하게 된 육아일기 였다. 처음에는 아이들 일상 사진을 설명하는 식으로 썼다. 남편과 공유차원에서 시작한 일기였는데 시간이 갈 수록 사진보다 글이 많아졌다. 남편이 멀리서 나의 글을 매일 보고 있다는 생각에 사진 한 장에 담긴 이야기를 최대한 자세히 썼다.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고 싶었다. 멀리 있지만 함께하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사진 위주로 현상을 설명하는 글에서 점점 나의 생각을 풀어놓는 글로 바뀌어갔다. 나중에 블로그에 메뉴를 따로 만들었다. ‘아이성장일지’와 ‘엄마성장일지’. 둘 다 특별한 형식은 없었다. 그냥 내가 쓰고 싶은 나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지금 읽어봐도 그때 느낌이 생생하다. 두 아이가 자는 시간 세상이 정지하고 나 혼자만 움직이는 것 같은 시간. 예전 같았으면 이 포인트에서 가슴이 답답해지고 눈물이 고였다.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만 들릴 뿐이다. 지금은 남편도 없다. 그런데 성장일지를 쓰고 있는 동안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가슴속에 엉켜있던 실타래가 한올 씩 풀리는 것 같았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 혼자 쓰고 있는데 마음에 아주 잘 맞는 친구와 이야기 하며 위로 받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무슨 느낌이지?’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편했다. 엄마가 되고 처음으로 원래의 내 모습을 보았다. 실타래 한 올이 풀리니 일지를 쓸수록 스르르 풀려간다. 시간이 갈수록 느낄 수 있었다. 뭔가를 쓰고 있는 동안에 그 자체만으로 위로를 받고 치유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힘들게 문화센터에 다니고, 아줌마들과 맞장구치며 떠들 때보다 훨씬 더 외롭지 않았다. 점점 글의 양과 종류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내 글을 읽는 이웃도 생기면서 다른 사람의 글도 읽었다. 나처럼 육아에 대해서 자신에 대해서 글로 기록하는 엄마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글쓰기에 관심이 생기니 주변 아줌마들보다 글쓰는 엄마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 에너지가 옮겨가고 있었다.


육아를 하며 글만 쓰는게 정답은 아니다.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서 글만 쓰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분명 다른 사람과의 교류도 필요하다. 세상은 나 혼자 사는 곳이 아니다. 사람들과의 교류와 새로운 경험, 인연을 통해 배우는 것도 많다. 중요한 것은 나와의 소통이 먼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를 먼저 제대로 알아야 한다. 육아에 대한 답답함을 바깥에서만 해결하려고 하고 답을 찾으려고 한다면 그 순간일 뿐이다. 그 시간이 지나가면 다시 허전하다. 같은 고민의 연속이다. 내가 지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 마음 상태가 어떤지 소통이 잘 되어야만 다른 사람과 어울렸을 때 진정 섞일 수 있다. 사람은 하루에도 수많은 생각을 하고, 순간에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사람마다 생각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참 생각이 많다. 그래서 내가 진짜 원하는게 무엇인지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손가락을 먼저 움직이면 생각이 따라온다. 내 손을 통해, 백지 위에 나의 생각이 펼쳐진다. 생각이 글로 표현되며 자연스레 정리가 된다. 나도 모르던 내가 원하는 것을 깨우치기도 한다. 나 자신과 소통하는데에는 글쓰기 만한 것이 없다. 언제 어느 때라도 내 생각을 잡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언제든 다시 확인할 수도 있다. 생각이 바뀌면 고치면 될일이다. 어느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자유를 느끼고 진정한 소통을 느낀다. 내가 나를 잘 어루만져 주니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셀프 소통이 잘 된 상태에서는 아이와의 관계도 좋다. 나와의 소통을 매일 지속되어야 한다. 하루 30분 글쓰기는 나와 소통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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