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 선택...
결혼을 하고 한 달 즈음 첫째 아이를 임신했다. 스물 여덟에 결혼을 했으니 친구들 보다 빠른 결혼이었는데 뭐가 급하다고 아이를 참 일찍 가졌다. 임신 사실을 알고 가장 먼저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아... 나도 이제 마음 편히 합법적으로 쉴 수 있겠구나...’대학 졸업과 동시에 입사를 했다. 스물 세 살 이었으니 정말 어렸다. 취업 준비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취업이 되었기 때문에 세상물정 몰랐고, 목숨 걸고 들어온 다른 동기들보다 애사심도 덜했다. 대학교 때에 승무원이라는 꿈이 있었지만 간절한 마음이 아니었는지 대기업에 입사하고 바로 포기가 되었다. 그렇게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부서배치를 받은 날 부서 선배님들과 티타임을 가질 기회가 있었다. 바로 윗 기수 선배 중에 퇴사를 코앞에 둔 선배가 있었는데 신입사원인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적성에 안맞으면 일년 안에 그만둬~ 계속 붙잡고 있지 말고.. 일년 이면 이 길을 가야하는지 아닌지 판가름이 나거든..’ 이상한 선배라고 생각했다. 퇴사를 앞두고 있으니 그런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제 막 입사한 후배한테 할 이야기는 아니지 않나? 새싹들에게 희망을 줘도 부족할 판에 자기 퇴사한다고 너무 막 말하는거 아냐?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본인의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 해 준 그 선배가 참 용기 있었다. 아무튼 그 당시 흘려 들었던 선배의 말이 3년, 5년이 지나고 힘든 회사생활을 이어가며 계속 뇌리에 남아있었다. 정말 일 년 안에 그만두는 게 맞는 거였나? 그토록 힘들어 했던 회사생활이었는데 그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런 나에게 임신은 끈을 잠시 놓을 수 있는 합법적인 쉼 이었다. 용기 없는 나에게 주어진 인생의 기회였다.
그렇게 선택한 육아였다. 회사가 힘들어 현실 도피의 마음도 있었지만 결혼을 했으니 자연스레 아이가 생기면 낳자고 남편과 이야기 했다. 생각보다 빨리 생겨 당황스러웠지만 여러 생각할 거 없이 쉴 수 있다는게 한 가닥 희망이었다. 나에게 빨리 와준 아이가 고마웠다. 그 당시 나의 계획은 확고했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뭐라도 준비해서 당당하게 퇴사를 하는 것! 1년 3개월 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니 적어도 내가 무엇을 하면 좋을지 생각해 볼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여자선배들이나 동기 언니들은 출산 직전까지 회사를 다녔다. 출산 하고 최대한 아이와 오랜 시간을 보낸 후에 복직을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나는 임신을 하고 나서도 계속되는 스트레스에 견디다 못해 년차를 모두 끌어다 쓰고, 출산휴가를 최대한 빨리 써서 출산 8주 전에 쉴 수 있었다. 주변에서 후회하지 않겠냐고, 아깝다고 이야기 했지만 당장 퇴사하는 것 보다 훨 나은 방법이었고, 당시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토록 원하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그 동안 못했던 것들을 마음껏 하며 그 시간을 만끽했다. 산부인과 문화센터에서 하는 임산부 요가도 다니고, 평일 낮에 커피숍에 가서 책도 읽고 노트북을 들고 가서 블로그도 했다. 낮잠도 자고 태교한다고 바느질, 십자수를 했다. 막달이 되어가니 몸이 무거워져 길을 걷다가 다리에 쥐가 날 때도 있고, 누워서 잠도 제대로 못 잤지만 회사에서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나를 생각하면 천국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유유히 시간이 흐르고 예정일을 1주일 앞둔 날 첫째를 출산했다. 휴직을 하고 실제 7주라는 시간 동안 엄마가 될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했다고 생각 했다. 좋은 엄마가 될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부터 육아를 하며 본격적으로 내 적성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이를 낳고 조리원 일주일의 시간을 거치고 집으로 온 날... 마음 속 그려왔던 ‘육아’라는 나만의 사진은 현실과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실제와 이론은 달랐다.
아이가 8개월 무렵, 육아책 한권을 읽었다. 지랄발랄 하은맘의‘불량육아’라는 책이었는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책으로 육아를 하는 책육아의 내용이다. 최소한 36개월 까지는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엄마가 책을 꾸준히 노출시켜서 자연스레 아이가 책과 놀게 하는 거다. 책을 읽는 다는 개념이 아닌 어렸을 적부터 책과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엄마의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중학생인 하은이는 책육아로 영어도 완벽 마스터하여 아무런 사설교육을 받지 않았는데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한다. 혹 했다. 나는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겠고, 뭘 해야할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엄마가 되었으니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잘 기르는 것도 엄마의 중요한 임무니까. 그리고 아이만은 나처럼 자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알고, 그 일을 즐기면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승윤에게 책육아를 하며 현명한 새로운 엄마로 재탄생 하고 싶었다. 하은맘이 불량육아라는 책을 읽으며 한줄기 희망이 보이는 듯 했다. 그래! 애를 잘 키워보자! 애를 잘 키우면 자동적으로 좋은 엄마가 되는거니까. 그렇게 하은맘이 추천하는 육아서도 읽고 추천 육아서 안의 추천 육아서까지 찾아서 읽었다. 내 마음은 그 방향으로 커져갔는데 가장 큰 장벽은 남편이었다. 책육아 한다고 회사를 그만두는 것에 대해 인정해주지 않았다. 나는 진심으로 우리 아이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은 지금까지 회사에서 쌓아온 것이 있는데 집에서 애만 보겠다는 내 능력이 너무 아깝다며 반대했다. 예전부터 내가 틈만 나면 회사를 그만둘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번에도 복직하기 싫어서 선택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큰 마음 먹고 선택한 건데 그렇게 이야기 하는 남편이 정말 남의 편인 사람 같았다. 마지 나 혼자 낳고 나 혼자 잘 키우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복직을 했고, 이유가 ‘돈’ 때문인 것도 없지 않아 있었는데 당시 나에게는 돈과 아이의 미래를 같은 레벨에 두는 남편이 이해가 안갔다. 남편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면 흔쾌히 허락하겠지만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 결국 돌에 어린이집을 보내고 복직을 했다. 휴직할 때 계획했던 육아휴직 기간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그만 두겠다는 계획은 제대로 뭘 해보지도 못한 채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이를 낳기 전 7주라는 시간 그리고 아이를 출산하고 12개월 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아이 때문에 여유가 없다고 아이 돌보는 것 만으로도 힘든 일이라고 이야기 하며 주변과 나 스스로에게 합리화를 시켰지만 돌이켜 보건데 나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찾으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시간이 지나면 뭔가 있겠지,찾아지겠지 했다. 그 노력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몰랐다는게 더 맞겠다. 업무에 치이듯 육아에 치여 하루살이의 삶을 살았다. 육아를 기회로 삼기 위해 내가 한 선택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계획을 세우고 준비할 수 있었다. 여유를 갖고 차근차근 나 자신부터 알아가는게 순서였는데 회사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과를 미리 정해 놓고 거기에 나를 끼워 맞추려고 했다. “육아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내 꿈을 찾을 시간이 어딨어?? 가능한 일이 아니야.” 글쓰기를 만나기 전까지 내 마음은 확실했다. 한치의 의심도 없었다. 이미 시작해 버린 육아였다.
글쓰기를 만난 건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다. 객관적으로 그땐 누구보다 더 바쁜 일상이었다. 아이가 한명에서 두명이 되면 일이 2배 많아지는게 아니라 10배 많아진다. 힘들어진다. 양 쪽에서 사고를 콤보로 내고, 좀 크면 잘 놀고 잘 싸운다. 세끼 차려주랴, 더 늘어난 집안일, 두 아이 상대하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른다. 옛날 생각이 난다. ‘애 하나일 땐 뭐가 힘들었었지??’ 꼭 지나고 나서야 이런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애가 셋이 된다면 똑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애 둘일땐 뭐가 힘들었었지??’ 그래. 누구나 시간이 없고, 바쁘다. 애 없고 회사다녔을 때 시간이 없어서 꿈을 못찾았나? 그 당시는 또 그때대로 바빴다. 이런 마음으로는 평생 여유가 없고, 바쁘다. 신기한 것을 글쓰기를 하며 시간이 생기고, 여유가 생겼다. 나에 대한 생각, 느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종이에 쭉 늘어놓고 있으니 내가 잊고 있었던 것들이 생각이 났다. 내가 왜 결혼 하자마자 아이를 가졌는지, 아이를 가질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휴직 기간에 무엇을 원했었는지, 왜 승윤이 휴직 때 다시 복직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정말 시간이 없어 꿈을 찾을 수 없었는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정말 원하는 나의 모습은 무엇인지, 무엇을 할 때 내가 가장 몰입을 하고, 즐기는지.... 말이다. 그리고 답도 없는 질문에 대해 하나씩 써내려갔다. 처음에는 막막했다. 지금 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이렇게 하는게 맞는지 의심도 들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쓰고 있는 동안은 내가 나에게 집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충대충 뭉뚱그려 생각했던 나의 삶을 하나씩 자세히 뜯어 파고들어 생각해보고 기록했다. ‘육아’ 덕분에 얻었던 시간,‘육아’덕분에 얻었던 기회,‘육아’를 통해 성장하려고 했던 나를 다시 한번 인식했다. 지금은 두 아이가 나의 곁에 있기 때문에 더 시간이 없지만 이렇게 차근차근 쓰다보면 찾아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싹트고 있었다. 아이들이 자는 나만의 시간에 했던 불필요한 일을 모두 접고 글 쓰는데 집중했다. 속도는 더뎠지만 매일 성장하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글을 쓰면서 나를 느끼는 시간이 점점 재미있어졌다. 어떤 날은 내가 정말 원하는게 뭔지 잘 모르겠고, 답답해서 손이 안나갈 때도 있었지만 그걸 고민하고 있는 내가 좋았다. 육아는 더 이상 나의 꿈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었다. 글을 쓰며 지금 내가 여기 존재하는 것은 육아 덕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육아는 더 이상 힘든 노동이 아니었다. 나를 성장하게 하는 축복이었다. 육아는 내가 선택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