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남편이 중국에 가고 한달 정도 되었을 때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처음 한 달은 새로 이사를 간 곳에서 집 정리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승윤이를 새로 보낸 민간 어린이집에 적응 시키느라 온 정신이 그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하나 둘 씩 제자리를 찾아가니 마음의 평온과 함께 허전함이 몰려왔다. 그제서야 남편의 빈자리가 실감이 난다. 남은 11개월을 어떻게 보낼지 막막했다. 내년 이맘때쯤 나는 어떤 모습일까? 무슨 마음을 갖고 있을까? 시도 때도 없이 그런 생각이 밀려들었다.‘남편이 중국에서 무사히 돌아와 네 가족 행복하게 보내고 있겠지? 주말마다 시외로 나들이도 가고 저녁에 함께 마트 장도 보고 놀이터에서 아이들 뛰어노는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도 짓고 남편에게 애들 맡겨놓고 자유시간도 가져야지... 거실에서 남편이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모습을 보며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요리도 해야겠다. ’이런 생각이 그 당시 나를 잘 지내게 해주는 힘이 되었다면 좋았겠지만 1년 뒤 행복한 미래를 생각하면 그 시간이 과연 올까... 막막했다. 갓 자대배치를 받은 이등병의 마음이 이럴까? 지금 나에 집중하자고 생각하면 할수록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괜찮다가도 감정이 복받쳤다. 분명히 괜찮았는데... 괜찮다고 생각했는데도 말이다. 그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흘려보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승윤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같은 반 아이 아줌마들을 만나기도 하고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나였으면 남편 안 보냈을거야. 어떻게 가라고 할 생각을 다했대?’ 대단하다며 위로의 말을 해주며 잘하고 있는거라고 파이팅 해줬다. 그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내 앞에서 나를 위로해주는 그 분들의 속마음까지는 모르겠지만 그것까지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어찌되었건 나의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것만으로도 그날은 조금 편하게 지나갔다. 문제는 유효기간이 짧았다. 매번 충전이 필요했는데 그럴 때마다 아줌마들을 찾아다닐 수는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또 다른 불편함 이었다.
지금까지 참 평범하게 살아왔다. 큰 굴곡 없이 어려움 없이 말이다. 어려운 일이나 무언가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결혼 전에는 부모님이 결혼 후에는 남편의 영향이 컸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정해놓은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지금껏 그런 운명을 타고난 거라고 여겼다. 엄마가 점을 보러가도 특별히 성공을 한다거나 재능이 있다거나 늦복이 터진다거나 그런 것이 없었기 때문에 내 삶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생각이나 행동이 틀 안에서 놀고 있었기 때문에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지만 그땐 몰랐다. 문득, 아인슈타인이‘매일 같은 행동을 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 증세다.’ 라고 하는 말이 생각난다. 나에게 주어진 환경이 나를 그렇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상황에 맞춰 살아갈 뿐이었다. TV 속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와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현실감이 떨어졌다.‘정말 대단하다...’ 는 감탄에서 그쳤다. 누가 봐도 특별한 어려움이 없는 나의 상황에 나 또한 안주하면서도 마음은 불편했다. ‘만약 내가 부자 집에서 태어났다면 더 좋은 환경에서 자라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었을 텐데...’ 반대로 이런 생각도 했다. ‘내가 뭔가 특별한 어려움을 갖고 있었다면 TV에 나오는 사람처럼 그 과정을 극복해나가며 나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할 수 있지 않았을까...?’그 분들이 나의 생각을 읽는다면 어이가 없을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은 나 혼자만 꼭꼭 숨겨놓고 했다. 그 분들의 어려움을 극복한 피나는 노력의 과정을 보지 못했다. 그런 눈이 없었다. 어찌되었건 지금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결과에만 집착했다. 모든 것의 이유를 외부에서만 찾고 있었다.
우리는 아침을 먹으면서 점심때 뭐먹지? 를 고민하고, 짜장면을 먹으면서 짬뽕 시키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그렇게 미래를 고민하고, 과거를 후회하며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에 미련을 둔다. 그리고 도전하지만 성공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 살을 빼지 못하는 이유, 영어 점수를 올리지 못하는 이유, 금연하지 못하는 이유, 늘 작심삼일에 그치는 이유를 외부환경에서 찾는다. ‘나도 문제이긴 하지... 하지만 지금은 아이 때문에 (혹은 000 때문에) 힘들어. 아마 누구라도 나 같은 상황에선 힘들걸?' 나의 과거를 돌이켜 보면 남편을 보내기 전까지 그렇게 살아왔다. 자연스럽게 나의 태도에 녹아든 삶 자체를 받아들이고 살고 있는 사람도 많지만 문제는 나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무엇인지 모를 것을 해결하기 위해 자기 계발을 하며 노력 했지만 수박의 겉만을 핥고 있었기 때문에 제자리 걸음일 수밖에 없다. 분명 누군가는 어떤 환경이라도 자신의 꿈을 찾고 이뤄가며 성장한다. 그 사람도 나와 같은 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에 희망과 자괴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지금은 감히 다행이라고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는 남편의 중국 파견의 사건은 나를 성장하게 만든 기회였다. 만약, 끝내 혼자 해보려 하지 않고 친정 엄마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을 선택했다면 지금과 다른 결과가 있었을 것이다. 혼자 부딪혀 보겠다는 평소와 다른 새로운 선택을 하며 지금까지와 다른 내가 될 수도 있다는 막연한 느낌이 있었고 그 것을 따랐다.
레프 톨스토이의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에 ‘지금 이 순간’ 이라는 글이 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인가?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때는 현재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
지금 이 순간을 살자는 말은 짧은 우리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삶의 진리다. 지금은 너무나 뼛속까지 와 닿는 이 글귀도 예전의 나였다면 너무 당연한말인데 어쩌라는 거야? 지금 나도 그렇게 살고 있다고 여겼을 게 분명하다. 어느새 1년 3개월 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남편이 돌아왔다. 언제 다녀왔는지 꿈을 꾼 것만 같다. 그 기간 동안 하루에도 오르락 내리락 파도치는 감정을 느끼며 오만가지 생각들을 했다. 다행이 나는 우연히 시작한 글쓰기로 그 것들을 풀어냈다. 천만 다행이다. 만약 글쓰기로 풀어내지 않았다면 모든 것들은 쌓이고 쌓여 사랑하는 아이들을 향했을 것이고, 남편을 원망했을지 모른다. 그때 보내지 않았어야 했다고 과거를 후회하며 평생을 보냈을지 모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요즘은 이렇다. 아침에 깨어 햇빛을 받으며 하루라는 시간을 선물 받고 아침을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내가 시킨 짜장면이 정말 맛있다고 혀로 느끼며 천천히 음미한다. 짬뽕을 생각할 틈이 없다. 오로지 지금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보는 것에 집중할 수 있다. 혼자였던 시간에 시작하여 지금도 꾸준히 하고 있는 글쓰기로 다져진 마음의 근육 덕분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다. 톨스토이가 말했듯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때는 현재이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 누구나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하지만 육아를 하며 나를 잃어버리는 것 같다고 이야기 한다. 나를 중심에 세우고 지금 현재 육아에 집중한다면 절대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육아의 시간이 나를 성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온종일 아이와 함께하기에 나를 중심에 세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잠시 정신 줄을 놓는 순간 나도 모르게 육아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어떠한 상황에도 나를 중심에 놓고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최소 30분 이상 나를 마주하는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매일 그 시간 동안 내면의 글쓰기를 통해 나를 만나고 흐트러진 마음을 정돈한다. 이러한 시간이 쌓이며 성장한다.
평범한 삶을 살아왔지만 내 안에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나 많았음을 글을 쓰며 깨닫는다.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일상에서의 답답함. 누군가와 비교하며 느끼는 열등감. 잘 살고 싶지만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막막함. 이 모든 것들이 글을 쓰며 하나씩 정리가 된다. ‘오늘은 글쓰기를 하며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가야지!!’정해놓고 시작하지 않는다. 자유롭게 써내려 가다보면 신기할 만큼 하나씩 튀어나온다. 생각의 물꼬를 트기까지 시간이 걸릴 때도 많지만 일단 트이기 시작하면 타자속도가 생각의 속도를 못 따라 올만큼 나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일단 다 뱉어내고 나의 글을 다시 읽어보며 정리하고 알아간다. 이러한 과정으로 나는 지금 현재의 나에 집중할 수 있다. 과거의 나를 후회하지 않고, 막연한 미래를 동경하지도 않는다. 오직 나를 있게 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의 나이다. 지금의 나에 집중하는 이 순간만큼은 어떠한 것도 나를 흔들어 놓지 못한다. 이런 순간이 모여 지금의 나를 조금 더 성숙한 나로 만든다.